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현장감식을 위해 사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성승건 기자/
17일 새벽 4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집을 고의로 불낸 뒤 대피하는 주민들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18명이 사상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단지. 사건이 일어난 곳과 채 50m도 떨어지지 않은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는 이날의 참극을 어렴풋이 짐작케 하는 흔적이 오전 내내 종이박스로 덮여져 있었다.
오후 1시께 혈흔을 지우기 위해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나와 박스를 걷어내고 피에 들러붙은 박스 일부도 떼어냈다. 이들은 이내 소방호스를 연결해 무심히 바닥에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며 참극의 흔적을 씻어냈다. 이곳 외에도 A씨가 방화·살인을 저지른 아파트에 가까이 다가서자 입구와 지하주차장 인근 아스팔트 도로 곳곳에는 혈흔이 남아 있었다. A씨가 불을 지른 이 아파트 4층 베란다는 새카맣게 탄 방충망이 절반 정도 뜯겨져 나가 있었으며, 숨진 18살 학생이 살았던 바로 위층 집 베란다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도 방화의 흔적이 그을음으로 나타나 있었다.
이날 흉기난동범의 끔찍한 범행이 바닥에 남긴 흔적은 시간이 지나며 차츰 걷히고 있지만, 주민들의 공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겁게 아파트단지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은 진주에선 처음이지…. 불안해서 우째 여기서 살아야 하노.” “신고도 여러 번 했다 그러더만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겨서 우짜노.”
이날 오후 1시께 아파트단지 벤치에 앉아 있던 입주민들은 불과 8시간여 전에 일어난 끔찍한 참극을 떠올리며 공포에 치를 떨었다.
이번 참극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공포감 이면에는 ‘왜 진작에 이런 사람을 막지 못했느냐’는 원망의 목소리도 깔려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맞은편 동에 사는 주민 이모(40)씨는 “지난해에 위층과 엘리베이터에 인분을 던졌고, 지난달에도 위층에 오물을 투척해서 신고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런 헛짓거리를 했을 때 왜 경찰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제대로 대처를 안 했는지 모르겠다”며 “A씨 같은 사람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두려워했다.
아파트단지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신모(26)씨는 밤 11시까지 영업하지만 이날은 오후 6시까지만 하고 일찍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진주에서는 몇 년 전에 한 공원에서 ‘묻지마 살인 범죄’가 있었는데, 이 정도로 끔찍한 일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며 “이 같은 흉악범죄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돼 너무 무섭다”고 했다.
경찰은 조사 내내 횡설수설하고 있는 A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는 한편 사건이 일어난 해당 아파트 출입구에 대한 출입통제와 아파트단지 일대 순찰도 병행하고 있다. 진주시와 국립부곡병원, 대한적십자사는 이 아파트단지 관리사무소 건물에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도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