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득한 성자(聖者)- 조오현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는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聖者)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조오현 스님의 ...2010-05-20 00:00:00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박시교그리운 이름 하나
가슴에 묻고 산다
지워도 돋는 풀꽃
아련한 향기 같은
그 이름
눈물을 훔치면서
뇌어본다
어-머-니.
☞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어버이날이 있는 달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을 골라 보았다. 박시교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 이름 어머니! 어디 지상에서만 아...2010-05-13 00:00:00
- 노을- 이우걸
젖은 어깨 위에 하늘이 쌓여 있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푸나무 잎사귀 같은
권세가 떠나고 있다.
☞ 간결한 진술과 적절한 비유로 형성된 이미지가 무겁다. 이 시조는 이미지가 중층이기 때문에 시적 울림의 진폭이 크다. 그러나 시조의 행간에 던져 놓은 이미지는 어렵지 않다.
독...2010-05-06 00:00:00
- 서울1- 서 벌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萬坪) 적막을 사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 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 산업사회가 시작되던 70년대 초, 시인 서벌은 고성 들판에 바지게를 세워둔 채 낯설고 물도 선 서울로 올라갔다. 상경한 그를 처음 맞아준 것은 적막이었다. 그것도 만...2010-04-30 00:00:00
- 근황(近況)- 김상옥성근 숲
여윈 가지 끝에
죽지 접는 새처럼
물에 뜬
젖빛 구름
물살에 밀린 가랑잎처럼
겨울 해
종종걸음도
창살에 지는 그림자처럼
☞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시인의 형편을 함축적 이미지로 표현한 단수이다. 이 시조는 초정의 언어 조탁 능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작품 ...2010-04-22 00:00:00
- 개화(開花)- 이호우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 꽃 피는 계절이다. 꽃이 피는 것은 우주 속의 무수한 변화 가운데 작은 하나이지만, 시인의 눈은 달랐다. 개화를 한 우주가 열리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꽃잎 하...2010-04-15 00:00:00
- 풍경- 김제현
뎅그렁 바람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無上)의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
☞ 바람은 늘 다양한 색깔로 다가 와서 우...2010-04-08 00:00:00
- 비룡폭포운(飛龍瀑布韻)- 박재삼
하늘의 소리가 이제
땅의 소리로 화해도
설악산(雪嶽山) 비룡폭포(飛龍瀑布)는
반은 아직 하늘의 것
어둘 녘 결국 밤하늘에
내맡기고 내려왔네.
☞ 조운이 금강산 ‘구룡폭포’의 맑고 깨끗한 물이 지닌 절대 순수 정신을 그려내는데 성공을 거두었다면, 박재삼은 ‘비룡폭포운(飛龍瀑布韻)’으로 설악의 하...2010-04-01 00:00:00
- /시가 있는 간이역을 읽고/‘까마귀 싸우는 골’의 작품 소개에 대해지난 3월 18일자 경남신문 ‘시가있는 간이역’란에 소개된 김연동 시조시인의 ‘까마귀 싸우는 골에’ 해설 글을 읽고 의아스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소견을 밝히는 바이다.
김연동 시조시인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들이 29세 때 세상을 떠났고, 정적 이방원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 태어났으며, 정몽주가 59...2010-03-25 00:00:00
- 까마귀 싸우는 골에- 정몽주 어머니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조히 씻을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떠난 법정 스님의 자리가 커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지러운 세상에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토해내는 무언의 일갈(一喝), 소리 없는 법문을 남기고 떠나간 스님의 다비...2010-03-18 00:00:00
- 구룡폭포- 조운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江)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2010-03-11 00:00:00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시대를 초월한 명기, 명창, 사랑의 화신, 계약 결혼의 선구자, 여류 시인 등으로 불리며 짙은 여운과 향기를 남기고 간 황진이의 시조다. 옛시조와 현대시조를 통틀어 격조 있는 이만한 사랑...2010-03-04 00:00:00
- 입- 천양희
환각거미는 입에다 제 알집을 물고 다닌다는데
시크리드 물고기는 입에다 제 새끼를 미소처럼 머금고 있다는데
나는 입으로 온갖 업을 저지르네
말이 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칠 때 무심한
한마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올 때 입은
얼마나 무서운 구멍인가
흰띠거품벌레는 입에다 울음을 삼킨다는데
황새는 입...2010-02-25 00:00:00
- 낙화유수-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 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2010-02-18 00:00:00
- 노인밥- 강희근
청락원에 가서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다
서너 가지 반찬에 게된장국
잘 단련된 내 입에도 숟가락으로 들어와
제 밭뙈기 이랑인 양 스며드는구나
노인은 입으로부터 오는가
식탁을 사이하고 한끼 에우는 노인들
표정이 등걸에 핀 매화 같다
은퇴와 소외와 정년의 그늘
어깨에서 내려놓은...2010-02-1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