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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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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낙서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최정은(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21-02-22 20: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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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뉴욕의 뒷골목 담벼락에 낙서를 하며 예술과 성공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다 정말로 하루아침에 스타 예술가가 된 흑인 청년이 있다.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1960-1988). 그는 흑인으로서 백인 미술계에서 성공한 최초의 화가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바스키아 전시가 큰 관심 속에 개최되었다가 지난주 막을 내렸고, 3월에는 홍콩 크리스티에 바스키아의 작품 〈전사〉(1982)가 추정가 342억~456억에 단독 경매에 오른다는 소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60년생이니까 지금 살아 있더라도 예순 정도였을 텐데 그는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마약 과용으로 사망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고 80년대 초 뉴욕 번화가 벽에 낙서와 구호를 남기는 세이모(SAMO) 멤버로 활동하다 그의 천재성과 낙서화의 상품적 가치를 알아본 평론가에게 발탁돼 일약 스타로 당시 침체 속에 있던 뉴욕 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1970~80년대 뉴욕은 눈부시게 성장하는 도시였다. 낙서화는 이런 도시 뒷골목에서 태어난 길거리 미술이다. 도시의 반항적 소수 민족 청소년들은 마커와 분무기로 길거리, 지하철, 경기장 어디든 낙서를 그려 댔다. 이때만 해도 거리 낙서는 10대나 하는 장난에 불과했고 사회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였으며 뉴욕시는 수백만 달러를 들여 그 낙서들을 지워야 했다. 그랬던 낙서화는 바스키아 덕분에 뉴욕 주류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사실, 미술의 기원은 낙서다. 미술사 책에는 미술의 기원을 동굴 벽화로 언급한다. 동굴 벽화는 당시 인간들이 할 수 있었던 일종의 낙서 같은 것이었다. 낙서화는 영어로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라고 하는데 ‘그라피티’란 ‘긁다’는 의미로 동굴 벽화들은 암벽이나 바위를 긁어서 만든 것이다. 낙서화의 기원은 바로 고대 동굴 벽화다. 낙서화와 동굴 벽화는 삶과 밀착된 예술로서, 개인이 아닌 집단이 작품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공동체 예술이다.

    바스키아가 활동하던 당시 뉴욕 화단은 팝아트나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다 동력이 소진되던 시기였다. 개념과 아이디어가 미술을 지배하며 ‘회화의 죽음’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창조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던 그때, 바스키아의 강렬한 표현주의 작품은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고 ‘신표현주의’, ‘뉴페인팅’으로 불리며 ‘회화의 부활’을 주도했다. 바스키아가 즐겨 다룬 주제는 역사적 인물, 대중문화, 만화 캐릭터, 죽음, 해골, 계급 투쟁과 억압 등과 같은 것이었고 특히 재즈 가수나 스포츠 스타 같은 흑인 영웅들을 소재로 삼았다. 그의 작품에는 왜곡된 형태들이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되어 있고 부랑자 은어 같은 글자들이 많이 사용되어 있는데, 이는 거리 낙서에서 유래한 바스키아 그림에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바스키아 친구이자 동료 미술가였던 줄리안 슈나벨이 만든 영화 〈바스키아〉(1996)를 통해서도 그의 삶과 예술을 만나 볼 수 있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머리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왕관을 쓴 어린 바스키아가 등장한다. 바스키아는 자신이 찬미하고 싶은 인물 머리 위에 왕관을 자주 그려 넣었는데, 감독 슈나벨은 그 왕관을 다시 바스키아에게 돌려주면서 그의 비범한 천재성을 찬양한다. 영화에는 바스키아의 심정을 담은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한 장면은 뒷골목 예술가가 거대 도시 뉴욕에서 느꼈을 두려움, 외로움, 소외를 암시한다. 또한 흑백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개구리는 성공과 명예를 갈망하고 얻었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세상을 떠나게 된 순진했던 바스키아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서핑 장면은 흑인으로 미국 사회의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던 바스키아가 늘 갈망했지만 얻을 수 없었던 자유, 해방을 상징한다. 낙서화를 통해 미술의 원초적 기원을 불러낸 바스키아의 삶과 예술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다면, 바스키아의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를 어루만지는 슈타벨의 영화 〈바스키아〉를 감상해보길 권한다.

    최정은(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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