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라디오 아저씨- 김현숙(수필가)
글방에 오는 아이들 대화 속에 요즘 자주 등장하는 분이 있다. 언짢다는 듯 ‘그 아저씨 진짜 재수 없어’ 하는 말투를 봐도 그렇고, 삐죽거리는 입모양을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저희들 사이에서 대우받는 인물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등굣길에 만난 아저씨 차림새를 세세하게 표현했고 그 아저씨가 흥얼대는 노래가 자기 학교 교가라는 둥 제법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처럼 전하곤 했다. 어떨 땐 ‘네가 듣지 못한 말을 나만 들었다’는 식으로, 아저씨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했다.
아이들 말을 빌리자면 ...2019-01-04 07:00:00
[작가칼럼] 잘 가시게, 무술- 김일태(시인)
지난 주말 아내와 창원 시내 팔룡산을 다녀왔네. 연말이라 바쁜 일정 때문에 멀리는 못 가고 근교 산이라도 올랐던 거지.
산마루에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으려는데 아내가 떡을 한 조각 떼어 ‘고수레’ 하며 숲속으로 던지는 거야. 참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인데 갑자기 별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만.
‘고수레’, 천지신명에게 감사하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 먼저 음식을 배려하는 보시와 사랑의 정신이 담긴 주술적 행위지. 근데 그게 오늘날 나만 중요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팍팍해진 ...2018-12-28 07:00:00
[작가칼럼] 휼륭한 사람과 좋은 사람- 곽향련(시인)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이 나이에도 책을 선물받으면 소녀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빨리 읽어봐야지 하는 욕심으로 펼쳐든다.
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17년 동안의 교사 생활을 접고, 살아오면서 생각한 것들을 모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각들’이란 따뜻한 산문집이다.
첫 번째 산문 ‘모든 분노는 물과 같이’는 어느 중학생 소녀의 이야기다. 중학교를 한 달밖에 안 다녔다는 소녀는 학교는 공부 말고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깊이 생각할 ...2018-12-21 07:00:00
[작가칼럼] 맹모삼천지교- 문복주(시인)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는 다 아는 고사이다. 묘지가 있는 곳에 살았더니 아들 맹자가 곡소리와 장례 흉내만 내고, 저잣거리로 이사 갔더니 물건 사고파는 놀이만 하고, 서당 근처로 이사하니 비로소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교육환경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인가. 현명한 우리의 부모님들은 SKY대학을 보증한다는 강남땅으로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강남의 땅값과 집값이 하늘 높이 뛰었다.
맹모삼천지교의 요즘 해석은 이렇다. 묘지 근처에 산 것은 인생의...2018-12-14 07:00:00
[작가칼럼] 문학소녀, 항일독립여성운동가 박차정 의사- 이윤(시인)
2018년 가을, 지역 문학지 특집기획 ‘항일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만나다’란 주제로 집필을 맡게 됐다. 자료 준비에 고민 중, 박차정 의사 후손 박의영 목사가 부산에 거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지병으로 투병 중인 후손을 두 달간 기다리다 얼마 전에 만났다.
박차정 의사는 유관순 열사에 이어 두 번째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로 짧지만 불꽃 같았던 그의 삶은 해방에 크나큰 밑거름이 됐다.
박차정 의사는 문학소녀였다. 그러나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문학소녀는 애국투사가 ...2018-12-07 07:00:00
[작가칼럼] 마산문학의 향기와 지역정체성- 김인혁(시인)
문재(文才)와 인격은 일치하는가? 밤새 눈 부릅뜨고 먹이를 찾는 부엉이처럼 문인은 자신의 시대가 갖는 의미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지혜를 지녀야 한다. 이는 문필가로서든 일상의 시민으로서든 자신의 행위가 미래에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문인으로서의 자각이고 지성이다. 이런 자각과 지성을 보일 때 문학적 재능과 인격은 일치한다. 여기서 그의 문학적 권위는 바로 서게 된다.
마산에 깊은 인연을 둔 문인은 일찍이 최치원을 시작으로 장지연, 이은상, 권환, 임화, 이원수, 김춘수, 천상병, 김수돈, ...2018-11-30 07:00:00
[작가칼럼] 학교 성평등 교육, 더 많이 더 새롭게 해야 한다- 이경옥(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
지난해 대선에 이어 6월 지방선거에서도 우리 정치의 주요 변수로 ‘젠더’가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고 ‘성평등기본법 개정’ 등 여성의제를 공약으로 다수 수용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에 의하면 한국 정치의 최대 변수이던 지역과 이념, 그리고 세대에 이어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견해에서 젠더 차이가 두드러지는 ‘젠더 정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특히 20대 여성과 남성의 젠더 갭(성별분리현상)은 정치영역뿐만 아니라 사회·문화·교육영역에서도 ...2018-11-29 07:00:00
[작가칼럼] 말, 말, 말- 곽향련(시인)
누구나 속엣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을 깜빡 잊고 속엣말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달리는 말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디 속엣말을 터놓아서만이 말(言)이 천리를 달리겠는가. 흥미로운 남의 흠집 내기는 얼마나 잘 부풀려지고 잘 달리는가. 남의 이야기라고 해서 함부로 내뱉는 말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등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라인...2018-11-23 07:00:00
[작가칼럼] 빨간머리 앤- 문복주(시인)
마침내 나는 빨간머리 앤이 초록 들판을 달리고 있는 그림을 2m 천에 인쇄해 현관 왼쪽 벽에 걸었다. 마침내 우리의 새 집은 ‘빨간머리 앤의 집’이 되었다.
지리산 자락 산골에 귀촌해 16년을 살았다. 어느 날 아내가 느닷없이 정색하며 집을 팔자고 했다. 거, 무슨 천둥 치는 얘기요. 요약하면 이렇다. 여자가 운전하여 산속을 오가는 것이 무섭다. 먼 훗날 행여 한쪽이 없다면 여자나 남자 홀로 산속에 살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람 구하기 별따기인데 1600평 땅을 어찌 관리하겠는가. 나이 들면 시장 가깝고 병원 ...정민주 기자 2018-11-16 07:00:00
[작가칼럼] 존재와 떠남에 대하여- 이윤(시인)
한 달 전 시내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할머니께서 지팡이에 몸을 반 이상 기댄 채 힘겹게 버스에 올랐다. “기사양반, 이 버스가 구포역 가는 거 맞지요?” “네, 할머니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몇 정거장을 달렸을까. 할머니는 건너편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던 다른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적막을 깨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이봐요. 00네 할머니 아녀? 아이고, 맞네! 나 모르겄어? 대구 살다 이사 간 00네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다른 할머니는 몇 마디 설명이 곁들여지자 이윽고 생각이 난 듯 ...2018-11-09 07:00:00
[작가칼럼] 이은상·권환, 모두 살아나야 한다!- 김인혁(시인)
이념적 근본주의자·정치적 메시아주의자는 그 자신을 공동체의 심판자로 착각한다. 진보와 보수 어느 쪽 시각을 갖든 배타성과 배제의 논리가 진영의 칼이 된다. 칼 포퍼(Karl Popper)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반증(反證) 가능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가질 때 열린 사회로 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합리주의다. 이는 그래서 중요하다. 문학자원은 지역정체성 형성에 풍성한 토양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지역공동체가 마산의 정체성 발양(發揚)을 위해 어떻게 해 왔는지, 특...2018-11-02 07:00:00
[작가칼럼] 진정한 관리자란?- 곽향련(시인)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직장에서 ‘장’이 갑질을 해도 당연시되듯 하였다. 자존심 상하고 더러워도 참고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갑질을 하면 발끈, 불끈한다. TV에서도 그런 실례가 여러 차례 나왔고, 온당치 않은 갑질은 당연히 이 사회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어느 계열의 직장에서는 새롭게 생겨난 말이 있다. ‘장’은 갑이 아니고 을도 아니요, 병이나 정쯤 된다고 한다. 직원에게 또는 민원인에게 더 고개를 숙여야 하는 요즘의 세태다.
그러나 간혹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 갑질이 곳곳...2018-10-26 07:00:00
[작가칼럼] 나무야 나무야- 문복주(시인)
함양엔 천년의 숲 상림이 있다. 신라 말 진성여왕 때 함양 태수로 온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을의 홍수피해를 방지하려 나무를 심었다. 그 숲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천년이 넘었으니 으뜸일 수밖에 없다. 천년 숲을 거닐다 보면 두 아름 넘는 나무들이 밑둥이 썩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본다. 줄기 군데군데 구멍이 나거나 옹이가 박힌 나무들도 본다. 나무가 천년 내내 있어 오지는 않았겠지만 아들에, 딸들이 커왔으니 삼사백년은 되지 않았을까? 삼사백년 풍상을 견디어 온 나무 숲 사이를 걷는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2018-10-19 07:00:00
[작가칼럼] 해바라기와 아버지- 이윤(시인)
밀양 산외면 남기리 기회송림공원 옆 강변 일대에 ‘해바라기 하늘에 날다’라는 애드벌룬이 보였다. 늦은 오후에 친구랑 해바라기 길을 걸었다. 방죽에는 키 작고 가녀린 해바라기들이 해 저무는 서녘을 향해 노란 불을 밝히고 있다.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와 연결되어 더 빠른 풍경으로 지나간다. 꽃길을 가로지르는 중앙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꽃길을 걷는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밀양강의 방치된 하천부지에 지난 6월 밀양시 산외면 마을 주민과 기관을 포함한 10개 단체의 100여 명이 1만3000평이 넘는 부지에 해...2018-10-12 07:00:00
[작가칼럼] 탈권위주의의 예술성- 김인혁(시인)
천상의 화원(花園)이었다. 지리산 천왕봉 바위 사이에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져 자욱한 안갯속에서 비바람에 젖은 산객(山客)을 맞이해 주었다. 이번 추석 직전 성삼재에서 세석을 거쳐 대원사로 종주산행을 하며 천왕봉에 홀로 서 있어 본 것도 경이로웠다. 천상의 화원이 주는 감동은 지상세계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경험이었다. 지리산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이 지닌 권위를 내 몸에 그대로 전해주었다. 본질을 담아내고 있는 권위야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권위의 수용은 정의(正義)로...2018-10-05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