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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날 절집은 이리 고요하다
흩날리는 눈발에 독경소리 그치고
멀리서 장부를 닮은
탑이 하나 걸어온다
장터에서 해장술 서너 잔 걸쳤는지
옥개석에 쌓인 눈을 훌훌 털어내더니
눈 속에 발을 파묻고
이내 탑이 되었다
눈 오는 날엔 석탑도 술 한 잔 생각이 나지 않을까. 스님 몰래 절집을 나와 읍내 장터에서 뜨끈한 국물에 막걸리 몇 사발, 시큼한 총각김치 씹으며 쓰윽 입을 닦는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눈 쌓인 절마당에서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상. 죽장리 오층석탑은 이런 사내를 닮았다. 키 크고 훤칠한데 약간은 치기 어린 모습의 탑신이 그런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내 맘이 꼭 그래서인지 퍼뜩 절 구경 끝내고 뜨끈한 국물에 낮술 한잔 걸쳤다.
사진 손묵광, 시조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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