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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 시즌2] (25) 환경영향평가 변천사

‘보전과 개발의 조화’ 아직도 갈 길 멀다

  • 기사입력 : 2019-04-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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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속가능한 발전은 우리 사회의 여전한 화두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또는 사업을 수립·시행할 때 해당 계획과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 예측,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하고 쾌적한 국민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수십년간 제도적 보완을 거쳐 왔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등 환경보전보다는 사업 진행의 면죄부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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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전 낙동강유역환경청 앞에서 창녕 대봉늪 제방공사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최근 경남도내 환경단체는 창녕 대봉늪을 가로지르는 제방공사가 포함된 대야 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공사로, 1등급 습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공사 진행에 앞서 환경영향평가서(전략·소규모)가 부실하게 작성됐다고 주장하며 낙동강청에 재평가를 요구하면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매년 상습적인 침수피해를 겪어온 창녕군 지역주민들은 생존권이 걸린 숙원사업에 제동이 걸리자 거세게 반발했고, 양측의 갈등은 심화됐다. 지난 17일 낙동강청은 지난해 말 도입된 환경영향평가서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추진해 환경영향평가의 거짓·부실 여부를 검토키로 하는 한편, 창녕군과 이 공사의 대안을 모색하는 민관실무협의회 구성에 합의했다.

    ◆환경영향평가 변천사=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1980년 당시 보건사회부 산하 환경청(현 환경부)이 신설되고, 1981년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에 관한 규정’이 제정·고시되면서 본격 시행됐다. 행정기관 간 협의 기능만 강조되던 환경영향평가에 주민참여와 정보공개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환경청이 환경처로 승격되면서 환경보전법이 폐지되고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1991년 제정된 환경정책기본법으로 이관되면서다. 이때 사후관리제도와 함께 주민의견 수렴 제도가 신설됐다. 하지만 형식적인 주민의견 수렴과 사후환경관리 부실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1993년 설명회·공청회를 의무화하고 사업 승인기관에게 협의요청과 사후관리를 담당하도록 한 환경영향평가법이 단일법으로 제정됐다. 당시는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등 환경과 관련한 국민적 관심이 급상승하던 시기였다.

    1997년에는 시·도 조례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면서 지방사업에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게 됐다. 또한 평가서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검토 및 평가기법의 개발과 보급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도 설립됐다. 이후 부실·거짓 보고서 작성을 막기 위해 평가서 작성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조치도 뒤따랐다.

    2011년에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을 통해 ‘전략환경영향평가’ 개념도 도입됐다. 환경정책기본법에 의사결정의 상위단계인 정책 또는 계획 단계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사전환경성검토제도’가 있었지만, 각각 다른 법률에 의해 규정돼 평가절차가 복잡하고 환경영향평가의 일관성과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1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이 같은 갈등 발생 시 환경영향평가서를 판단하는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규정했다.

    ◆끊이지 않는 환경영향평가서 거짓·부실 논란=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 시행령 개정안에서 알 수 있듯 환경영향평가서 부실·거짓 작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된 논란이다. 평가서에는 동·식물상, 대기질, 수질, 지형·지질, 소음·진동, 경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예측·평가한 내용과 이에 대한 보전 방안이 제시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법정보호종 등 동·식물을 평가서에 기재하지 않는 등 자연생태조사 분야에서의 거짓·부실 작성 문제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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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대봉습지에서 진행되는 ‘대야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78만4000㎡ 규모의 대봉습지 중 사업이 진행되는 곳은 2만8000㎡’ 정도다. 이 사업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책임자인 창녕군이 선정한 평가 대행업체는 문헌조사 이외 해당 지역의 생태계 현황을 직접 파악하는 동식물 분야 전체에 대한 현지조사를 3일간(야간조사 1회 포함)만 진행했다. 이마저도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관인 환경부 산하 낙동강청에서 해당 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추가 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으로, 당초는 하루만 진행했다. 업체는 정부기관 등에서 내놓은 문헌자료상에는 법종보호종 서식지가 확인되지만, 3일간의 현장조사에서 법정보호종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기재했다. 해당 평가서는 예측하지 못할 상황이 나타나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으로 낙동강청의 조건부 동의를 받았다.

    과거에는 이같이 평가서에 법종보호종이 미기재된 채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완료돼 공사를 진행했다가 멸종위기종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사례가 많았다. 지난 2017년 10월에는 양산시 상북면 양산천 지류에서 진행된 양산천 수해복구사업 중 멸종위기종 1급인 얼룩새코미꾸리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사업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얼룩새코미꾸리가 포함되지 않았다. 창원 구산해양관광단지 조성 예정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에도 보호대상 해양생물인 기수갈고둥과 갯게가 기재되지 않은 채 2014년 평가 협의가 완료됐다가 2017년 환경단체가 현장조사를 진행하던 중 두 법정보호종을 발견하면서 재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평가서 거짓·부실 작성, 처분사례 ‘전무’= 하지만 환경영향평가서 부실로 행정처분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환경부와 낙동강청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전국의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에서 위반사항이 적발돼 행정처분한 건수는 2016년 49건(낙동강유역환경청 10건), 2017년 40건(7건), 2018년 39건(4건) 등 모두 128건(2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평가서 부실 작성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기술인력 부족’이 해마다 31건(6건), 40건(4건), 38건(3건) 등 대다수였지만, 부실 작성으로 처분받은 것은 단 2건(1건)에 불과했다. 거짓 작성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환경영향평가법 시행규칙에는 ‘환경영향평가서 등 거짓·부실 작성 판단 기준’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자료를 조작하거나 누락하고, 조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했다는 등 평가서의 질적인 하자가 아닌 절차적 하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보니, 이후 내용상 부족한 점이 밝혀지더라도 위법했다는 판단 하에 행정처분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행정기관이 아닌 사법기관의 판단은 더 제한적이다. 대법원 심리기준으로 평가서가 부실하다고 판단한 판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간 환경사건 관련 소송에서 대법원은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아니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경우’를 ‘부실’한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절차적 부실뿐만 아니라 실체적 부실이 다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낙동강청에서 처음으로 19일 진행되는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의 판단에 이목이 쏠린다. 기존에는 협의기관(환경부)의 장이 거짓·부실 여부를 판단했지만, 해당 제도 도입으로 거짓·부실 갈등이 발생하면 기관장의 권한으로 10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꾸려 거짓·부실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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