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문여 생각-바다서곡4 -이상원그 여름 가문여를 찾은 것은몇 마리 깨장어에 불과했다. 감숭어는부푼 배를 싸안고 옛집을 찾았지만 아무도낚시줄을 내리지 않자 돌아가버렸다. 언제나바다를 껴안은 채 서로를 줄다리던팽팽한 시간이 사라진 무료함은 울고 싶던 것이다뭍에 갇혀 나 또한 길마저 삭제된 공간의 늪에 갇혀허파라도 내발리고 싶었지만, 그...2011-04-21 01:00:00
향일암(向日庵) 동백꽃- 양곡말갛게 정신을 비운겨울의 끝사랑도 팔고 사는뒷골목 지나막다른 해안가적막한 삶의 관음(觀音)피를 토하는동백꽃 파도- 양곡, ‘향일암 동백꽃’ 전문(시집 ‘길을 가다가 휴대전화를 받다’, 2009)☞ ‘동백’ 하면 백련사나 거제 지심도, 여수 오동도도 괜찮고, 선운사의...2011-04-14 01:00:00
산인역(山仁驛)에서 - 이상규 특급열차가마지막 남은 진달래꽃빛마저 휘감아낮은 산자락을 물들이고 사라집니다.떠나고 보낼 이도 없는 경전선 산인역‘산장’으로 이름이 바뀐 역사에는어제를 모르는 사람들만밤이 이슥토록 이별노래를 부르는데한 켠으로 밀려난 간이역엔완행 열차를 기다리는 ...2011-04-07 01:00:00- 물섬- 송창우청화백자의 바다사금파리 빛나는 물섬을 가자인동당초 푸른 언덕을 넘으면거기, 내 짝지 살던 조가비 마을종패일이 끝난 아낙들은그림자를 끌며 제포 가는 도선을 타고밀물에는 저만치 드러누운 소섬이물 먹으러 올 것도 같은물섬, 옛 가마터에 불을 지피면먼데 놀바다 위로그리운 사람 거북이를 타고 오시리- 송창우 '...2011-03-31 14:03:38
- 강- 고영조장마 그치고강물 불었다아주 먼 곳에서먼 곳 사람들의어제가 흘러왔다그들의 어제를 보며누군가 나의 어제를먼 하류에서볼 것이다.- 고영조 ‘강’ 전문(시집 ‘새로 난 길’, 2010)☞ 이성과 논리를 배제한 이미지의 시인 고영조. 세계는 시인과 사물, 안과 밖, 있음과 없음, 언제나 이런 말들로 뒤엉켜 있다고 말한다. 자...2011-03-17 01:00:00
곡강(曲江)- 김시탁강물은 모래 속에 발목을 묻고미리 줄기를 늦추어 흐르고암벽은 맨몸으로 부딪쳐 올 강물을 상처 없이 받기 위해아랫배에 힘을 준 채 시린 관절을 접지 않는다수심이 깊은 곳엔 그리움도 깊어머물고 싶은 마음과 보내기 싫은 마음 사이로길이 생긴다강물이 굽어 흐르...2011-03-10 10:02:20- 잔춘(殘春)- 박구경밤새 내린 비는 이랑에 따스하게 스몄는가보다마주치는 곳마다 햇살 잘바닥거리더라니나라도 눈부시다어디서 들려오는 살육의 소식을 무시하고도밭둑마다 작은 기운의 풀들이 생업으로 근질거린다터지려는 꽃,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살아야 할 대부분이다-박구경 ‘잔춘(殘春)’ 전문(시집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2...2011-03-03 09:52:36
- 정당매(政堂梅) -남명(南冥)을 찾아 - 공영해
볕뉘조차 못 쬔 그 분
단속사(斷俗寺) 들르던 날
부처도 떠난 절간
그 지키던
매화
만났네
올곧은 정신의 뼈대
시간 위에
얽고 있는
-공영해 ‘정당매’ 전문(시집 ‘낮은 기침’, 2007)
* 정당매(政堂梅) :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지 안에 있는 매화나무
☞ 입춘 우수가 지났으니 맹위를 떨치던 ...2011-02-24 00:00:00
- 이선관- 박노정
이제 더는 볼 수 없지만
시인 이선관
설레이던 문패의 추억은
오래도록 눈앞에 어른거려
더러는 가슴에 새기고
나머지는 얼쑤 추임새로
다시 풍성한 이미지로 기지개를 켜나니
어눌한 말솜씨로
갈지자걸음으로
젖 먹던 힘으로
눈 내려 새하얀 첫길에
창동백작 나가신다
물러섰거라
-박노정 ‘이선관’ 전...2011-02-17 00:00:00
- 흑백다방- 정일근
진해의 모든 길들이 모여들고
모여들어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중원로터리에서
갈 길을 잃은 뒤축 구겨진 신발을 등대처럼 받아주던,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을 터트려
내가 숨쉬기 위해 숨어들던 그곳,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시인을 꿈꾸었으니
내 습작의 교과서였...2011-02-10 00:00:00
- 봄- 이우걸
수피(樹皮) 속엔 어둠을 쫓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그것들이 상처에 닿으면
죽창 같은 잎을 내민다
어혈진 가슴을 푸는
이 화해의 영토 위에서
-이우걸, ‘봄’ 전문(‘맹인’, 2003)
☞ 한겨울일수록 ‘봄’의 가치는 더욱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이 땅의 나목(裸木)에 귀를 대보세요. 지금은 비록 어...2011-01-27 00:00:00
- 월영대(月影臺)- 이광석고운이 바다를 버리고
해인사로 가던 날
올무에 같힌 달빛이
한없이 울었다
돝섬이 닻을 올리고
월영대가 셔터를 내렸다
누구 하나 만류하는 사람 없었고
따라나서는 기척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가야산에서
이승과의 소통을 끊었다
그러나 고운은 다시 돌아왔다
월영대에 거룩한 시의 ...2011-01-20 00:00:00
- 바위, 相思- 송창우
맑은 날엔
노루목 너머 총각바위
거제도 장목 바라봅니다
그러면 장목 처녀들 바람이 나서
하나, 둘 보따리를 싸고
상심한 장목 마을 사람들
총각바위 수장하고 돌아간 날 밤
물 밑에서 처녀바위 하나
불쑥 솟았답니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처녀바위 동백꽃이 피면
푸른 숭어 떼가 몰려와 다리를 놓고
...2011-01-13 00:00:00
- 커피포트- 김종영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비등점의 포말들
음이탈 모르는 척 파열음 쏟아낸다
적막을 들었다 놓았다
하오가 일렁인다
선잠을 걷어내어 베란다에 내다건다
구절초 활짝 핀 손때 묻은 찻잔 곁에
식었던 무딘 내 서정
여치처럼 머리 든다
설핏한 햇살마저 다시 올려 끓이면
단풍물 젖고 있는 시린 이마 위에...2011-01-06 00:00:00
-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2010-12-3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