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지금, 돌아서서 나를 만나다- 도희주(동화작가)
필자는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도서관상주작가지원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12월 1일부터 경상남도교육청 진영도서관에 출근하고 있다. 지원사업 신청 시 프로그램 중 자서전 쓰기를 기획했다. 자서전보다 더한 소설은 없다. ‘내 살아온 이야기는 책 몇 권 된다’지만 막상 쓰려면 망설이는 그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용기를 주는 일이었다. ‘은빛스토리텔링-자서전 쓰기’ 이름으로 14주 동안의 강의 여정이 이어졌다. 그 짧은 시간에 평생의 이야기를 다 정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니 모두 자...2019-04-26 07:00:00
[작가칼럼] 그림책, 의미와 맥락을 가진 네트워크- 박종순(아동문학가)
주마다 하루 기차여행을 즐긴다. 사실은 딱딱한 논문을 따져 읽으며 토론하는 곳을 향하는 길이지만 오가는 기차여행만큼은 즐기는 시간이다. 한 시간 남짓 달리는 기차 안에서 소설이나 시를 읽기도 하지만 어떨 땐 멍 때리기를 해도 여유 있어 좋다. 가끔은 그림책 한 권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보고 또 보며 볼수록 매력 있는 녀석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림책이 안겨주는 상상력에 한참을 설레기도 하니 자주 그러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강의 시간보다 세 시간가량 일찍 기차를 탔다. 특별한 그림책 여행...2019-04-19 07:00:00
[작가칼럼] 남강과 한강- 박영기(시인)
<형평문학제> 포스터를 유동인구가 많을 곳을 찾아다니며 붙이고 있다. 늦은 오후 인디시네마 진주미디어센터 앞에 도착했다. 곧 상영할 영화가 미니멀 시네아스트 박근영 감독의 <한강에게>이다. 서울의 한강을 주제로 시를 쓰는 시인의 이야기다. 영화 속 시인의 삶은 나와 뭔가 다른 게 있을까? 마침, 한숨 돌리기로 한다.
“괜찮냐고 묻지 말아줘…”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되잖아.”
애인의 사고 이후 상실감에 젖어 헤매는 영화 속 주인공 ‘진아’의 대사다. 대학에서...2019-04-12 07:00:00
[작가칼럼] 마창대교를 보며- 이장중(수필가)
야경은 낮의 풍경을 반전하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밤의 불빛을 보며 감동하고 위안받기도 한다. 작년 연말 마창대교 사진으로 엮여진 탁상달력을 선물받았다. 열두 장의 사진을 넘기다가 유독 야경사진에 눈길이 갔다. 검은 빛에 따사로운 조명을 쏟으며 서 있는 다리의 아름다운 야경이 바다로 투영되어 잔물결에 일렁거리는 장면이다. 문득, 사진 속을 벗어나 현장을 보고 싶었다.
마창대교의 밤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청량산 임도에 자리 잡은 팔각정이라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는 익히 알려진 곳...2019-04-05 07:00:00
[작가칼럼] 평범이 특별한 세상- 나순용(수필가)
‘평범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고 씌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싶어 한다. 색다른 점이 없다는 것은 시류에 크게 거스르지 않고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부모 세대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는 넉넉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월세에서 전세로, 또 작지만 내 집을 마련하며 삶의 보금자리를 꾸려왔다.
자식이 성장해 직장에 들어간 뒤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만들도록 힘껏 받쳐줬다. 또 그 ...2019-03-29 07:00:00
[작가칼럼] 영화 이야기- 손영희(시인)
영화를 보러 부산으로 원정을 간 적이 있다. 캐나다 드니 발뇌브 감독이 만든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였다. 진주에는 상영관이 없고 부산 코엑스몰 예술영화관 한 곳에서만 상영하고 있었다. 한 번은 진주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담은 ‘라비앙 로즈’를 보게 되었다. 그냥 시간이 남아 영화나 볼까 하고 갔다가 의외로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었는데 에디트 피아프가 부르는 샹송과 불우했던 그녀의 삶이 내내 마음에 남아 며칠 후 다시 가보니 내리고 없었다.
영화라면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보는데 요즘엔 F등...2019-03-22 07:00:00
[작가칼럼] 차라리 매화그늘에서 시라도 읽자-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살다 보면 왠지 시나 소설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낄 때가 있다. 소설이라도 ‘읽어줘야’ 밥벌이에 쫓기며 사는 자신이 좀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될 것 같고, 시라도 ‘읽어줘야’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라도 근사하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잠시일 뿐 먹고사는 일에 쫓기다 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싶게 잊고 살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자문한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뭣 하러 읽지?’
우리나라 사람만 그런 건 아니었던지 오래전 미국의 평론가이자 작가였던 로버트 펜 워런은 그의 저서 『...2019-03-15 07:00:00
[작가칼럼] 비상해라- 김현숙(수필가)
서글픈 보고서가 신문 사회면을 덮었다. 돈이 필요한 학생들이 제약회사의 ‘신약임상시험’을 자처하고 있었다. 시험의 목적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실시한다는 임상시험에 아이러니하게도 피험자가 ‘사람’이다. 물론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을 거친다고는 해도,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시험이 과연 이타적인 명분에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틀 동안 154㎖가량의 피를 뽑는다. 신약의 이상반응과 효능을 이 피로 검사하는 것이다. 그 돈으로 밀린 월세를 갚고 남은 돈으로...2019-03-08 07:00:00
[작가칼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나순용(수필가)
노자는 무위자연 사상을 주창한 사람이다. 그중 ‘무위지치(無爲之治)’는 천하를 다스리는 위정자가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노자의 대표적 정치철학이다.
노자는 무위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먼저 통치자는 마음이 맑고 고요하며 물욕을 갖지 말아야 하며, 규제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공을 이루더라도 공치사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중국의 고대 정치사상이라고는 하나 오늘날의 정치사회 현실에 비추어 깊이 되새겨 볼 ...2019-02-22 07:00:00
[작가칼럼] 느티나무 일기- 손영희(시인)
내가 살고 있는 정자리에 큰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그 나무 아래 나무 크기에 비례한 정자가 놓여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어른들이 나와 계신다. 화투도 치고 전도 부치고 아예 점심 저녁까지 해결하고 들어가시니 매번 밖에 나왔다 들어갈 때는 그분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집에 들어올 때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사다 드려야만 마음이 편하다. 마을에 조그마한 가게 하나 없다 보니 작은 것에도 무척 반색을 하신다.
좀 더 젊은 노인들은 하우스에 일하러 가고 거동이 불편해 일...2019-02-15 07:00:00
[작가칼럼] 복면가왕과 꼰대-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복면가왕’이란 프로가 있다. ‘미스터리 음악쇼’를 표방하며 출발한 이 노래경연 프로그램의 특징은, 얼굴을 가리고 가창력만으로 ‘가왕’을 뽑는다는 점이다. 나도 한때 이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시청자였다’라는 과거형 시제를 쓰는 건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정확히 말하면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출연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걸그룹이나 아이돌 가수들을 내가 못 알아보기 때문이다.
가면을 벗었는데도 그가 누군지 몰라서 ...2019-02-08 07:00:00
[작가칼럼] 충무로 한복남- 김현숙(수필가)
아들에게 별명이 하나 생겼다. ‘충무로 한복남’ 사진을 보면서 나름 짐작도 했지만, 내 눈앞에 선 아들의 모습은 놀랍고도 낯설었다.
귀 뒤로 넘겨 꽂은 머리카락이 목덜미 안쪽으로 수북하게 내려와 있었고 턱밑으로는 마구 자란 수염이 목젖을 덮고 있었다. 그나마 콧수염은 손을 좀 본 티가 났다. 지난 여름방학 때 다녀간 뒤로 처음이다. 늘 하듯이 아들에게 덥석 안겨 안부를 물었다. 대답보다 녀석 수염이 얼굴에 먼저 와 닿았다. “뜨시겠다, 야.” 어색했던 모양이다. 한다고 한 말이 그랬으니. 잠시 정적이 흘...2019-02-01 07:00:00
[작가칼럼] 목계지덕(木鷄之德)- 나순용(수필가)
‘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이다. 나무로 만든 닭처럼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을 ‘목계지덕’이라 한다. 장자의 ‘달생’ 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주나라의 선왕이 투계를 좋아해 기성자란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투계로 만들기 위한 훈련을 맡겼다. 기성자는 당시 뛰어난 투계 사육사였는데, 맡긴 지 십 일이 지나고 나서 왕이 그에게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사육사는 대답한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해 아직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2019-01-25 07:00:00
[작가칼럼]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손영희(시인)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의 요청으로 뜻하지 않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인은 고정적인 일꾼이 필요했고 나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에 대한 평소의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귤을 잘 따는 노련한 사람이 아니라 귤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 같은 초짜 일군을 초청한 것이다.
지인의 남편은 제주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다 퇴임한 분으로 귤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제주도의 대표 농산물로 손색이 없는 좀 더 맛있는 귤을 생산할 ...2019-01-18 07:00:00
[작가칼럼] 어느 수학교사 시인의 비애-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나는 ‘수학교사’이면서 ‘시인’이고 ‘문학평론가’이다. 사석에서 이렇게 소개를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이때 그들의 질문방식은 대개 이렇다. ‘어떻게 수학선생님이 시를 쓰고 평론을 해요?’
물론 이 질문의 이면에는 ‘수학과 문학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서 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수학과 문학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어떻게 시를 쓰고 평론하는 사람이 수학을 가르쳐요?’ 이렇게 묻지는 않는다는 거다. 같은 말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많이 다르다. 나를 수학교사로 보느냐,...2019-01-11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