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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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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우물과 텀블러- 김윤정(K-water 경남서부권지사 경영차장)

  • 기사입력 : 2024-03-07 19: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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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층 따뜻해진 날씨에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 마을로 산책을 나가게 된다.

    어느새 꽃망울을 터트리는 하얗고 조그마한 매화, 노오란 햇살 아래 나른하게 누워 있다 게으르게 고개를 들어보는 강아지들, 한참 연약하고 소중한 초봄의 눈 호사를 누리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우물. 우물이라니…. 수자원공사에 근무하는 직원이라 그런지 자연스레 눈길이 닿아 여기저기 살펴본다. 현재 사용하는 우물은 아닌 거 같아 검색을 해 보니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되는 우물돌방틀이 도난당해 그 흔적을 남기기 위해 새로 우물틀을 만들어 보존하는 걸로 보인다.

    안타까운 사정을 뒤로하고, 슬며시 상상에 잠긴다. 조선시대 아낙네들이 아침저녁으로 물을 긷다가 어느새 우물터는 사랑방이 된다. 아랫집 윗집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삶의 희로애락을 길어 올리는 곳. 급히 마시면 체할까 봐 동동 띄운 나뭇잎.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을 건네며 물색없는 눈길과 마음이 오가기도 했을 그런 눈부신 곳.

    그렇게 우물의 이야기는 깊어진다. 단순히 물을 얻어 가는 물리적 공간의 기능을 넘어, 마음이 오가는 사람 향기 나는 감성의 장소. 그 이면에는 물에 대한 풍부한 우리네 인심과 물의 시원함, 너그러움, 청량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따뜻함까지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물을 길러 우물에 가지 않는다.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사용한 만큼 수도요금을 낸다. 저 멀리 북극 어딘가에서 추출했다는 비싼 미네랄 물을 사 먹는다. 편리함과 부유함을 얻은 대신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기후위기는 생활용어가 되었고, 물은 더 이상 풍부하지 않다. 물 전쟁, 새로운 석유, 워터쇼크 등 물과 함께 언급되는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고 보니 나부터 그렇구나. 예전 같으면 산책하다 한 병 사 버리고 말았을 물을, 텀블러에 담아온, 어느새 몸에 밴 이 습관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앞에 펼쳐질 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마냥 찬란한 물빛일 것 같지는 않아, 손에 든 텀블러를 다시 한번 쳐다본다.

    김윤정(K-water 경남서부권지사 경영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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