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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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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제자리 찾기 3- 주강홍(경남시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23-12-14 19: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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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말이라 회합이 잦다.

    단체들의 의례적인 것들도 있고 사회성 모임과 안부 겸 행사도 적지 않아서 달력이 촘촘하다.

    일정을 정리하며 정치 성향이나 업무상 상황적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예 피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참석만으로도 불편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곳도 애써 가린다. 첨예한 대립 구조나 현안의 경우에 적의 친구는 적으로 간주될 수 있기에 더욱 가린다.

    책 보따리 친구들은 크게 낭패당할 일도 없고 공통분모가 많기에 언제나 살갑다. 추억을 쪼개고 꿈을 꿰매면서 거추장스러운 격식을 벗어던지면 풀어놓은 긴 밤이 짧다. 그러나 간혹 살아온 여정 따라 품새가 너무 달라졌고, 사회적 환경의 차이에서 은연중 거리감을 느끼는 친구를 접할 때 악수 밑에 가시를 느끼거나 단순 비교 대상이 되어 키 재기를 할 때는 좀 씁쓸하기도 하다.

    술기운에 분위기가 익으면 으레 옛 시절의 등급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과 새 체급을 요구하는 사람 간에 난장판이 되는 사례도 동창회 이야기다. 누구는 안줏거리로 씹히거나 누구의 카더라로 이어지는 비사에 귀가 솔깃해지고 거품을 물지만,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그냥 묻히는 것도 예사다. 세상은 생각보다는 공평치가 않아서 과정과 결과가 사뭇 다르다. 함부로 거들먹거리다 접시가 날아오는 경우도 이곳에선 화해란 이름으로 대충은 가라앉힌다. 치외법권의 시간이다. 힘에 눌려 토설하지 못한 서러움을 오랜 시간 전화통으로 다 들어주고도 그 속앓이 항변을 나중에 뒤집어쓰는 촌극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 어디라도 모서리가 강한 사람은 있다. 입에 가시를 물고 태어난 선천성과 환경이 뾰쪽하게 만든 후천성도 있다. 자존을 극대화하여 전투 태세로 나온 친구는 일 년을 기다렸다. 꼭 그 값을 한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빼면 누구랑 만나겠나. 조물주가 지구를 삐딱하게 우주공간에 세웠다. 원심과 구심으로 조화를 맞추었고 깜깜하게 저 혼자 공전을 하게 했다. 늘 돌고 돌아도 비딱하게 제자리다. 돌아다녀 봐도 별 수 없다는 거다.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런 곳이고 그러며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주강홍(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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