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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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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유산 등재 가야고분군] (1) 합천 옥전고분군

화려한 금속공예기법 유물·국제교류 증거 로만글라스 출토

  • 기사입력 : 2023-09-18 11: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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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이다.

    도내 △김해 대성동고분군 △ 함안 말이산고분군 △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등 5개가 집중돼 있어 사실상 경남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지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도내 소재 가야고분군의 발굴 과정, 출토 유물, 유적 가치 등을 소개한다.


    20~30m 내외 높은 봉분 27기 모여
    전체 고분 숫자 1000여기 추정
    일본보다 빠른 말머리가리개 6점
    임나일본부설 극복 강력한 근거
    금동장식 투구·금동제허리띠 등
    여러 나라 교류 유물 다수 발견

    합천 옥전고분군은 황강가의 해발 50~80m에 달하는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유구는 몇 개의 능선에 나눠져서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무덤 대부분은 봉분이 남아 있지 않아서 겉으로 볼 때는 확인하기 어렵다.

    합천 옥전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하지만 특이하게 언덕의 한쪽 지역에는 지름 20~30m 내외의 높은 봉분을 가진 무덤이 27기가 모여 있으며 전체 고분의 숫자는 약 1000여기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은 1985년 경상대학교 박물관이 황강 주변의 정밀지표조사과정에서 많은 양의 토기, 갑옷과 투구, 금동제 유물 조각을 채집하면서 그 중요성을 확인됐다. 이해 겨울에 1차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87년 겨울과 1989년 봄에 걸쳐 3차의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어 1991년 여름부터 1992년 봄에 걸쳐 4차와 5차 발굴조사가 이뤄지면서 고분유적이 4세기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옥전고분군은 약 20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살았던 가야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다.

    옥전고분군은 언덕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묘역을 넓혀가면서 축조되었다. 무덤 형태는 일반적인 덧널무덤과 덧널의 바깥쪽에 돌로 보강한 이 지역의 독특한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하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가야고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자료들이다.

    보물 제2043호, 옥전 28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보물 제2043호, 옥전 28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화려한 장신구로는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가락지 등이 출토됐다. 귀걸이는 40쌍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조사된 어느 가야고분보다도 많은 수량일 뿐만 아니라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세공 기술은 당대의 백제나 신라의 귀걸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높은 수준이다. 또한 쿠마모토현 에다후나야마고분군, 덴사야마고분 등에서는 합천 옥전고분군의 것과 유사한 금귀걸이가 출토되어 두 지역의 교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옥전 28호분에서 출토 금귀걸이는 가야 귀걸이를 대표하는 유물로 일본 금속 공예에 영향을 준 점을 인정받아 2019년 12월 보물 제2043호로 지정됐다.

    목걸이는 옥전(玉田, 구슬밭)이라는 유적의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구슬로 만들어졌다. 특히 M2호분에서는 한꺼번에 2000여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됐다. 가야고분에서는 처음으로 28호분에서는 이러한 구슬을 다듬는 데 사용되었던 사암제의 옥을 갈던 숫돌이 발견되어 이 지역에서 직접 구슬을 제작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보물 제2042호, 옥전 M3호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칼.
    보물 제2042호, 옥전 M3호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칼.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도 많이 출토됐다. 23호분에서는 맨 윗부분에 금동봉이 있어 국내에는 그 예가 없는 희귀한 자료로 평가되는 금동관모(金銅冠帽)가 출토되었다. 용이나 봉황문양으로 장식한 고리자루큰칼은 35호분과 M3, M4, M6호분에서 출토됐다. 이러한 유형의 고리자루큰칼은 장식의 화려함과 독특함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학술 발굴조사에서 이처럼 많이 발견된 경우는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처음 있는 사례다. 특히 M3호분에서는 용봉문양 2점, 봉황문양 1점, 용문장식 1점 등 장식 고리자루큰칼 4자루가 함께 부장된 것을 확인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고 지배자급 무덤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2019년 12월 보물 제2042호로 지정됐다.

    이외 다양한 종류의 철제품들이 출토됐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는 무기와 갑옷, 말갖춤들이다. 특히 말머리가리개는 부산 동래 복천동 10호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래 여러 고분에서 출토되었는데, 옥전고분군에서는 이 말머리가리개가 무려 6점이나 출토됐다. 단일고분군에서 6점이나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 유적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말머리가리개는 일본의 것보다 시기적으로 빠르고 수량도 휠씬 많아 당시 우위의 무장력을 갖춘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에서도 그 근거를 잃게 만들었다.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용봉무늬고리자루큰칼.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용봉무늬고리자루큰칼.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말투구.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말투구.

    여러 지역과 연계된 유물들도 있다. M3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투구는 고구려 계통의 유물이며,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과 말 안장틀의 거북등무늬는 백제 또는 중국의 남조(南朝)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또 M1호분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편원어미형말띠드리개[扁圓魚尾形杏葉], 금동제허리띠, 창녕식토기, M6호분에서 출토된 출자형(出字形) 금동관은 창녕, 신라와의 교류를 통해 얻어진 산물이다. 또 M11호분에서 출토된 금제귀걸이와 나무널에 붙이는 연화문장식, 널못 등도 백제 계통의 유물이다.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옥전고분군에서는 가야 고분에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의 로만글라스가 발견됐다. 이 유리그릇은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유물로서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됐다. 동서 문물 교역의 중심에 있던 신라가 이것을 받아들여 가야지역에 전했다고 추정된다. 5세기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옥전고분군 축조 세력의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다.

    옥전고분군은 최고 수장급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거의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가야 최고 지배자의 무덤이다. 용봉문양 고리자루큰칼이나 철제갑옷, 금동장 투구, 말머리가리개에서 가야문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유물은 고구려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삼국시대의 정치적 환경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명현 기자 m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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