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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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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9) ‘통영이 재밌어지는 이유’ 김호진 문화기획자

재미있는 통영 만들러 홍대에서 왔습니다만

  • 기사입력 : 2023-07-26 10: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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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여름, 그동안 경남에서는 이뤄지지 않던 낯선 개념의 공연이 통영에서 열렸다. 공연 이름은 '2022 통영 사운즈 쇼케이스'.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망한 인디밴드들을 통영시민과 경남도민에게 소개하자는 목적으로 기획된 공연이다. 공연 전에는 '지역에서 음악을 하는 어려움' 등을 주제로 평론가·음악 관계자들을 초청한 간담회가 열리고, 무대 이후에도 팬 사인회와 굿즈 판매 등이 진행돼 공연장을 방문한 관객들의 호응도가 높았다.

    지역에서는 다소 낯설 수 있는 공연이 물 흐르듯 진행된 데에는 공연을 기획한 김호진(40) 튜나레이블 대표의 내공에 있다. 그는 서울 홍대에서 수년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다가 재미를 좇아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지난 25일 통영 리스타트 플랫폼에서 공연 준비로 분주한 그를 만나 그의 삶과 문화기획에 대한 철학을 담아보았다.

    김호진 문화기획자./김용락 기자/
    김호진 문화기획자./김용락 기자/


    동피랑서 나고 자라 20대 끝자락 서울로
    문화기획자 교육 듣고 막연한 꿈 키우다
    2013년 ‘튜나레이블’ 설립 후 본격 활동
    4년 후 홍대로 옮겨 전업기획자의 길로

    ◇통영에서 홍대까지= 통영 동피랑에서 나고 자란 김호진 대표는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통영에 큰 감흥이 없었다. 스스로 '잡일'이라고 표현한 일들을 마치고 무전동에서 술이나 마시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심심한 삶 속에서 유일한 낙은 집에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게 전부였다. 고등학생 때 들어갔던 락 음악 감상 동아리를 밴드 동아리로 바꿔 학교 축제 때 공연할 정도로 음악에는 진심이었다. 대체로 문화잡지 '페이퍼'를 읽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문화인들과 소통하면서 음악을 즐기고 배웠다. 수년간 음악을 들으면서 음반을 제작, 컨셉, 음악 측면에서 분석하는 수준까지 지식이 쌓였다. 하지만 그에게 통영은 문화 향유를 가로막는 한계로만 느껴졌다.

    20대 끝자락에 서울로 향한 것은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해서였다. 막연히 배우가 되겠다며 떠났지만, 스스로에게 확신은 없었다. 통영에서 서울로 공간만 바뀌었을 뿐 삶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4년간 직장인 밴드를 해왔던 경험을 살려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자고 결심한다.

    2011년 프로듀싱을 배우기 위해 일본행을 결심했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무산된다. 그 시점에 막연하게 'KT&G 상상마당'의 문화기획자 교육을 들었는데, 첫 강의 때 강사의 말을 듣고 문화기획자의 꿈을 키웠다.

    "그때 강사님이 '기획자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다'고 말했어요. 다음 강의 때 10명 정도가 안 올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죠. 그런데 저는 그동안 밴드 등 독립적인 문화를 기획하고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통과, 그만큼 되돌아오는 성취감을 절실히 이해하게 됐고 이 일에 빠져들었어요."

    2013년 그는 '튜나레이블'을 설립하고 문화기획자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튜나레이블은 다양한 요리에 쓰이는 참치처럼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재미와 가치가 있는 문화예술을 기획하자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첫 기획은 위안부피해자 할머니의 다큐멘터리에 공연을 접목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성공적인 데뷔에 이어 '릴리슈슈의 모든 음악제', '음탕', '주도피아' 등 기획한 공연 모두 성공적이었다. 2017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홍대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전업 문화기획자로의 삶을 시작했다. '오픈레코드', '마포나루 서핑클럽' 등을 비롯해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록밴드 '허클베리 핀'과 공연 에이전시로 계약하면서 독자적인 브랜드 공연도 이어갔다.

    2021년 통영 머물며 확신 얻어 고향으로
    지난해 지역 밴드 위한 ‘통사쇼’ 첫 기획
    위스키바 운영하며 다양한 공연·행사도
    “통영만의 재미있는 문화씬 만들어 갈 것”


    김호진 문화기획자./김용락 기자/
    김호진 문화기획자./김용락 기자/

    ◇꿈꾸던 귀향, 40일간 머문 통영서 얻은 확신= 김호진 대표는 2021년 말 고향 통영에 돌아왔다. 하지만 귀향은 그보다 4년 전인 2017년 홍대로 사무실을 옮길 때 결심했다.

    "아마 2017년 4월 판일 거예요. '매거진B'라는 잡지의 애플뮤직 편을 보고 세상이 확확 바뀌고 있고 중앙에 밀집된 문화 인프라도 로컬(지역)로 퍼져나가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기획자의 일에 온전히 집중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봤고, 지역에서도 가능할 것 같으니 언젠가 통영으로 돌아가자고 마음 먹었어요."

    그러나 첫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2018년 ‘통영 신 르네상스’를 주제로 통영에서 대중음악 컨셉의 공연을 기획했지만 흥행에 대한 불안감에 결국 공연을 취소해야만 했다. 김 대표는 당시 스스로 통영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했고 구체적인 주제도 없이 의욕만 앞선 채 판을 벌였다고 회상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해 통영국제음악재단과 MSK스튜디오의 김대현 대표와 함께 '통영 하이틴 뮤직 콘테스트'를 개최한다. 콘테스트는 '통영에서 홍대까지'를 부제로 통영의 청소년 밴드들이 경연을 펼쳤고, 우승을 차지한 '아이리스(충렬여중)'는 홍대 '생기 스튜디오' 공연장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 행사를 계기로 통영의 문화 관련 종사자들과 연을 맺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서히 해왔지만, 실행으로 옮길 심적 확신이 부족했다. 부족한 확신은 가수 단편선의 조언을 듣고 40일간 통영에 머물면서 가지게 됐다.

    "그동안은 가족이 통영에 있어서 짧게 짧게 통영에 내려갔지만 굉장히 작은 범위만 봤었어요. 2021년이 돼서야 통영을 제대로 즐겨보자면서 40일 정도 통영에 머물렀죠. 봉수골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는데, 문화적 흐름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통영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죠."

    사사로운덕담./김호진/
    사사로운덕담./김호진/

    ◇'통사쇼'에서 '사덕' 그리고 그 너머= 문화기획자로 고향에 돌아온 김호진 대표가 독립적으로 통영에서 기획한 첫 공연은 지난해 8월 개최한 '2022 통영 사운즈 쇼케이스(통사쇼)'다. 이외에도 통영에서 뮤지션 양성과정 교육을 시작하고, 제5회 통영 티페스타를 도우면서도 서울 쪽 공연 기획을 병행해 왔다.

    '통영 사운즈 쇼케이스'는 통영이 거점이 되는 공연을 만들고, 지역 학생들이 아티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기획한 공연이다. 그렇기에 2019년 '하이틴 뮤직 콘테스트'에서 알게 된 통영의 한 학생이 속해 있는 밴드 '그루잠'이 섭외 0순위였다. 이외 공연 라인업은 경남과 부산지역에서 확실한 음악 스타일을 가진 밴드들을 엄선해 섭외했다.

    올해는 통영지역 밴드가 라인업에서 빠졌다. 1순위로 추진하던 밴드는 일정상 참가가 어려워졌고, 다른 밴드들은 이미 섭외된 아티스트와 음악적 결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예산이 닿는 데까지 '통사쇼'를 이어가면서도 5년 안에 별신굿을 테마로 한 페스티벌 '풍어제(가칭)'를 통영에서 개최하겠다는 계획이다. '풍어제'는 만선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그는 실제 굿판을 벌이면서 굿판과 어울리는 아티스트를 섭외해 공연을 펼치겠다는 기획을 세우고 틈틈이 공간 등을 물색 중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는 태평동에서 위스키 바 '사사로운덕담(사덕)' 운영을 시작했다. 음악이라는 무형의 콘텐츠와 함께 술이라는 유형의 콘텐츠를 판매하는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실현하고 있다. 추천곡을 받는 것부터, '상서로운 음감회', DJ파티인 'SSRO PARTY' 등을 진행해 왔다. 앞으로는 서울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티스트와 함께 술마시며 공연하는 '주도피아'와 삼문당컴퍼니와 함께 진행하는 ‘삼문사담 음악회’ 등을 준비 중이다.

    그가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이유는 고향 통영이 재밌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재밌는 통영은 그 혼자서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니다. 통영 곳곳에는 새로운 문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힘 합쳐 서로를 이끌어 주고 있다.

    “제가 좋아하고 살아가야 할 통영이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지역을 떠나는 이유 중 문화적인 인프라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해요. 지역이 재밌으면 재미를 만드는 사람들이 남고, 즐기는 사람들이 남지 않을까요? 저는 궁극적으로 통영이 중심이 된 하나의 문화씬을 만들고 싶어요. 이를 위해 재미난 기획을 하고 있으니 그만큼 즐겨줬으면 좋겠어요.”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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