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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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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3) ‘시조의 현재’ 이우걸 시조시인

현 시대를 노래한 시조시인은 이제 모든 시대를 품고자 한다
등단 50년 기념 시집 ‘이명’ 발표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고통 담아

  • 기사입력 : 2023-02-16 10: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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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시(詩)도 어렵기에 시조(時調)는 더 어렵게 느껴진다. 가만 보면, 한문도 '시 시(詩)'와 '때 시(時)'로 서로 다르다. 케케묵은 한자가 아니더라도 '종장 첫 구는 세글자' 등 형식에 얽매인 시조는 조상님 문학 같다.

    선입견이다. 현대시조는 그렇게 고리타분하지도, 케케묵지도 않다. 오히려 시를 읽고 해석하는 데에는 난해한 자유시보다 친절하다. 시조를 뜻 그대로 쉽게 풀어쓰면 '시대의 노랫말'이 된다. 시조는 시대에 맞춰 변화했고, 현재도 변화를 추구하며 우리 곁에서 빛나고 있다.

    경남과 한국을 대표하는 이우걸(76) 시조시인은 오늘날 현대시조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올해 등단 50년을 맞아 열두번째 시집 '이명'을 발표했다. 지천명 50세에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는데, 시력(詩歷) 50년이 된 그는 이제 문학의 뜻을 알지 않을까. 지난 13일 김해에서 이우걸 시인의 말을 담아 봤다.

    지난 13일 김해 장유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우걸 시조시인./김용락 기자/
    지난 13일 김해 장유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우걸 시조시인./김용락 기자/

    ◇쓰고 싶은 게 많다던 시인이 전한 '소통의 부재'= 이우걸 시인은 2015년과 2018년 시집을 발표하며 시인의 말을 통해 "또 쓰리라", "쓰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다"고 외쳤다.

    그래서일까. 5년 만에 나온 신간 시집 '이명'은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분명하게 담겨 있다. 시인은 이번 신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동안 몇몇 시를 통해 강조해 오던 '소통의 부재'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 중에서는 '귀', '이명2', '이명3', '마스크' '말', '귀뚜라미 바다' 등이 주제어와 결이 같다. 그중 시인은 시집을 보지도 않은 채 '귀'를 읊으며 근간의 세태를 지적했다.

    들으려하지 않는 귀,/ 들을 수도 없는 귀,/ 이미 편 갈린 귀,/ 서로 닫아 버린 귀,/ 마음이 길을 잃어서/ 오래전에 병든 귀 -'귀' 전문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소통 부재의 나날입니다. 오늘날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러겠죠. 시집 제목인 '이명'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고통을 대칭하는 메타포의 언어입니다. 조금 더 밝아질, 더 맑아질 내일을 기원하며 시집을 써 내려갔습니다."

    시조 장르에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부여해 온 장본인답게 시집에는 일상생활을 담은 대중적인 시조도 다수 보인다. 대표작으로는 '라벨', '치통', '카페라떼' 등이 있다.

    자본이 만들어 낸 꽃의 이름이다/ 사랑을 받으면 콧대가 높아지고/ 아무도 부르지 않으면 소리 없이 진다 -'라벨' 중

    이우걸 시조시인의 시집 '이명'
    이우걸 시조시인의 시집 '이명'

    ◇네 번의 변주…지금은 시공간 초월한 미학 꿈꿔= 지난 50년 동안 시조와 함께한 이우걸 시인. 긴 세월만큼 그가 시조에 접근하는 방식도 수차례 바뀌었다.

    시조시와 자유시를 병행하던 등단 초기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통 서정을 주로 담았다. 이후 1998년 세번째 시집 '저녁 이미지'부터는 고착화된 시조 장르를 생활로까지 확대하며 시조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그러면서도 현실로 너무 기울면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해, 현실과 서정의 균형을 고민하며 시집을 써 내려갔다.

    지금은 현시대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시를 쓰려고 한다. 등단 40년이 지날 때부터 마음속에 피어난 확신이다. 타국 사람들도,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시 말이다.

    "황진이의 시조는 지금도 기억되고 현대 여성들의 어떠한 사랑 노래도 황진이의 미학을 이기지 못합니다. 시공을 초월해 전달되는 그런 시조가 오늘날에도 존재하기에, 남은 시인의 인생에 그런 시를 쓰려고 합니다."

    문득 그의 시 중 '안경'이 생각났다. 그가 추구하는 영원의 시조는 이런 시들이 아니었을까.

    껴도 희미하고 안 껴도 희미하다/ 초점이 너무 많아/ 초점잡기 어려운 세상/ 차라리 눈감고 보면/ 더 선명한/ 얼굴이 있다 -'안경' 전문

    초창기 자유시와 시조시를 병행하던 시인은 왜 시조를 택했을까. 경북대에서 역사를 전공하면서 한국 시조의 깊이를 알았기 때문일까, 시인은 자신이 시조를 써서 시조의 위상을 올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의 사명감은 오늘날 의무감이 됐다.

    "시조가 한국 시의 주류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유시와 공존하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 한국 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어 의미가 큽니다." 현재 한국문학에서의 시조의 존재 의의를 묻자 이 시인은 '변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시조는 자유를 누리듯 방종하는 한국 자유시에 안티테제(반대 의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시가 난삽하고 길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대중들은 짧고 쉬운 시에 열광하기 때문입니다. 시의 정체성은 운율이기에 시조가 현대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확신이 있죠."

    지난 13일 김해 장유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우걸 시조시인./김용락 기자/
    지난 13일 김해 장유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우걸 시조시인./김용락 기자/

    ◇시조는 마지막 한권 내고 절필…후배들 위한 산문 쓸 것=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시인은 시를 남긴다고 했던가. 이우걸 시인은 꽤 오래전부터 죽음 이후를 대비하고 있었다. 10년 전 등단 40년을 맞아 작품 전집을 낸 것도 같은 이유다.

    "40년의 의미보다도 나이를 먹는 데서 온 불확실성이 더 컸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주변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작고 소식을 들으면서 죽음에 대비하기로 결심했죠. 전집을 내면서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남은 인생의 방향도 세워둔 상태입니다."

    그는 앞으로 마지막 시집 한편을 내고 이후부터는 창작시집을 발표하지 않을 생각이다. 언제 발표할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 마지막 시집에만 오롯이 집중해 아쉬움 없이 시 창작을 멈추겠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시조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의 단절을 뜻하진 않는다. 이후부터는 창작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거나,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전반의 작품·인물에 대한 생각들을 쓴 산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끝으로 시인에게 자신은 어떤 시조시인이었는지, 어떤 시조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었다. 그는 신간 시집에 수록된 시 '무게'로 답을 대신했다. "떠나고 나면 그때 제대로 평가되겠지요."

    생명 있는 존재들은 그 무게를 모른다/ 영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이승엔 없다/ 스스로 만든 저울은 저울이 아니다 -'저울' 전문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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