[작가칼럼] [환승이야기 3] 이삿짐 차에 삶의 여정을 싣고- 박선영(시조시인)
먹는 일과 입는 일은 매일 새로이 한다. 그러니까 의식주 중에서 ‘의’와 ‘식’에 관해서는 날마다 새 도화지를 펼치고 그날의 색깔을 칠할 수 있다. 그런데 ‘주’에 관해서만큼은 다르다. 어젯밤에 잠든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딘가로 나갔다가도 다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그 자리로 되돌아와 오늘을 정비하는 것이 ‘주’다. 의생활을 갈무리하고 식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주생활에 안착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삶이다. 주거(住居)와 거주(居住)는 같은 말로 살 거와 살 주, 산다는 뜻의 글자 두 개를 나란히 쓴다.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사...2018-06-15 07:00:00
[작가칼럼] 책이 주는 행복- 백혜숙(시인)
초등학교 몇 학년쯤인가 시골집 구석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시골집에 두고 간 금병매, 서유기 같은 전집으로 된 중국 고전소설이다.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의 체험수기 이런 책을 읽었다. ‘책’ 하면 떠오르는 내 어릴 때의 한 장면이다.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이다. 대학도서관에 책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느낀 순간 그곳이 내가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곳이 되었다. 어릴 때 읽었던 금병매가 얼마나 야한 소설인지, 젊은 베르...2018-06-08 07:00:00
[작가칼럼] 거짓의 종말- 임창연(시인)
최초의 거짓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간교한 뱀이 하와를 속여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어서 최초의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벌로 여자는 해산하는 고통을 갖게 되었고 남자는 땅을 파는 수고를 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거짓말이라는 것은 마치 일상처럼 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거짓말이다. 아이들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을 하...2018-06-01 07:00:00
[작가칼럼] 어머니, 어머니- 정이경(시인)
오월은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계절의 여왕, 장미의 계절답게 여기저기서 핀 아름다운 꽃이며,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로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봄의 여왕’이라 불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근로자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으로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또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어 은혜와 감사로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기도 한 까닭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은 바쁘게 보내야 했다.이런 오월, 그 첫날에 영암에서 교통사고 소식이 들렸다.매일이다시피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는지라 ...정민주 기자 2018-05-25 07:00:00
[작가칼럼] [환승이야기 2] 두바이에서 히잡을 벗으며- 박선영(시조시인)
항공노선의 국제적 환승지, 두바이. 두바이는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현대도시로 거듭난 역사가 길지 않지만, 지리적 요건으로 인한 오랜 교역의 흔적을 축적해온 곳이다. 아랍어로 ‘메뚜기’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두바이 공항에서, 검고 긴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여인들을 보다가 이 글을 쓴다. 많은 이들이 이곳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 두바이 인근의 중동국가를 방문하며 히잡을 둘렀던 여자들이 머리를 드러내며 후련해한다. 방문지에서 기념 삼아 히잡을 구입하기도 했을 테지만, 갖고 있던 머플러를...2018-05-18 07:00:00
[작가칼럼] 친구, 그 따스함- 백혜숙(시인)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를 들었다.‘눈빛만 보아도 널 알아,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돼 준 너. 늘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 세상 그걸로 충분해….’이 노래를 들으면서 거스 고든의 ‘허먼과 로지’를 떠올렸다. 어느 복잡한 도시, 작고 낡은 아파트 두 채가 이웃해 있다. 이곳에 허먼과 로지가 살고 있다. 이웃해 살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허먼과 로지는 음악을 사랑하고 바다에 관한 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작고 소소한 ...2018-05-11 07:00:00
[작가칼럼] 딜레마- 임창연(시인)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던 날, 전국의 평양냉면 식당은 길게 줄을 선 풍경을 만들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두 정상이 먹게 될 메뉴까지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관심과 우려 속에 비핵화와 종전, 평화라는 합의가 마침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고 과거의 2000년, 2007년 남북정상 합의도 지켜지지 않은 전례를 볼 때 기대는 성급할 수도 있다. 물론 지난 과거처럼 약속을 파기하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남과 북이 보인다면 통일이라는 염원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남과 북...2018-05-04 07:00:00
[작가칼럼] 여행, 그 힘에 대하여- 정이경(시인)
어쩌다 TV를 보게 될 때가 있다. 예전에 없이 여행 프로그램이 부쩍 많아졌음에 놀랐다. 한때 먹방(?)이 화면을 다 차지하다시피 하더니 요즘은 여행이 대세인 모양이다.여행 프로그램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예전의 여행 프로그램이 다분히 시사적이거나 교양 쪽이었다면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각기 다른 성격의 여행 프로그램이 방송에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외사촌 동생과 나눈 대화를 떠올려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 넘게 다녀왔다고 했다. 그 동생은 대학 시절 소...2018-04-27 07:00:00
[작가칼럼] [환승이야기 1] 파리에는 로마가 있다- 박선영(시조시인)
지하철을 타면 급행이 있고 완행이 있어, 멀리 가게 될 때는 주로 급행을 선택해서 타곤 한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급행열차는 언제나 완행보다 붐비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앉아서 편히 가기 위해 느리더라도 완행을 타기도 한다. 목적지에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완행을 타는 쪽이 오히려 시간이 절약될 때도 있다. 급행을 탔다가도 완행으로 갈아타야 하면 도중에 대기시간이 걸리거나, 어쩔 수 없이 더 멀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2018-04-20 07:00:00
[작가칼럼] 그림책을 보면서- 백혜숙(시인)
키무라 유이치라는 일본 작가가 쓴 가부와 메이 이야기가 있다.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폭풍우 치는 밤에’이다. 한참 전에 했던 ‘주군의 태양’이라는 드라마에 이 책의 일부가 인용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많이 오르내린 책이다. 지난주에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함께 보았다. 애니메이션으로 봤다고 하면서 시시하다고 하더니 책을 읽는 동안 처음과는 다르게 눈을 반짝이며 그림책을 본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는 “선생님, 이게 끝이에요?” “아~니, 이건 첫 번째 이야기야.” “그럼, 우리 다음 이야기...2018-04-13 07:00:00
[작가칼럼] 작가라는 이름- 임창연(시인)
작가가 너무 흔하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대한민국은 작가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는 자신의 저서를 출간하는 것으로 작가라는 명칭을 얻는데, 우리는 등단 제도라는 형식을 거쳐야 인정을 받게 된다. 작가의 수준이 어떤 등단을 거쳤느냐에 따라 또한 등급이 매겨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등단한 작가도 재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쳐 남에게 더 수준 높게 보이는 곳으로 다시 등단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작가의 출신 등단지가 어느 대학을 졸업한 것처럼 서열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 그것을 아는 사람은...2018-04-06 07:00:00
[작가칼럼] 느긋하게, 스스로 그러하게- 송미선(시인)
아침 나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벚꽃이 오후 서너 시쯤 지나자 무슨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꽃잎을 활짝 폈다. 긴 시간을 번데기로 지내다가 날개를 펴는 나비처럼 꽃잎은 열렸다. 끝없이 늘어선 가로수나 호수 주변의 벚꽃도 아름답지만, 가로등이 켜진 뒤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면 하늘 가득 꽃잔치가 펼쳐진다. 가지와 가지 사이에 달이라도 들어오면 ‘달을 품은 벚꽃’이 연출된다. 나무 아래에서 한 걸음씩 움직여 보면 다른 가지 사이로 따라와 벚꽃에 안기는 달을 바라본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요...2018-03-30 07:00:00
[작가칼럼] ‘탈’바꿈- 유희선(시인)
자코핀, 자코핀, 이름도 모습도 낯선 자코핀비둘기를 떠올린다. 자코핀비둘기를 본 것은 작년 늦가을 ‘장사도 해양공원 카멜리아’에서였다. 그 새의 이름에 비둘기라는 명칭이 없었다면, 희귀새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짙은 와인색 털 코트에 깃을 잔뜩 세운 모습이 몹시 낯설면서도 귀티가 났다. 외투에 파묻힌 작고 하얀 얼굴, 눈을 마주친 몇 초의 순간은 섬을 빠져나오고서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코핀’이란 이름은 장사도가 해양공원으로 조성될 때, 동백나무를 지칭하는 ‘카멜리아’라...2018-03-23 07:00:00
[작가칼럼] 봄이로소이다- 이기영(시인)
며칠 사이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남녘의 들에는 영춘화와 매화가 피었다. 목련도 벙글어서 세상이 환하다. 연일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봄볕을 쬐지 않으면 그 따스함을 그대로 낭비해버리는 것만 같아 밖으로 나가보기도 한다. 사람이 빠져있는 자연은 평화롭다. 때 되면 꽃 피고, 꽃 지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이 진다. 꽃을 밟고 올라오는 나무도 없고, 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큰 나무 홀로 푸르지 않다. 하지만 사람 사는 요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춥다. Me Too와 With You, 그리고...2018-03-16 07:00:00
[작가칼럼] 미투는 인간선언이다- 손상민(극작가)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지역문화활동가 연수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 팀 팀장이었고, 연수 마지막 날 내가 몸담았던 조직의 사례를 주제로 한 PT를 발표했다. 덕분에 1등으로 뽑힌 우리 팀은 다음 해 4박6일 영국 연수를 다녀왔다. 넉살 좋고 배포가 큰 사람이었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극단적인 표현으로 사례 발표를 한 탓에 발표가 끝난 후 나의 항의를 듣기도 했다. 전주 유명 극단 대표를 지목한 미투운동 기사를 보다가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순간 멍했다. 피해 여성이 성추행을 당한 시기가 그와 알고 지낸 시기와 ...2018-03-09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