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8일 (일)
전체메뉴

[촉석루] 건축가가 전하는 말- 홍미선(김해시 장유도서관장)

  • 기사입력 : 2024-02-21 19:23:08
  •   

  •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2012)’를 다시 봤다. 당시, 말기 암 환자였던 정기용 건축가를 1년여간 따라다니며 촬영한 정재은 감독의 작품이다. 2010년 11월, 일민미술관에서 ‘정기용 건축전’을 개최했는데 영화는 해당 전시회를 만드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은 서울과 파리에서 응용미술과 공예, 도시계획과 건축을 두루 공부했다. 김해기적의도서관을 비롯한 6개의 기적의도서관 설계자며,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전북 무주군에 30여 개의 공공건축물을 설계한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의 주역이다. 1층에 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 그늘진 관람석을 만든 등나무운동장 등 공공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건축계의 사회복무요원’이라고 칭했을 만큼 경제성에 근거하지 않고 건축의 본질과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이단아였다.

    필자는 김해기적의도서관 운영자로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특징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생략된 처마, 낮은 지붕, 주차장에서 건물을 만나기 위해서 아담한 화단과 분수대를 지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초행길의 주민이 도서관을 찾다가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명성에 비해서 외관이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 2011년 개관 이후 직원들은 한결같이 토로한다. 불편해요.

    왜 불편한 건물을 지었을까? 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설계 철학을 밝혔다. 먼저 지역의 정체성과 부합해야 한다. 관리자 중심이 아닌, 이용하는 시민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도록 할 것, 주변과 잘 어우러질 것 등. 건축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다시 건물을 관찰해 본다. 기적의도서관은 최대한 자연광을 담기 위해서 높낮이를 달리하는 창이 많다.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들어간다. 이것은 책을 만나기 전 하나의 의식과 같다. 실내에서 뛰기도 좋고 숨어있기도 좋다. 후문에 따르면 계절별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대를 알기 위해서 현장을 여러 번 다녀갔다고 한다.

    3월 11일은 그의 기일이다. 제자들과 지인들은 해마다 기일에 맞춰 그가 남긴 건축물을 답사하는 ‘정기용 버스’를 운영한다. 무엇을 담고 싶었는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견뎠는지. 현장에서 추모하며 또 기억할 것이다.

    홍미선(김해시 장유도서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