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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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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심의위’ 판정기준 모호… 객관성·공정성 제고 필요

  • 기사입력 : 2023-08-08 20: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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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폭심의위 회의록 입수·분석
    ‘반성·화해 정도’ 평가 엇갈려
    위원 성향 따라 배점 편차 가능성
    전문가 “명확한 판정기준 마련을”


    속보= 도내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잇따라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판정 기준이 모호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7월 26일 5면)

    심의위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고무줄식 잣대’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심의위원의 전문성 강화와 심의과정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학교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 정도 △화해 정도 등 총 5가지 기준을 척도로 점수화(각각 0~4점)해 제1호(서면사과)에서 제9호(퇴학)로 분류, 최종 조치 결과를 통지한다.


    본지는 경남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한 학교폭력대책심의(소)위원회 회의록을 최근 입수해 분석했다. 당시 학폭위에서는 가해자 4명에 대해 각각 출석정지, 학급 교체, 학생 및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보복행위 금지 등 처분을 내렸다. 피해 학생과 학부모는 가해 정도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강력 반발했고, 결국 피해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폭 가담 정도가 심한 A 학생에 관한 내용을 들여다봤다. 위원들은 A 학생이 샤워장에서 피해 학생에게 오물을 뿌린 점, 둔기를 이용한 폭행, 흉기를 이용한 위협 등에 대해 모두 인정했다. 학교폭력 심각성은 ‘매우높음(4점)’으로 평가됐다. 3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가족을 비하한 성적인 욕설과 수치성 발언, 도구를 이용한 상습 폭행 등 학교폭력의 지속성도 ‘매우높음(4점)’을 부여했다. 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나, 예전 선배들로부터 이런 행동을 당하면서 관습적으로 행해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한 단계 낮은 ‘높음(3점)’으로 채점했다.

    그러나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와 화해 정도에서 결과가 엇갈렸다. 선배들에 당해온 점이 자기도 모르게 행해진 것과 반성 정도와 후회하는 모습 등을 감안해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가 높다(1점)고 봤다. 화해 정도는 결과적으로 고소·고발이 진행되고 있는 점에 참조해 낮게(3점) 평가했다.

    결국 A 학생은 △심각성 4점 △지속성 4점 △고의성 3점 △반성 정도 1점 △화해 정도 3점 등 총 15점으로, 제7호 처분인 ‘학급 교체(13~15점)’ 처분을 받았다.

    B 가해 학생은 △심각성 3점 △지속성 4점 △고의성 4점 △반성 정도 1점 △화해 정도 3점 등 총 15점으로 ‘학급 교체’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의위에서 16~20점을 받았으면 제8~9호인 전학이나 퇴학 처분이 내려졌겠지만, 이번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상 5개 평가 항목 중에서 1점씩만 낮은 점수를 받아도 전학과 퇴학 처분을 피할 수 있다. 이번 건도 사안이 매우 심각하다고 위원들은 판단했지만 처분 결과는 다소 낮게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피해 학생 학부모는 “어떻게 반성 정도나 화해 정도가 잘 나왔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학교폭력 사건을 수차례 맡았던 김용태 변호사는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명확한 판정 기준이 없다 보니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점수는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이번 건도 피해자가 1학년, 2학년 4명이 가해자인데 ‘학급 교체’ 처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학폭 사안이 법적인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비판했다.

    김장회 경상국립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명확한 판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는 주관적인 부분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사례를 제시해 위원들도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연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폭심의위원은 전·현직 교원이나 법조계, 경찰, 청소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하고, 전체 위원의 30% 이상은 관할 지역 학부모로 위촉하게 돼 있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심의위는 독립 기구로 교육청에서 결과에 대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면서도 “위원들이 처벌보다는 관계 회복에 보다 무게를 두고 심의 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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