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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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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공도연 할머니를 떠올리며- 김정민(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24-01-10 19: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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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저녁 기온이 다시금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매섭게 부는 바람은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든다. 경기 불황으로 얇아진 주머니 사정에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은 요즘, 때문에 겨울은 없는 사람에게는 힘든 계절이다. 가난한 사람은 더 빈곤이, 외로운 이들은 더 허전함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마음까지 추워서다. 어렵고 힘든 시기 넉넉하지 않음에도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은 이들에게서 우리는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지난해 9월 13일 향년 82세 일기로 별세한 의령 유곡면 공도연 할머니의 선행이 새삼 떠오른다.

    할머니는 평생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지역에서 ‘봉사왕’으로 통했다. 1999년부터 써 내려온 ‘봉사일기’ 한 권만 남겨둔 할머니의 마지막 봉사는 시신 기증이었다. 공도연 할머니의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겁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공도연 할머니는 17살 때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하며, 이웃에게 밥 동냥을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하루 세끼 끼니를 매일같이 걱정해야 하는 가난이 한이 돼, 10년간 낮에는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를 하고, 밤에는 뜨개질을 떠 내다 팔았다. 그렇게 쌈짓돈을 모아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농토를 마련해 벼농사를 시작했다.

    밤낮으로 일하며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할머니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부터 돌보았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설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사비를 들여 마을 내 간이상수도 설치와 지붕개량 사업을 하는 데 이어 1985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의료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자 대지 225㎡를 매입, 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가 설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도 마다하지 않았다. 50여 년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와 각종 단체에 쌀 기탁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길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거나, 이웃의 누군가 궁핍한 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쌈짓돈과 직접 키운 농산물을 내어주기도 했다. 틈이 날 때마다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말동무가 되고, 동네 여성들을 모아 한글을 깨치도록 도움도 줬다. 예순을 넘어서는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매년 직접 농사지은 쌀로 떡국을 끓여 대접하고, 경로당 청소 등 궂은일도 도맡았다. 폐지와 공병을 판 돈으로 인근 노인회에 전달했다. 이 같은 선행으로 2020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할머니는 포상금으로 받은 상품권 50만원에 사비 50만원을 보태 마을에 내놓기도 했다.

    80세로 35㎏에 불과한 노쇠한 몸에도 할머니는 리어카를 끌면서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워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히 기부했다. 평생 남을 위해 삶을 헌신한 할머니는 죽어서까지 ‘시신 기증’이라는 마지막 봉사로 세상과 작별했다. 할머니의 선행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자신을 헌신하면서 나눔을 실천하고, 그 과정에서 간섭하거나 대가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아서리라. 우리 주변에는 공도연 할머니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 묵묵히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선한 마음과 행동이 널리 퍼지길 바라 본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 중). 연탄 한 장 온기가 필요한 시린 겨울이다.

    김정민(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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