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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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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 숙의민주주의시대 열다] (3) 덴마크 시민합의회의

시민 자발성·중립성으로 이룬 ‘덴마크식 합의’
1977년 미국서 시작된 회의방식 들여와
전문가 대신 시민 참여형 모델 만들어

  • 기사입력 : 2019-11-21 21: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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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크는 사회갈등을 잘 관리하는 선진국 중 하나다. 덴마크는 갈등이 예상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시민 의견을 묻고 민주적이고 객관적 방식으로 공론화한 후 이를 정책 결정에 중요하게 반영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왔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덴마크의 ‘시민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다. 6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인구규모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에 차이가 있지만 시민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강력한 의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시민참여단 구성과 운영 과정의 객관성, 공정성, 중립성 유지 등을 눈여겨볼 만하다.

    덴마크 국회에서 열린 컨센서스 콘퍼런스의 청중들./덴마크 과학기술위원회/
    덴마크 국회에서 열린 컨센서스 콘퍼런스의 청중들./덴마크 과학기술위원회/

    덴마크의 시민합의회의는 국민이 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정책 입안자에게 시민의 생각을 알리기 위한 참여형 회의로 정의된다. 1977년 미국 국립보건원이 유방암 검진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회의이지만 덴마크는 이 방식을 들여와 전문가 대신 시민을 참여시키도록 바꾸고 의학뿐 아니라 과학기술, 사회, 윤리 등 사회적 이슈로 논의 범위를 확대해 덴마크 만의 ‘참여형 합의방식 모델’을 만들었다.

    덴마크는 1985년 과학위원회법에 근거해 이듬해 국회 산하 기술위원회(Danish Board of Technology Foundation )에 시민합의회의를 위한 조직을 만들었고 1987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1995년에는 영구법으로 개정돼 시민합의회의의 존재와 활동이 보장받게 됐다.

    덴마크 시민합의회의에 참여한 시민패널들이 첫날 저녁에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덴마크 과학기술위원회/
    덴마크 시민합의회의에 참여한 시민패널들이 첫날 저녁에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덴마크 과학기술위원회/

    그동안 덴마크 시민합의회에서는 농업과 산업에서의 유전공학 응용, 식료품에 대한 방사능 이용, 동물에 대한 유전자조작 실험, 식품과 환경에서의 화학물질 위험성 평가, 유전자치료, 유전자변형 식품 재배 등 과학기술적인 이슈뿐 아니라 불임치료, 전자주민카드, 원격노동, 소비와 환경, 가상현실, 어업의 미래 등 사회이슈 등도 다뤘다.

    덴마크 합의회의의 진행과정은 이렇다.

    의제를 선정한다. 공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기술위원회가 의제를 선정하지만 어떤 사회이슈를 시민합의회의의 의제로 제안하는 권한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특정 이슈에 관심이 있는 이해당사자일 수 있고, 기업, 학생, 시민단체 등도 의제 제안이 가능하다.

    의제가 정해지면 합의회의 일정을 관리하고 정보 자료 감독, 합의문 작성을 맡을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

    이후 합의에 참여할 시민패널 참가자를 모집하는데, 이때 표본으로 추출된 2000명가량의 시민들은 자기소개서와 합의회의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기술위원회는 참여희망자를 지역, 연령, 성별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검토한 후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 등에 근거해 10~30명의 시민패널을 선발한다.

    시민패널 구성이 끝나면 의제에 대한 정보자료가 제공된다. 시민패널들이 정보자료를 이해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의제에 대한 질문을 뽑는다.

    이 질문을 바탕으로 전문가패널이 구성된다. 전문가패널의 범위는 과학기술, 사회과학, 윤리학, 노조, 기업, 환경단체 등 매우 다양하다. 시민패널은 정보자료에 대해 추가 토론을 하고 질문을 수정하고, 필요에 따라 더욱 적합한 전문가패널을 추가하거나 변경한다. 기술위원회가 전문가패널 선정을 마무리하면 시민패널이 작성한 질문지가 전문가패널에 전달되는데 전문가들은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공개포럼’(콘퍼런스)이라 불리는 본회의 절차에 돌입한다.

    첫날에는 전문가들이 20~30분간 각자 의견을 발표하고 시민패널과 질의·답변한다. 이튿날에는 의견차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 시민패널이 전문가패널을 대상으로 점검한다.

    셋째날까지 공개회의를 거친 후 시민패널은 토론 쟁점과 합의내용, 의견 불일치 부분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한다.

    넷째날 전문가패널은 시민패널의 보고서를 확인하고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는 절차를 거친다. 이때 잘못된 사실관계는 바로잡을 수 있지만 의견에 대한 수정은 불가능하다. 이후 시민패널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고서를 공식발표하는 것으로 시민합의회 전 과정은 마무리된다. 이 4일간 공개 토론, 합의과정은 언론을 통해 중계돼 일반 국민들도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도출된 시민합의회의의 결정은 법적 효력은 없다. 하지만 국회, 정부, 국민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국회나 정부는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합의회의 절차를 거친 이슈나 정책, 사업 등은 더 나은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확신, 보다 큰 정당성과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합의회의를 거치면서 이슈를 인식하고 관련 정보를 얻게 되며 나아가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게 된다.


    /인터뷰/ 라스 클루버 (덴마크 국회 과학기술위 디렉터)

    “의제 따라 적합한 합의방식 적용 중요… 시민패널에 충분한 정보·숙의시간 제공”


    -시민합의회의가 만들어진 덴마크의 배경은

    △덴마크 시민합의회의는 정부의 정책 수립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게 하고, 시민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정부와 국회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모아 민주적인 결정을 할 수 있고 정부나 국회는 의사결정을 하는데 책임을 강화하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덴마크 시민합의회의는 어떻게 발전돼 왔나

    △제도 도입 후 수많은 합의회의를 개최하면서 시행착오도 거쳤고, 더 나은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15가지 레벨이 있고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한 30가지 정도의 방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슈나 상황에 따라 적합한 합의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제에 따라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10여명 시민패널의 대표성은 충분한가, 시민패널 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뭔가

    △우리는 12~16명 정도의 시민 패널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패널과 전문가 패널을 구분한다는 점이다. 정해진 의제의 전문가, 관련 기관 관계자, 이해관계자 등은 시민패널에서 철저히 배제한다. 의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들로 패널을 구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민합의회의에 걸리는 기간이 6개월인데 정부와 국회는 이를 존중하나

    △그렇다. 시민 패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의제에 대해 정확하게 잘 알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 전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3~4개월이 걸린다. 시민합의회의는 보통 6개월이 걸리는데, 정부나 국회는 시민 패널에 어떤 압박이나 재촉 없이 충분한 시간을 주고 기다린다.

    -제도에 대한 덴마크인의 평가는?

    △덴마크는 인구수가 적고 대규모 정당이 정권을 오래 잡은 적이 없다는 특성이 있다.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함께 의사 결정을 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정부나 국회, 정당의 결정은 물론 시민합의회의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제도에 대한 이의는 없고 다만 어떻게 하면 지금의 정책을 발전시킬 것인가를 원한다. 덴마크인들은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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