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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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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놓이자, 작품을 닮은 음악이 시작됐다

그림과 함께하는 즉흥연주 ‘이승태 프로젝트’

  • 기사입력 : 2024-02-12 2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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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승태씨가 기획한 ‘이색 공연’
    도내 작가 작품 보고 다양한 악기로 즉석 연주
    연주자의 실력·멋진 작품·관객 상상력 ‘삼박자’
    “즉흥연주의 매력은 완벽함 아닌 정답 없는 연주
    내가 원하는 음악 더 많이 연주하는 게 목표”


    연주자들 옆으로 이젤이 자리한다. 이내 한 그림이 놓이고, 연주자들은 그곳을 응시한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바이올린을 손에 쥔 한 남자가 짧게 운을 떼고는 옆에 앉은 기타 연주자와 눈을 맞춘다. 곧 이들의 손에서 그림은 음악이 된다.

    즉석에서 그림을 보고 펼치는 즉흥연주. 생각만으로도 흥미로운 작업이 지난해부터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음악청년 이승태(31) 씨의 손에서다. 지난 7일 ‘그림과 함께하는 즉흥연주’가 열리던 창원 북면의 카페 시심마에서 그를 만나 이 심오하고도 묘한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 7일 창원 북면 카페 시심마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승태씨와 기타리스트 이승근 형제가 방상환 청년작가의 작품을 두고 즉흥연주를 하고 있다.
    지난 7일 창원 북면 카페 시심마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승태씨와 기타리스트 이승근 형제가 방상환 청년작가의 작품을 두고 즉흥연주를 하고 있다.

    승태씨가 직접 ‘이승태 프로젝트’라고 명명한 이 작업은 앞서 말했듯이 그림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승태씨를 주축으로 게스트 연주자들이 참여해 도내 활동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연주하는데, 그림을 선보여줄 작가나 협주할 연주자를 섭외하는 것 모두 승태씨의 몫이다.

    연주에는 기타를 전공하고 함께 음악공방을 운영 중인 친형제, 기타리스트 이승근(29)씨는 물론 피아니스트나 트럼페터, 드러머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참여하는데, 마찬가지로 이 공연에 필수요건인 미술작품 역시 먹, 흑연을 사용하는 작품들부터 다소 낯설 수 있는 설치미술까지 다채롭게 적용 중이다.

    공연 직전까지도 무슨 그림이 이젤에 세워질지는 승태씨도, 동료 연주자도 모른다.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그림이어야 즉흥연주의 묘미가 살아난다는 게 승태씨의 지론인 탓이다. 대신 대략적인 결을 정하기 위해 작가와 사전에 충분한 소통을 가지며 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고.

    이날 여섯 번째 이승태 프로젝트에는 방상환 청년작가가 참여했다. 방 작가는 총 4개 작품을 준비했는데 이 중 그림 2점, 설치미술 2점을 배치했다. 작품의 주제도 무제부터 오락기 화면에 나타나는 그래픽 너머의 세계를 나타낸 ‘Ⅰ사람Ⅰ’, 그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형상화한 ‘마지막에는’까지. 작품마다 개성이 뚜렷한 탓에 관객으로서 이것들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동시에 불안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들이 한 곡을 끝냈을 때 이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냈다. 관객더러 그림에서 뭐가 떠오르냐던 승태씨는 작가에게 작품 설명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무얼 생각했는지를 공유했다. 그랬다. 이 공연에 정답이란 건 없다.

    “공연에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연주자들의 실력’과 ‘멋진 그림’, 그리고 ‘관객들의 상상력’이죠. 여러분의 반응 하나하나에 다음 음이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어찌 보면 승태씨에게 “이런 즉흥연주를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라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을지 모른다. 인간 이승태의 삶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예술고에 진학하며 큰 시련을 겪은 기억을 떠올린다.

    창의성보다는 정해진 길을 정확히 걸어야 하는 입시음악의 세계에서 그는 자주 ‘틀린 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했고, 우연찮게 친구가 즉흥연주를 제안했을 때 ‘틀려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클래식이 아닌 재즈가 자신의 길임을 깨달았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내 생각이 들어가도 되는 재즈의 매력에 젖었기 때문에, 이후 일본 유학에서 접했던 즉흥연주 수업은 그에게 와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즉석에서 감정을 다잡고, 또 혼자 하는 연주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연주가 마음에 들 수도 완벽할 수도 없다. 그는 “연주에 매우 만족해 뿌듯하더라도 관객들 표정이 안 좋은 날이 있고, 연주자들끼리는 오늘 너무 최악이었다 싶은 날이지만 관객들은 감동에 겨운 경우도 있다. 어떤 연주도 모두에게 완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음악은 무엇보다 함께 만드는 데 의미가 크다. (그의 음악철학을 좀 더 알고 싶다면 2023년 3월 15일자 ‘경남 예술청년 코로나 분투기 (3)음악청년편’을 참고하시라.)

    ‘연주에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답변이 그의 음악관은 물론 인생관을 관통한다. “유명 재즈 연주자 ‘빌 에반스’는 리허설을 안 해요. 녹음을 해도 원테이크로 하는데, 이게 잘 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를 들려주자는 거죠. 그래서 간혹 이 사람의 연주를 듣다 보면 실수나 잡음 같은 게 들려요. 근데 그것조차 재즈인 거예요.” 정해진 것이 없으니 틀릴 것도 없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것이 이승태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런 일을 왜 벌인 거죠?” 다소 비판적으로 들릴 법한 질문에 승태씨의 대답은 명쾌하다. “재밌으니까요!”

    이날 방상환 작가와 이승태 프로젝트가 콜라보한 마지막 작품은 소원등을 형상화한 설치 미술이었다. 그는 작품 해석을 빌려 자신의 소원을 만천하에 공유해본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고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어요. 올 한 해는 제가 원하는 음악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요!”

    그의 다짐은 괜스레 당부 같기도 하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에 상처받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시라’는. 그가 원하는 음악으로 유명해질 그날까지 이승태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글·사진=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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