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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30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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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김시탁의 전원산책] (6) 고성 그레이스 정원

수십만 수국·뾰족한 갤러리·작은 예배당… 드넓은 정원서 더없는 힐링!

  • 기사입력 : 2024-06-27 21: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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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산 뒷자락에 자리한 동화 같은 비밀의 숲
    입구 양쪽 운치 머금은 ‘꽃의 여왕’ 수국 가득
    메타세쿼이아 숲길·넓은 잔디마당 등 인기
    분수 솟는 연못·빨간 공중전화 부스도 눈길


    꿈에도 물 주면 자란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이 기름지면 척박한 땅에서도 꽃이 핀다는 걸 알았다.

    고성군 상리면 백운산 뒷자락에 자리한 그레이스 정원.

    꿈을 파종하고 수행하며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흙에 묻은 여장부의 결실이 30만 주 수국으로 꽃을 피웠다.

    지상의 별처럼 환한 등을 달고 사람들 가슴을 밝혀주는 곳.

    동화 속 비밀의 숲과 같은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분수 연못이 있고 작은 예배당이 있고 숲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도서관과 지붕이 뾰족한 갤러리가 있는 곳.

    입장권으로 커피를 제공받는 야외 카페 벤치에 앉아 바람이 전해주는 수국의 향기에 흠뻑 취해보라.

    새들이 불러주는 정겨운 노랫소리에 취해 같이 가도 홀로 있는 듯하고 혼자 가도 둘이 있는 듯하다.

    고성 그레이스 정원에 활짝 핀 수국. 이곳에는 30만 주가 넘는 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성 그레이스 정원에 활짝 핀 수국. 이곳에는 30만 주가 넘는 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성 그레이스 정원

    북면 마금산 온천에서 온천업을 경영하는 조행연 대표는 20년 전에 백운산 뒷자락인 고성군 상리면 동산리 797-1번지 일대 임야 17만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잡목을 제거하고 돌들을 들어내고 척박한 땅을 밀어 다양한 꽃나무와 화초들을 심기 시작했다. 30만 주가 넘는 수국이 유월이면 지상의 달덩이처럼 사람들 가슴을 밝히는 군락을 이루는 그레이스 정원의 시작이었다.

    필자가 아는 조 대표는 한때 고성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막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손이 거칠어져 있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그분에게서 그레이스 정원의 포부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온천업으로 ‘때돈’을 버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산을 개간해 정원을 만든단 말인가, 거기다가 나이도 있는데 편히 사시지 당대에 마무리될지 후대로 넘어갈지도 모를 일에 목을 매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분은 초연했고 담담했으니 꿈을 담는 그릇이 남달랐다. 그 그릇에 담긴 꿈이 당대인 2020년 6월에 오늘의 그레이스 정원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그분은 척박한 땅을 일구어 단순한 식물을 가꾼 게 아니라 원대한 꿈을 향해 물을 주며 거의 20년의 세월을 수행하듯 가꾼 것이다. 필자는 한창 정원이 조성 중일 때 한 번 다녀온 후로 발길을 멈췄었는데 수목의 절정 시기에 맞춰 다시 찾았다.

    창원에서 출발해서 고성군 상리면 동산리 그레이스 정원에 당도하기까지는 1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일기예보에 비가 잡혀있고 출발시 가는 빗살이 떨어지기에 일정을 미룰까 하다가 곧 장마가 닥친다기에 강행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흐린 날씨가 사진을 찍기에 썩 좋은 날은 아니었다. 오전부터 매표소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성질 급한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숲속에서 만나는 지붕이 뾰족한 갤러리.
    숲속에서 만나는 지붕이 뾰족한 갤러리.

    그레이스 정원의 관람 시간과 입장료가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관람 시간은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주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로 연중무휴란다. 입장료는 성인이 1만원, 어린이와 고성군민이 6000원, 기타 8000원이다. 다른 곳에 비해 입장료가 저렴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매표하면 인원수만큼 입장권을 나눠줘서 입장권으로 카페에서 1인 1 음료를 제공받는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생각도 사라진다. 필자는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주차장에 차를 댔다. 본관 갤러리부터 인파가 몰려들어 그레이스 정원의 인기를 방증했다.

    그레이스 정원 입구에 있는 입간판.
    그레이스 정원 입구에 있는 입간판.

    ◇동화 속 비밀의 숲

    그레이스 정원은 주변 숲속에 아담하게 둘러싸여 있어 마치 동화 속 비밀의 숲을 연상케 했다. 주차장에서 나와 본관 갤러리를 지나면 입구 양쪽부터 빗물을 머금은 수국이 운치 있게 피어 있었다. 꽃의 여왕답게 격조 있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에 마음을 뺏길 겨를도 없이 펼쳐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과 돌계단을 오르는 길이 나타나는데, 파란 수국이 발목을 덮은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바로 가면 작은 교회가 있고 돌계단을 올라가면 야외 공연장과 넓은 잔디마당이 나온다. 거기 작은 야외 카페에 입장권을 제시하면 커피나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야외 카페 벤치에는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어 빈자리가 없었다. 야외 공연장 쪽 돌계단을 통하여 폭포 연못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쾌적한 공기와 신선한 바람을 맞으니 온몸 혈관 속으로 녹색의 피가 투여되는 듯 청초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계단을 거의 올랐을 무렵 인기척에 놀란 다람쥐 한 마리가 오줌을 찍 갈기고 얼른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가 경쾌하고도 정겨웠다. 카메라로 숲을 담는데 화면 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메타세쿼이아길.
    메타세쿼이아길.
    잔디광장.
    잔디광장.

    ◇비의 꽃 수국

    그레이스 정원은 다양한 나무들과 화초들이 자라고 있지만 그중 거의 절반을 수국이 차지한다. 수국은 6월에 피기 시작하여 6월 말에서 7월 초에 절정을 이루는데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5월에도 피는 꽃을 볼 수 있다. 수국이 피는 시기가 되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비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잔디광장 수국
    잔디광장 수국

    수국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명으로 수구 또는 수국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옛 문헌에는 ‘자양화’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수국은 다양한 원예품종으로 개량되면서 암술과 수술이 모두 퇴화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까닭에 씨앗으로는 번식이 되지 않아 삽목(꺾꽂이)으로 번식을 한다.

    ◇변신의 꽃 수국의 꽃말과 종류

    수국은 반그늘이나 습기가 많은 비옥한 토양을 좋아해서 꽃을 피울 때는 땅의 성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성질이 있는데 산성이 많은 땅에서는 청색 빛을, 알칼리성 땅에서는 붉은색 빛을 띤다고 한다. 수국을 전문으로 재배하는 경우 이러한 성질을 활용하여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색상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듯 최초 개화시에는 연두색이었다가 흰색으로 바뀌고 분홍색인가 싶었는데 다시 푸른색으로 변한다.

    잔디광장 수국
    잔디광장 수국

    이러한 특성에 따라 꽃말도 색상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보라색은 진심, 분홍색은 처녀의 꿈, 파란색은 참을성, 애정, 거만, 냉정, 흰색은 변덕, 변심. 이렇게 색마다 뜻이 다른 것이다. 그중에서 보라색의 꽃말은 진심이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 보라색 수국이 선물로도 적합할 수 있겠다.

    수국의 종류도 별수국, 산수국, 목수국, 큰잎수국, 오크잎수국, 부드러운수국, 원추꽃차례수국, 등산수국 등 다양하다. 그레이스 정원에는 이 모든 수국들이 꽃을 피우지만 적기를 놓치면 기회를 잃는다. 그러니 수국의 개화가 절정을 이루는 6월 중순부터 7월 초순에 이르러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전국적으로 수국 축제가 한창이다. 경남에서도 이 시기가 되면 여러 곳에서 수국축제가 열린다. 고성의 경우 그레이스 정원을 비롯해 만화방초 수국축제가 있다. 또한 창원 수목원과 거제 저구항, 김해 수안마을에서 열리는 수국축제도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는 곳이다.

    비의 꽃 수국은 화창한 날도 좋지만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감상하기에도 너무 좋은, 청초해서 매혹적인 꽃의 여왕이다.

    ◇그리움에게 거는 전화부스

    그레이스 정원에는 그리움이 추억과 통화하기 좋은 빨간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공중전화부스
    공중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가서 동전 대신 기억을 넣고 다이얼을 돌리면 전화를 받는 추억의 희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움이란 소환할 추억의 안부가 궁금할 때 하염없이 출렁인다. 소환할 추억이 그립다면 망설일 것 없이 빨간 전화부스로 들어가라. 검문을 끝낸 바람이 문을 닫아주면 바로 그리움 쪽으로 가슴을 열고 추억의 다이얼을 돌리면 된다. 신호음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부정맥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정원에 젖을 물린 연못

    베데스다 연못.
    베데스다 연못.

    정원의 완성은 연못이다. 정원에 물릴 젖줄도 연못이다. 연못이 없는 정원은 잉태할 수 없는 여인의 자궁과 같다. 그레이스 정원에는 본관 갤러리에서 종려나무 길을 지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분수가 솟는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숲속 연못으로도 이어진다. 야외 공연장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폭포 연못과는 사뭇 근육이 달라 잔잔하지만 정원으로 물린 젖꼭지는 시퍼렇게 유선이 살아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성향에 맞는 연못을 카메라에 담아 가서 추억이란 메모리에 저장한다. 건조한 추억보다 수분이 있어 촉촉이 젖은 추억은 훗날 끄집어내어 만지작거리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연못 분수가 흐린 하늘을 향해 뿌리는 비는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종려나무길.
    종려나무길.
    예배당가는길
    예배당가는길
    작은 교회 예배당.
    작은 교회 예배당.

    ◇날려 보낸 드론

    예배당 앞에서 정원 전체를 항공 촬영하기 위해 드론을 날렸다. 숲에 둘러싸인 정원에 드론을 띄울 만한 공간이 없는 데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숲이 하늘을 가려 시야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그나마 하늘 공간이 트인 예배당 앞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드론을 띄워 구도를 잡아보니 메인으로 쓸 만한 사진을 촬영하기에는 부적절했다. 정원 전체의 구도는 나오지만 화려하게 핀 수국을 항공촬영으로 담기에는 선명도가 떨어졌다. 고도를 높였다가 낮추었다가 방향을 틀었다가를 반복하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지만 만족도가 떨어져서 항공촬영을 포기하고 드론을 복귀시키려니 시야를 벗어나 찾을 수가 없었다. 원점 자동 복귀 시스템을 가동시켜도 비상벨 울림과 함께 오류가 떴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아 착륙 시점을 상세 검색하니 목적지에서 200m를 벗어난 숲속 나무에 걸렸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가 드러났다. 도토리나무 잎이었다. 온 산천이 울창한 숲인데 어느 도토리나무에 걸렸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안다 한들 정원을 벗어나 산 중턱 나뭇가지에 걸린 듯한데 무슨 재주로 수거할 수 있는가. 결국 드론은 정원 모습을 담아 오기는커녕 제 몸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애써 키운 자식이라도 두고 오는 듯 착잡한 심정으로 정원을 나와 한참을 달리다가 점심 삼아 메밀국수를 시켜 먹는데 자꾸 목구멍에 걸렸다. 오전을 참았던 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장마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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