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다리 쑥국- 박우담
진달래 개나리 매화꽃 온갖 꽃들이 자리 잡은 봄날에, 눈이 오다가 말다가 함박눈이 오다가 말다가, 진눈깨비 오다가 말다가 비가 오다가 말다가, 길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또 얼었다가 녹았다가, 햇살이 보이다가 말다가 날씨가 꼭 마누라 같다
지금 곁눈질로 마누라 눈치 살피는데 숟갈에 얹혀온 쑥이 입술을 ...2010-02-04 00:00:00
- 유산流産- 정푸른
유산流産- 정푸른
검은 혓바닥의 커서가 횡으로 늘어진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다 전생과 후생이 맞닿아 있다 애를 밴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처럼 다른 방향을 향해 부푸는 불룩함이 난산을 숨기고 있다 Back Space키가 지난 시간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Delete키가 미래의 젖꼭지를 빨아 당겨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2010-01-28 00:00:00
- 열쇠- 김혜순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긴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2010-01-21 00:00:00
- 지하인간- 장정일
내 이름은 스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2010-01-14 00:00:00
- 한계령- 이홍섭
사랑이라 하였지만
나 이쯤에서 사랑을 두고 가네
길은 만신창이
지난 폭우에
그 붉던 단풍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집도 절도 없이
애오라지 헐떡이는 길만이 고개를 넘네
사랑하라 하였지만
그 사랑을
여기에 두고 가네
집도 절도 없으니
나도 당신도 여기에 없고
애간장이 눌러 붙은 길만이...2010-01-07 00:00:00
- 오필리아- 진은영
오필리아- 진은영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 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 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2009-12-24 00:00:00
- 꽃을 심었다- 윤제림
꽃을 심었다 -윤제림
할머니를 심었다. 꼭꼭 밟아주었다. 청주 한 병을 다 부어주고 산을 내려왔다. 광탄면 용미리, 유명한 석불 근처다.
봄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심었다’란 동사의 지휘를 받는 이 작품을 두고 수사법상의 문제 따위를 들먹인다는 것에 나는 반대다. 모 문예지 작...2009-12-17 00:00:00
- 목- 박서영
목 - 박서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당신의 얼굴은 한때 아름다운 장화를 신었고
장화는 점점 주름살이 늘어나 밑창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경주박물관 뒤편 목 잘린 불상들 앞에서 이렇게 속삭인 적 있다
얼굴이 장화를 신고 어딘가 가버렸다고,(……중략)
심장이 목을 통과해 얼굴...2009-12-10 00:00:00
- 나비- 송찬호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中에서
☞ 시인은 풍년인데...2009-11-26 00:00:00
- 앞치마를 두르고- 조말선
앞치마를 두르고 시를 쓴다 앞치마를 두르고 독서를 한다 전문가들은 앞치마를 두른다 앞치마를 두른 생선장수 앞치마를 두른 생닭장수 앞치마를 두른 화가 앞치마를 두른 엄마 앞치마를 두르면 피를 튀긴다 피 튀기게 열중이다 앞치마를 두르면 함부로 버젓이 칼을 휘두른다 앞치마를 두르고 하는 짓은 앞치마가 다...2009-11-19 00:00:00
- 한국 근대5종 세계대회 사상 첫 金2009청소년선수권서 남자 개인 안지훈·남자 단체 1위한국 근대5종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선수단에 따르면 9일(한국시간)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2009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남자 개인전에서 안지훈(한국체대)이 6140점으로 1위, 정진화(한국체대)가 6120점으로 2위를 차지해 각각 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07-11 00:00:00
- 빈들에 서서-이서린
빈들에 서서
- 이서린
나는 이제 갈란다 꽁지 빠진 깃털 너덜거리는 날개짓 푸드득 빈들 한껏 날아 오를란다 벼 벤 그루터기 그 지난 상처 같은 너른 논돌고 돌아 하늘 높이 오를란다 늙은 나무 묵직한 허리께 지나 긴긴밤 지새도록 못 다한 이야기 오래된 정자나무 둥치 아래 지나서 묵묵히 빈들 건너 갈란다 2009-06-05 00:00:00
- 시루봉-김일태
시루봉
- 김일태
누가 하늘을 높이 키우고 있는지 보라
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
장복 불모 장엄한 허리 베고 누워
하늘에 젖 물리고 있는 산이 있다
- 시집 ‘바코드속 종이달’에서
☞ 진해시 자은본동 00-0번지에서 올려다보면 시루봉 콧날이 보였다. 진해시 자은동 000-00번지 장독대에 서면 시루봉이...2009-05-22 00:00:00
- 항해일지 4- 원 은 희
항해일지 4
- 원 은 희
다음 기항지에서 부칠
편지를 쓰고 있을 그도
바다가 몹시 그리워
몸살을 앓는 나도
서로의 두려움에 대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시조집 『마스가제호에서의 하루』에서
☞ 그때, 이국을 떠돌며 해무(海霧) 자욱한 기항지 선술집에서 사연 많은 늙은 작부와 값싼 사랑을 밤...2009-05-19 00:00:00
-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김시탁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
- 김시탁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沈淳大)
초등학교 마당도 못 밟아서 글 모르지만
열여섯에 시집와서 자식 일곱 낳고
한 자식 잃었지만 육남매 거뜬하게 키운
내 어머니 이름은 심순대다
<중략〉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202번지
마당 넓고 잘 지은 그 집에...2009-05-1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