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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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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기여- 이수정(창원대학교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3-09-17 19: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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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이데거의 저서에 ‘철학에의 기여’라는 게 있다. ‘존재와 시간’이 가장 유명하고 소위 주저로 손꼽히지만, 혹자는 이 ‘… 기여’를 제2의 주저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이데거를 거론하자는 건 아니다. 그가 선택한 이 ‘기여’라는 단어를 우리는 철학적으로 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에서는 ‘기념’이라는 것과 함께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 이도는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조선말’을 하는 백성들의 언어생활에 획기적이고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리고 대통령 박정희는 고속도로·제철소 건설 등 여러 경제개발 정책들을 통해 이 나라 백성들의 경제생활에 그리고 국가의 위상 제고에 역시 획기적이고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리고 소위 ‘양김’과 그 추종 세력들은 큰 희생을 동반한 투쟁으로써 이 나라 민주주의의 정착에 역시 주목할 ‘기여’를 했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한 기여가 되었고 그들 개개인의 인생에 ‘의미’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기여’라는 것은 철학적 주제가 되고 동시에 사회적 주제가 된다.

    아주 별난 사람 혹은 자기 틀에 갇힌 옹고집이 아니라면 이런 철학적 전제 내지 가치관에 대체로 공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우리 자신들 각자일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으로 그리고 어디에 기여하여 그것을 나의 인생의 의미로 삼을 것인가. 무엇 하나라도 그럴만한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 내지 국가에 그리고 역사에 폐 끼치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도 힘에 겨운데 거창하게 기여는 무슨….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고 당연히 그렇다. 남에게 그리고 세상에 폐 끼치지 않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그런데 바로 그거다. 우리는 그런 ‘폐 끼치지 않음’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기여가 된다는 것을 주목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건전성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왜?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민폐’들이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가 선진화라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진화의 핵심이 인간과 사회의 질적인 고급화라는 데에도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온갖 ‘민폐’들은 너무나 저질이어서 질적인 고급과는 멀어도 너무 멀다. 그것들은 마치 철조망 바리케이드처럼 선진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그것을 걷어치우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런 민폐들을 추방해야 한다. 어떻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가 바로 그 분화구라는 것이다. 온갖 저질 언어들이 거기서 용암처럼 분출돼 나온다. 너무나 위험해서 그 근처에 다가갈 수도 없다. 다가가면 ‘인격의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 분열을 조장하는 증오의 언어들이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저주가 넘쳐난다. 왜 저들은 저렇게들 차가운가. 저들의 혀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해 겨울왕국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구는 소위 온난화로 펄펄 끓고 있건만 이 나라 정계는 나날이 깊어가는 빙하기다. 저들은 혀만 고장 난 게 아니다. 눈도 고장이다. 왜 저들의 눈은 ‘국가’를 바라보지 않는가. 왜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가. 왜 ‘위’를 쳐다보지 않는가. 우리는 이제 모두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세계 최고’를 향해 전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글이 그런 전진을 위해 한 가닥 기여가 될지 어떨지,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다.

    이수정(창원대학교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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