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설국, 한계령 그리고 겨울나무- 이서린(시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다. 눈 내리는 풍경이 드문 남쪽 도시에 살았던, 열여덟 살의 내가 만났던 일본 소설과의 첫 만남이었다. ‘설국’이라니. 눈의 더미로 쌓인 풍경이라니. 그 설렘과 ‘설국’이라는 장소에 대한 동경이 새삼 생각나는 ...2021-01-14 20:14:12
[작가칼럼] 3월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양미경(수필가)
내키지는 않지만 신축년(辛丑年) 벽두부터 또다시 코로나19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2020년의 크리스마스는 내 기억에 역대 최악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오래되었다. 거리나 상가에 크리스마스트리와 캐럴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보기 어려워졌고, 풍성하고 흥겨웠던 거리의 풍경도 아기자기하던 가정집의 크리스마스트리도 사라져갔다. 그...2021-01-07 20:14:12
[작가칼럼] 마지막 한 장- 송신근(수필가)
마지막 남은 한 장 달력을 바라본다. 남은 한 장도 작은 바람결에 펄렁이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운 가슴은 내놓을 게 없다. 세월의 끝은 언제나 스산하다. 그래도 젊은 날의 십이월 끝자락은 내일이라는 벅찬 꿈이었고 뜨겁던 열정은 늘 미로와 같은 기대를 장식했었다. 허허로운 겨울밤, 적막 속에서 바라보는 밤 풍경은 커다란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축...2020-12-17 20:06:22
[작가칼럼] 습관적 희망사항, 새해- 김미숙(시인)
2021년 신축년(辛丑年) 하얀 소의 해가 지평선 너머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2020년 경자년, 흰쥐의 신성함으로 일이 술술 풀리기를 희망하면서 시작했던 한 해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또한 ‘흰 소는 신성함을 뜻하면서 인내와 부지런함, 순수함, 성실한 영향을 가지고 있고, 길한 기운도 가지고 있다’ 고 한다’,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근면과...2020-12-10 20:40:38
[작가칼럼] 너의 이름은- 이재성(시인)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이 있다.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시점이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코로나19가 뒤섞인다. 사라지는 직업군이 순위표를 작성하는 동안 코로나 이후 세계에 대한 모색이 활발하다. 미래학자들은 입 모아 도래해야 되는 세상이 더 빨리 왔을 뿐이라 말한다. 기술 ...2020-12-03 20:04:30
[작가칼럼] 오순도순 작은 행복 - 황영숙 (시조시인)
노모의 꼬부라진 손톱이 다 닳았다/우거진 야생의 덤불 다 걷어내기까지/밥 벌러 집나간 아들 신불자는 면했는지/미더운 영감가고 철망도 없는 밭을/시뻘건 비료포대가 외다리로 지키는데/후다닥, 스치는 새끼 오소리 눈망울이 아리다/오금 못 편 고용살이 제발 데려가라고/하늘에 대고 냅다 상앗대를 내지르자/와르르 쏟아진 별들 가막사리 씨가 됐다’ -(시 ‘12월...2020-11-26 21:00:53
[작가칼럼] 유리병 속의 죽음- 송신근(수필가)
찬바람에 하늘도 파랗게 얼어붙는 겨울이 되면 나는 바다를 찾는다. 검은 물결이 수면 위에 찰랑거리는 겨울 바다의 심연, 그 깊은 침묵에 다가서지 못한다면 내 삶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섬에서 태어나고 보낸 나의 유년기는 하나의 작은 그릇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 속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기억들이 몽돌처럼 담겨 있다.
그때부터 바...2020-11-19 20:36:34
[작가칼럼] 허수아비의 시간- 김미숙(시인)
어느 날 단풍잎 노란 시골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아 잠시 차를 세웠다. 한때 풍성하던 논은 이미 가을걷이가 끝났고, 들판 곳곳 짚단을 싼 비닐포장들이 마시멜로처럼 둥글게 말려 있다. 그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저 허수아비 하나. 요즘은 참새 쫓을 일도 없고 추수가 끝난 마른 논인데 허수아비가 필요할 리는 없다. 누군가 재미삼아 만들어 세...2020-11-12 20:22:09
[작가칼럼] 오늘 하루도 안녕하십니까- 이재성(시인)
만추가 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다. 철의 변화가 하루하루 쌓인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다. 거리마다 조금씩 울긋불긋한 낙엽이 덮인다. 순식간 떨어지는 기온 앞에 사람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점점 짧아지는 봄과 가을이 사라지진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낮아진 코로나19 단계에 가을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역마다 대표 가을축제가 저마다 코...2020-11-05 20:24:56
[작가칼럼] 화석처럼 엎드려- 황영숙(시조시인)
‘거름포대 걷어내자 도드라지는 동면/기우뚱 쏠리어도 꼼짝 않는 옴두꺼비/웅크린 축생의 잔등 덤불로 덮어주었다’ -(시 ‘화석처럼’ 일부)
세월은 잡아도 잡히지 않지만 그 사이에 우주 만물은 끝임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영원을 이어가고 있다. 시월도 하순, 꽃샘추위를 견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 채비를 할 때가 되었다. 추수를 끝내고, 김장...2020-10-29 20:04:50
[작가칼럼] 가을단상- 송신근(수필가)
낙엽이 곱게 물들고 있다. 움이 트고 잎이 피어나고 삼홍빛 가을향기 흘러나오다 한 잎 두 잎 바람에 실려 쓸쓸히 가라앉을 것이다. 가지들은 허허로운 하늘 아래서 긴 겨울의 침묵을 맞으리라. 가을은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무게를 헤아리는 계절, 낙엽이 지는 귀로에서 한 번쯤은 오던 길을 되돌아보며 순수해지고 싶은 계절이다.
이 가을의 ...2020-10-22 20:01:04
[작가칼럼] 마스크, 그 뒤가 궁금하다- 김미숙(시인)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쓰기가 의무화되더니 지금은 외출 때 마스크가 의관정제의 필수품이 된 것 같다. 거리에 나가면 무표정의 마스크들이 눈만 껌뻑이며 돌아다닌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좀 이상하다. 그 사람들 속에 내가 아는 사람이나 나를 아는 사람이 있어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상대가 용케 알아보고 인사하는데 ...2020-10-15 20:12:54
[작가칼럼] 청년의 날을 아십니까- 이재성(시인)
공기가 바뀌었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창문을 슬며시 닫는다. 곤히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삐죽 튀어나온 배꼽 위로 이불을 감싼다. 기다림이 무색하게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코로나 블루가 이어지는 힘든 날에도 한숨 돌릴 작은 순간이 찾아온다. 새벽에 눈 비비며 일어나 고갤 들어본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 부스럭거리며 반짝이는 소리 듣...2020-09-24 19:58:40
[작가칼럼] 숨바꼭질 - 황영숙 (시조시인)
‘숨가쁜 무연고자의 퇴로를 열어주며/울울창창 대숲이 무한정 흔들렸다/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들 높이 날았다’ -(시 ‘숨바꼭질’ 일부)
“아이 깜짝이야, 웬 개들이 이렇게 많아!”
텃밭의 컨테이너 밑에서 개 대여섯 마리가 후다닥 튀어나왔다. 몇 번을 텃밭에 와서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덩치가 엄청 큰 녀석과 중간쯤 되는 녀석들이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2020-09-17 21:44:06
[작가칼럼] 삼학도의 여명- 송신근(수필가)
여행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자기와의 만남에 있다고 하면, 생각하면서 자기를 재발견하고 나 아닌 나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마음이 아플 때는 치유를 하고 고독할 때는 그것을 떨쳐내고 새로운 내일을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돌아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항구도시 목포를 찾았다.
어린 시절 2년 남짓 생활한 적이 있는 목포라는 ...2020-09-10 19:5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