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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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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학력에 얽힌 추억

  • 기사입력 : 2007-09-27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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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나는 딱 한 번 부풀린 학력기재로 호되게 마음고생을 했던 추억이 있다. 이를테면 호된 학벌(學罰)을 치렀다고나 할까.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이라기보다는 부모밑에서 농사 짓고 살아야 할 집안의 장남이, 직장이 바로 보장되지도 않는 고등학교에 꼭 진학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으로 나는 ‘중졸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군대에서 학력을 올려 크게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았던 일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수용연대에서 치른 IQ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서였는지 고졸 이상의 학력자여야만 쉽게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포병의 측지병과 주특기를 받았다. 광주포병학교에서 7주간의 측지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60여명의 동기교육생들은 거의 대학이상의 학력을 가져 고졸학력자도 드문 것 같았다. 열등감에 젖은 나는 입교와 함께 제출한 신상명세서의 학력난에 그만 ‘고졸’로 기재하는 만용을 저질렀다.

    심각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입교 며칠 후였다. 측지좌표를 계산해야 하는데 필요한 고교과정의 수학공식을 알 턱이 없는 내가 실습용지를 받아들고 더듬거리는데 내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대위계급의 교관이 “야! 너 고등학교 다녔나”하고 묻는 것이였다. 나는 엉겹결에 “중학교만 다녔습니다”하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교관은 “어 그래 이상하네” 하며 나를 끼지 못할 데 낀 저능아로 여기는 듯했다. 이후 나는 혹시 신상명세서의 허위학력기재 사실이 들통나 퇴교되지 않을까 싶어 한동안 밤잠을 설쳐 가면서까지 공부하여 뒤지지 않는 성적으로 포병학교를 마쳤다. 육사출신의 포병장교가 측지학교를 나온 제대로 된 측지병이 왔다며 매우 반겼다.

    이듬해 우리 측지반이 1군산하 측지경연대회에서 최우수 성적을 얻는 등 실력있는 측지병 노릇은 하였으나 나의 허의학력기재행위는 제대할 때까지 내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군대에서 책도둑으로 별명까지 얻어가며 책을 통해 식견을 넓힌 나는 제대와 함께 공무원공채시험을 거쳐 하동군청 기획감사실장(지방 서기관)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이력서의 학력난을 어김없이 ‘중졸’로 메울 때마다 군대의 그 일이 되새겨진다. 군대시절의 시린 추억을 되새기며 ‘내 마음속의 학력’만 믿은 나의 학벌(學罰)을 느껴 본다. 정연가(하동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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