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엉겅퀴 - 박용래 잎새를 따 물고 돌아서 잔다이토록 갈피 없이 흔들리는 옷자락몇 발자국 안에서 그날엷은 웃음살마저 번져도그리운 이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어쩌면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기운 피곤이 보랏빛 흥분이 되어슬리는 저 능선함부로 폈다목놓아 진다.-박용래 시집 ‘...2011-08-04 01:00:00
- 연리지(連理枝)- 김동현너와 나는,칠흑의 어둠을 달리던 빛나는 두 행성.문득, 빅뱅의 큰 울림으로 맞부딪쳐살과 핏줄이 엉기고혈류를 공유하여우뚝, 한 쌍의 우주수(宇宙樹)로은하의 심장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다.그렇게 둘이던너와 내가 만나눈길, 손길 맞바꾸고가슴을 나누어영혼을 공유하는,너와 나는 한 그루우주수(宇宙樹).- 김동현 '연...2011-07-28 14:14:20
- 양파의 속- 윤봉한껍질이 다 속이다껍질처럼 보였던 것이 아니라껍질이 다 속이다그게 양파다버려진 껍질 속에버려진 수북한 껍질 속에진짜 속이 있다돌아보지 마라네가 가진 그게 양파다-윤봉한 ‘양파의 속’ 전문(시집 ‘붉은 꽃’, 2005)☞ 김해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정갈한 시어를 다듬는 시인의 세계인식이 잘 드러난 시다. 대상의 본질...2011-07-21 01:00:00
- 하루살이의 노래- 이규석하루살이의 노래하루벌이로 사는 나는이제나 저제나일을 기다리는 날이 많아진 요즘하루해가 너무 짧은 것 같다기다리는 날이 오래갈수록조급하게 앞서는 마음그 걱정과 불안을 안주로술잔 드는 날은 많아지고마시는 술잔 속에문득미소를 머금은 내 아버지 얼굴나도 몰래 아버지 하고 불러 본다아버지의 삶이 그랬던 것...2011-07-14 01:00:00
- 유리그릇에 관한 명상- 이상옥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냐현미경으로 비추면 실금으로 가득할 그대여매일 새 금이 죽죽 그어지고 있는 그대여펄벅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운위할 때사람들은 더러 ‘성숙’이라는 고상한테제(These)를 투영하기도 하더라만뭐라고 하든 아직 지탱하고 있는 것이 고마워라언젠가 깨어져 쏟아질그 몸으로생각...2011-07-07 01:00:00
- 다시 그리움을 위하여- 정삼조어느 날 그대는그 어느 날 그대 생각한나를 생각지 못하리길가에 그대 생각한그 길가 지나면서도그 그리움 알지 못하리그러면 그리움에나는 다시 취하리니깨어난 아침그 햇살처럼그대는 그 자리그대로 있어라-정삼조 ‘다시 그리움을 위하여’ 전문, 시집 <그리움을 위하여> 서정시학 2011☞ 그리움만한 서정의 본류...2011-06-30 01:00:00
- 시루봉- 김일태누가 하늘을 높이 키우고 있는지 와서 보라가슴을 드러내 놓은 채장복 불모 장엄한 허리 베고 누워하늘에 젖 물리고 있는 산이 있다검푸르도록 유선도 선명한양지바르게 진해 바닷물 갈무리해 올려수천수만 년 먹이고도 팽팽하게붙어 있는 저 젖꼭지영험하다며 어느 왕녀도 비손 다녀갔다는젖배 부른 하늘이 잠시 조는 ...2011-06-23 01:00:00
- 내 고향 삼천포 바다- 최송량외사촌 누나 비단 치마폭깔아 놓고 손짓하는내 고향 삼천포 앞바다는호수보다 넓고 강보다 큰 기쁨이삼천 개 삼천 세계 삼천포 바다로 통한다.눈물 많아 출렁이는 답답한 사람아욕심 흔해 펄럭이는 바람난 사람아살 깎이는 설움을 신명나게 삭여 보렴뼈 깎이는 설움을 신명나게 삭여 보렴하늘 밑에 제일 고운 삼천포 앞...2011-06-16 01:00:00
-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이달균시민극장 앞이었어10·18 마산항쟁 전야에도크리스마스 이브에도우린 무슨 약속처럼 그곳에서 만났지조조할인 입간판 앞에서영화처럼 바람에 깃을 세우며 서 있던 사람들포장마차의 불빛이 따스해지는 시각극장을 돌아가는 골목에서 먼저 어둠이 오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닥터 지바고그 빛나는 사내들의 화음도 들려오...2011-06-09 01:00:00
- 주름- 최영욱주름바람이 강의 얼굴을 접었다 폈다 한다강에 담긴 산도 달도섰다 흔들렸다 한다바람 탓이다상처 탓이다강의 물결은 바람으로 일고지리산 꽃들은 신음으로 핀다-최영욱 ‘주름’ 전문 (시집 ‘평사리 봄밤’ 2009)☞ 지리산과 섬진강과 남쪽바다가 만나는 하동에 둥지를 틀고, 시를 쓰며, 차(茶)도 만들면서 박경리 선생의 ...2011-06-02 01:00:00
- 수습- 김승강소주 두 병을 놓고통닭 한 마리를 수습했다.수습한 뼈를분리수거용 비닐봉투에 넣고골목 어귀에 내놓았다.골목길 자동차 밑을 전전하던굶주린 고양이가 와서비닐봉투를 뜯고뼈를 수습했다.고양이가 뜯어놓은비닐봉투를 아내가 수습했다.쓰레기 수거차의 종소리가가까이 들렸을 때아내는 부엌에서 도마를 두드리고 있었...2011-05-26 01:00:00
- 아름다운 수작- 배한봉아름다운 수작봄비 그치자 햇살 더 환하다씀바귀 꽃잎 위에서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초록 치맛자락에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던가잠시 꽃술이 떨렸던가나 태어나...2011-05-19 01:00:00
- 내 삶의 중심에- 민창홍내 삶의 중심에 내 삶의 중심에당신이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아침을 먹으면서전쟁터 같은 출근길에서당신이 있어 가벼운 발걸음 알게 하소서.땀 흘리는 노동의 시간에도누군가와 나누는 이야기에도당신이 있어 행복함을 느끼게 하소서언행의 모순에 빠지지 않는 회개로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며내 삶의 생명수를 찾...2011-05-12 01:00:00
- 낡은 신발- 지영낡은 신발 질긴 사랑닳고 닳아 편안한 바닥에 이르기까지얼마나 많은 그리움 누비고 다녔던가구멍 난 밑창에물집 터진 길들의 아픈 상처가숨어 살고 있는데돌아보면 지나온 길 보이지 않고앞으로 가야할 길 보이지 않아낡은 신발을 벗으며누군가는 맨발의 자유를 말할 테지만나는 맨발의 아픔에 운다-지영 ‘낡은 신발’ ...2011-05-06 01:00:00
- 다산 초당에서- 오인태다산 초당에서산그늘이 내리고나무들은 모두그림자를 거둬들였다.풀들도 순순히 제 색깔을어둠 속에 맡기고,어차피 길손들은서둘러 산을 내려갔다.다시 세상은 적막하여라.이따금 낮게 산죽 쓸리는 소리.언제 오셨나. 천일각 위에달님 한 분 내려다보고 계시다.- 오인태 ‘다산 초당에서’ 전문, (시집 ‘혼자 먹는 밥’, 19...2011-04-28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