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다음에 술 한잔 사겠소- 송미선(시인)
겨울 가뭄이 유난히 심해 나라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은 캠페인을 통해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큰 산불을 만듭니다. 여러분이 산불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라는 호소문을 발송할 만큼 겨울 가뭄에 몸살을 앓았다. 다행스럽게도 기다리던 비가 제때에 내려서 봄이 성큼 다가서는 느낌이다. 산불로 잿더미가 된 헐벗은 산에도 봄비가 적셔주어 머지않아 새싹이 돋을 것이다. 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봄비처럼, 누구나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로 소리 없이 번지는 미소 하나쯤은 갖고 있다. 팍팍한 일상...2018-03-02 07:00:00
[작가칼럼] 새로운 눈물- 유희선(시인)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는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돌풍을 일으킨 영화 ‘신과 함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대사가 상황에 적절했는지도 의문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눈물에도 새로운 눈물과 새롭지 않은 눈물이 있다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렀다.우리는 과연 지나간 일에 대해 새로운 눈물을 흘리고 살까? 혹시 지나간 일에 오래된 눈물만을 흘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눈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감상에 젖어 울컥하는, 마치...2018-02-23 07:00:00
[작가칼럼]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는가- 이기영 (시인)
몇 년 전 비공식적으로 시인의 연봉이 100만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달 월급도 아닌 1년 연봉이라면 시만 쓰는 전업 작가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 시인이 20만명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6만명쯤 될 것이라고 한다. 20만명이든 6만명이든 시인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시인이 많은 나라가 됐을까. 돈도 안 되고 명예는 더더욱 없는데, 누가 요즘 시인을 알아준단 말인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하늘에 별이 떴는지 달이 떴는지 관심 둘 시간...2018-02-09 07:00:00
[작가칼럼] 구름 뒤에는 언제나 달이 있다- 손상민(극작가)
요즘 나는 엎어질지 모르는 공연의 대본을 쓰고 있다. 사실은 이 칼럼도 그 문제의 대본을 쓰다가 밀리고 밀려 마감 직전에 몰려서야 쓰는 중이다.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모든 글을 마감 직전에 쓴다. 작업기간 중 80% 이상을 구상에 할애하니까, 라고 말하고 싶지만 게으름 탓이다. 그래서 ‘글장이’가 되기는 글렀는지 모른다.(변명 같지만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글쟁이들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의뢰받은 대본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가무악극에 가깝다. 대사보다는 노래와 춤, 퍼포먼스 위주의 극이다. 주어...2018-02-02 07:00:00
[작가칼럼] 빈자리는 빈자리인 채로- 송미선(시인)
연일 맹추위가 기승이다. 전국을 영하권으로 끌어내린 수은주는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종종거리는 발걸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꽁꽁 얼어붙었다. 빙판으로 변한 도로는 크고 작은 낙상사고와 운전자들을 긴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늘길과 바닷길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물리적 추위만큼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대적 결핍감을 느낄 때다. 결핍의 사전상 의미는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랄 때를 말한다. 메우거나 피해갈 수 없는 선천적이거나 본질적인 결핍도 있지만, 현대사회...2018-01-26 07:00:00
[작가칼럼] 물고기와 춤을- 유희선(시인)
적막한 한낮, 거실에는 물고기들만이 움직이고 있다.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 같다. 한 공간에서 최대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소극적인 모양새가 마치 식물 같다. 15년간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난 뒤, 다시는 집안에서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건만 결국 물고기로 타협을 보게 된 것도 그런 만만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반려견과의 15년은 한 해 한 해가 달랐다. 사람과 동물 간의 거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절감케 됐다. 반면 물고기는 철저하게 다른 세상에서 온 그 무엇이었다. 오른쪽 귀에서 왼...2018-01-19 07:00:00
[작가칼럼] '신과 함께- 죄와 벌'- 이기영(시인)
2018 새해 연휴기간에 필자는 ‘신과 함께 - 죄와 벌’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워낙 이슈가 된 영화이기도 했지만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를 애독하고 있는 독자로서 동명영화인 이 영화가 작품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11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면서 무서운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식 지옥, 즉 죽음 이후의 세계관을 통해 현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우리는 죽음 이후가 어떠한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2018-01-12 07:00:00
[작가칼럼] 오로지 무사하시기를- 손상민(극작가)
연말연시를 응급실에서 보냈다. 40도 넘게 열이 펄펄 끓는 9개월 젖먹이 둘째를 꽁꽁 싸맨 채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대기인원만 60여명.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를 받기 위해 2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갔다. 그곳 역시 바글바글 북새통이었지만 1시간 남짓 기다린 후 진료 기회를 얻었다. 하루 종일 칭얼대던 아이는 출발 전 먹였던 해열제가 효력을 발휘했던지 막상 의사에게 보였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의사는 아이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집에서 ...2018-01-05 07:00:00
[작가칼럼] 당신의 시간- 정정화(소설가)
2017년을 며칠 남겨둔 한 해의 끝자락, 이맘때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해마다 새해에는 촘촘히 계획을 짜서 적어두고 좀 더 나은 시간을 보내겠노라고 다짐하곤 한다. 이즈음이 되면 후회할 일이 있게 마련이다. 예기치 못한 복병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비한 시간은 더 아쉽게 다가온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갈 뿐인데도.얼마 전 경주의 한 왕릉을 찾았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찬바람에 살갗이 시려 왔다. 안내소를 지나 문인석, 무인석, 돌사자상이 보이는 입구에 들어서자 도래솔에 둘러싸여 햇살을 받은 왕릉이 ...2017-12-29 07:00:00
[작가칼럼] 들리는 말- 문저온(시인)
한 영화잡지의 ‘올해의 외국영화 베스트5’를 읽고 있던 참이었다.‘덩케르크’, ‘엘르’, ‘토니 에드만’을 읽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문라이트’를 소개한 글을 읽는 중이었다. 역시나 영화의 아름다운 구절 ‘달빛 아래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를 읽고 있는데, 그때는 마침 켜놓은 라디오에서 광고방송을 내보낼 때였다. ‘왕초보오-’ 하는 귀에 익은 광고가 유난히 공기를 때려 울리고, ‘달빛 아래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가 눈과 가슴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둘은 내 안에서 별스런 충돌을 일으켰다.당연하게도 둘은 청각과 ...2017-12-22 07:00:00
[작가칼럼] 롱패딩과 뜨개질- 김형엽(시인)
롱패딩 바람이 강력하게 불고 있다. 그야말로 광풍이다. 두 딸을 둔 나는 겨울을 채비하며 적잖이 고민이 되었다. 저렴한 가격대라도 남들처럼 롱패딩을 사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큰 아이는 롱패딩을 입기에 키가 크지 않다며 사양했고, 작은 딸은 유행을 따라가기 싫다며 과감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지만 어느새 제2의 교복처럼 되어버린 롱패딩을 사주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마치 무능한 엄마처럼 느껴져 머릿속이 잠시 복잡하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유행쏠림...2017-12-15 07:00:00
[작가칼럼] 삼송암(三松巖)에서- 도희주(동화작가)
얼마 전 전남에서 산세가 거칠다는 영암 월출산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최초라는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에서 ‘바람재’를 향해 바위산길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등산 지도에 이름도 없는 날카로운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족히 40m 남짓 높이. 가파른 삼각구조. 위험을 느낀 일행들이 급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필자는 등지고 갈 뻔했던 다른 면을 올려다보았다. 자칫 보지 못했을 진기한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얼른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바위 정점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또 한 그루. 주위에 큰 소나...2017-12-08 07:00:00
[작가칼럼] 느림에 대하여- 정정화(소설가)
기차가 지나는 강변마을에 매화가 피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얀 꽃송이를 막걸리잔 속에 띄웠다. 파르스름한 하늘에 매화가 수를 놓고 강은 유유히 흘렀다. 잔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이파리를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는 지금, 매화 향은 사라지고 쉬쉬 찬바람이 오래된 나목을 스친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매화나무 옆 국숫집은 한산하다.완행버스를 타고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가는 길이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 튼튼한 다리를 가진 나지만 흔들리는 버스로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줬다. 몇 정거장 지났을 때였다. 벨...2017-12-01 07:00:00
[작가칼럼] ‘청록’과 포호삼법- 문저온(시인)
‘생리대’ 때문이었다. ‘청록’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청록(靑鹿)은 푸른 사슴. 해방 후 최초의 창작시집이라는 ‘청록집’을 펴낸 청록파 세 사람 중 목월과 지훈의 대화로 연극은 펼쳐진다.무대는 두 사람이 거나하게 취하는 막걸리집. 탁자와 주인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공간적 배경이 그러한 것은 시간적 배경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 일제의 검열로 창작물이 훼손되고 시인은 불려가 취조를 당하는 이를테면 이런 상황이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외? 외? 이건 대일본제국을 폄하하는 말 아닌가? 조선놈들이 외를 ...2017-11-24 07:00:00
[작가칼럼] 릴케와 고독과 포구나무 한 그루- 김형엽(시인)
거리마다 낙엽이 뒹굴고 있다. 내게 무어라 할 말이 있다는 듯 원을 그리다 말고 쪼르르 어디론가 달려가는 낙엽들을 보며 릴케의 시 ‘가을날’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 본다.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릴케가 말한 ‘지금 혼자인 사람’은 다름 아닌 고독을 자처한 사람이다. ‘고독은 비와도 같다’고 한 릴케는 그의 대표작, ‘말테의 수기’, ‘두이...2017-11-17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