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과 까마귀- 성선경
- 기사입력 : 2017-02-23 07:00:00
- Tweet
우리에겐 겨울이 있어야 하네
동지 소한 대한의 꽝꽝 언 엄동(嚴冬)과
어금니를 악다문 서릿발이 있어야 하네
서릿발 위에
성큼성큼 총총총
발자국과 밟힘이 있어야 하네시위 떠난 화살촉 같은 눈총
날아오는 욕설
뭉친 마음
돌멩이시퍼렇게 언 볼과 손바닥과 따귀가 있어야 하네
빨랫줄처럼 팽팽 당겨지는 겨울
저기 가옥가옥 넝마같이 흔들리며 걸린 달
서릿발로 돋는 푸른 소름
눈보라와 찌를 듯 곧게 자라는 고드름이 있어야 하네개나리꽃같이 슈슈슈 햇살보담도
우리에겐 꽝꽝꽝 겨울이 있어야 하네서릿발 위에
성큼성큼 총총총
발자국과 밟힘이 있어야 하네
☞ 입춘과 우수가 한참 지났으니 이제 봄인가요? 그대도 누구보다 봄을 기다렸을 테지요. 그런데 시인은 성급한 개나리꽃을 키워내는 햇살보다는 어금니를 악다문 서릿발이 필요하고, 게다가 그 서릿발 위로 성큼성큼 총총한 발자국들의 밟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왜일까요? 한마디로 이 모든 것(시련)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살아나는 보리밭과 그 위를 나는 까마귀를 노래하고 있어요. 언 땅이 녹으면 보리들이 들뜨는데 그 땅에서 자란 보리는 부실하기 마련이겠지요. ‘보리밟기’를 해줘야만 혹독한 겨울을 건너온 건강한 보리는 축제도 열게 되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주니깐요. ‘밟힘’이 주는 어감을 오래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려요. 정이경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