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7일 (금)
전체메뉴

[문화의 향기 II] 맛, 그리고... - 아구찜(6)

  • 기사입력 : 2002-04-08 00:00:00
  •   
  • 마산 오동동 한 아구찜 식당에 나들이 차림의 가족이 들어섰다.

    메뉴판을 받아든 중년 여성이 서울 말씨로 『건아구가 뭐야? 생아구 주세
    요』했다. 그러자 그 옆 테이블서 한참 아구찜을 먹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서울 말씨로 『마산에 아구찜 먹으러 왔으면 건아구를 먹어봐야죠』하고 주
    문을 거들었다. 생아구는 부산이나 다른 몇몇 지역에서, 또 건아구는 마산
    이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서울 어느 아구찜 골목 간판에서 본 「마산」 「오동동」 「할매」 등의
    글귀를 떠올리며, 마산에 들른 김에 그 원조집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또다
    른 외지인이 마산 아구찜을 소개하는 모습은 그 유명세를 증거하기에 충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구는 흔했다. 그물에 잡히기라도 하면, 험악하고
    볼품없는 모양새에 『재수없다』며 바다에 버려지거나 뱃전에 팽개쳐졌던
    아구였다.

    그런 아구를, 황태처럼 바짝 마른 아구를 어쩌다 거둬 툭툭 칼질하여 콩
    나물과 미나리를 손에 잡히는 대로 넣고 고춧가루로 양념하여 쪄서 먹어 보
    았을 것이다.

    우리 집이 제일 먼저니, 우리 집이 최초니 하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구
    구한 원조 논쟁의 원시적 형태(?)는 그런 평범했던 일상의 연속선상에 놓
    여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마산 오동동 일대에는 아구찜 전문 식당이 즐비한 채 성업 중
    이다. 20년 이상된 식당부터, 새로 생겨 기존 전통에 도전장을 던진 곳에
    이르기까지 골목이 비좁을 정도다.

    아구가 갈수록 귀해지는데 아구찜 가게는 갈수록 늘고 있다. 유명세도 더
    하고 있다. 묘한 반비례다. 하긴 아구의 흉한 모양과 기막힌 맛도 절묘한
    반비례다.

    아구찜의 쫀득쫀득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차면 푸짐한 콩나물이 아삭아
    삭 씹혀 보조를 맞춘다. 그 사이에 숨어 있던 미더덕이 상큼한 미나리 향
    사이를 비집고 입안에서 톡 터지면 매콤한 맛이 뒤질세라 뛰쳐나와 온갖 양
    념의 조화가 무엇인지를 고한다. 맛은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이, 아구가 당
    뇨병이나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알려지자 그 몸값은 꾸준히 올랐다.

    이제는 큰맘 먹고 사먹어야 할 요리가 되었다. 조금 서운하긴 해도 흔하
    지 않게 먹는 만큼,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
    을 게다. 그러나 그 위안만으로 그냥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도 적잖다. 아
    구 애식가들은 어시장에서 직접 아구를 사서 요리해 먹기도 한다.

    시장통에서 아구를 이러저리 뒤척이며 물좋은 놈을 고르고 있던 이정말
    (64. 마산시 남성동)씨는 『가족들이 다 아구 요리를 좋아한다』며 『어시
    장에서 아구를 싸게 사서 탕도 끓이고 찜도 해 먹는다』고 했다.

    오동동 아구찜 골목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마산 어시장은 직접 요리
    를 해 주지는 않지만 건아구와 생아구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아구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도 두어 곳 있다. 반평생을 아구만 팔아온 아구 할매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산 어시장 안에서 30년 가까이 아구만 팔아온 김옥순(60· 마산냉동)
    씨. 새벽 한때만 30여 상자의 아구가 김씨의 손을 거쳐 마산 아구찜 골목으
    로 흘러들어 간다. 뿐만 아니다. 이곳의 아구는 창원, 진주, 포항, 멀리는
    광주까지 팔려간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사 가던 때도 있었다 한다.

    아구는 다른 고기보다 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 다 자라면 보통 5~7kg이
    고 큰 것은 10kg을 넘는 것도 있다. 예순을 넘어선 김씨의 허리는 세월과
    아구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기엔 자꾸 힘이 부친다. 그래서 새벽에는 아들
    둘이 나와 일도 돕고 배달도 한다.

    가판에 둔 작은 아구를 가리키며 『요즘에 잔 아구를 마구 잡아 큰 아구
    가 귀하다』며 『작은 게 클 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말하는 김씨의 걱정
    이 큰 아구 입만하다.

    이른 아침 어시장에서는 수십년 동안 아구를 사고 팔면서 아구와 인연을
    맺고 사는 여러 삶의 풍경을 통해 아구찜의 맛보다 진한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구찜 가게가 넘쳐나는 골목에서 아구찜을 먹고 아구가 넘쳐나는 어시장
    에서 아구 구경을 하게 되면 마산 아구찜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수밖에 없
    었던 필연적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구」는 「아귀」가 표준어다. 그러나 마산 「아귀찜」의 경우 오랜
    세월 이미 아구찜으로 익숙해져 있어 맛의 향토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차
    원에서 여기서는 모두 「아구」로 표현했다.
    /권경훈기자 hoon519@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