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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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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건축물 기행] 늘어나는 폐공공건축물의 변화

기억 다듬고 예술을 담아… 볼품없는 공간을 폼나게!

  • 기사입력 : 2024-01-11 0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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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동창고 활용 남해 ‘스페이스 미조’

    현대미술 전시장·공연장·스튜디오 등

    4층 규모 문화 집회시설로 탈바꿈

    전시장 변신 남해 ‘문화공간 돌창고’

    기존 내·외관 흔적 남기고 리모델링

    지역색으로 물든 예술체험 가득

    폐교서 재탄생한 창원 ‘주남환경학교’

    도서관·습지체험장 등 문화공간 조성

    생태환경체험 교육장·전문가 양성도

    냉동창고에서 문화집회시설로 탈바꿈한 남해 ‘스페이스 미조’. 이곳은 미조항의 풍경과 어우러져 운치를 뽐내고 있다 ./㈜네츄럴시퀀스 건축사사무소 /
    냉동창고에서 문화집회시설로 탈바꿈한 남해 ‘스페이스 미조’. 이곳은 미조항의 풍경과 어우러져 운치를 뽐내고 있다 ./㈜네츄럴시퀀스 건축사사무소 /

    서구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가능한 도시관리계획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 왔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급속한 산업화에 의한 경제발전으로 우선 급한 대로 많은 건축물(공장, 창고, 사무소 등)을 지어 왔고, 인구 증가에 따른 공공시설(학교, 지역창고, 보건소 등) 또한 많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현재 산업구조 변경 및 인구의 서울 집중문제 및 도시화로 인해 농·어촌의 학교는 폐교가 늘고 있고, 지역 공공시설 또한 용도폐기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폐교는 ‘폐교재산의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이후 창업연구센터, 노인쉼터, 문화시설, 체육시설 및 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아직 공공기능을 상실한 사유화, 보조금 특혜 시비, 체계적 관리의 부재 등으로 활용에 대해 공론화를 통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지속가능한 활용을 위해서는 지역특성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지역에 필요시설을 결정해야 하며, 손쉬운 매각보다는 공공의 예산이 투입되고 지역공동체와의 공론화를 통하여 계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금번 소개할 건축물은 창고와 폐교를 리모델링을 통하여 새롭게 생명을 가진 건축물이다. 스페이스 미조는 남해 미조항의 냉동창고를 문화집회시설로 변경한 사례이며, 삼동면에 있는 문화공간 돌창고는 근대건축물(창고)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공간이고, 창원 주남저수지 인근에 있는 주남환경학교는 기존 폐교를 체험형 환경교육과 문화공간으로 바꾼 프로젝트이다.

    ◇남해 스페이스 미조= 스페이스 미조는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170-32에 위치한 지상 4층의 문화 및 집회시설로 1층에는 미조홀 및 어부키친(식당 및 마켓)이 있고, 2층은 디자인 스튜디오(작업실), 커뮤니티 스테이(객실 4실), 3층은 해봐요미조(공연장), 아케이드(현대미술 전시관), 4층은 어부커피 및 어부농장(옥상휴게시설) 등이 있다.

    설계자 ㈜네츄럴시퀀스 건축사사무소 박석희 건축사는 현상설계 당시 남해 미조항 냉동창고가 기존의 재생 프로젝트를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자 했고, 과거에 냉동창고로 쓰인 이곳에 빛을 조각하고, 비와 바람을 가져오고 남해의 섬과 바다를 펼쳐 놓고자 하였다. 방문자는 남해의 자연경관과 예술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커뮤니티와 만나며, 예기치 못한 즐거움으로 기억되고, 그리고 이 공간의 모든 기능보다도 공공의 모범적인 장소로서 서로에게 시민적 임파워먼트의 촉진제로서 작동되기를 열망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기존 냉동창고에서 사용하던 냉각수 파이프는 이곳의 장소성 보존을 위해 복원되어 있으며 기억을 관람하는 즐거움이 있다. 얼음창고 냉동실의 마감도 어느 정도 남겨두었고, 기능에 따라 새로운 재료를 덧붙여 마감했다.

    빛의 회랑을 통과해 중정으로 들어오면, 병풍처럼 펼쳐진 암석 절벽과 그 위를 뒤덮은 울창한 상록수림이 나타난다. 거대한 크기의 위요된 공간을 만들었고, 모든 공간이 오래된 원시림에 대응하는 자연과의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현대미술 기획전시실은 오래전 화재가 났던 곳이다. 어둠은 우리에게 빛을 느끼게 하고 소리에 집중하게 한다. 이곳에서는 시간을 늦추는 특별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미조항의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은 공연자와 관객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을 느끼도록 하며, 아름다운 선율과 조화되는 산과 바다의 풍경은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스페이스 미조는 내·외부 공간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외부 공간들을 경험할 수 있고, 인근의 팔랑포방파제로 연결된 예쁜 해상로드를 걸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남해 문화공간 돌창고.
    남해 문화공간 돌창고.

    ◇남해 문화공간 돌창고= 남해군 삼동면 영지리 1197-10에 위치한 문화공간 돌창고는 돌창고전시장, 돌창고스튜디오, 돌창고카페로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다. 돌창고 전시장은 기존 돌로 된 근대건축물(창고)을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내·외관을 기존 창고의 흔적을 최대한 남긴 전시시설로 지역색이 묻어나는 예술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창작자들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와 정보를 연결해 커뮤니티를 형성, 미술전시 음악공연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획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니멀하고, 가볍고, 매끄럽고, 저항 없는 것이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시대에 남해의 돌 문화유산은 크고, 육중하고, 거칠고, 돌출되어 이 시대의 미의식과는 어긋납니다. 그러나 왠지 이 돌 앞에 서면 그 무한한 시간성과 거칠고 거대하고 육중한 모습에 숭고함이 느껴지며 기분이 정화됩니다.”

    바닥은 흙바닥이며 문짝과 천장 목재 트러스도 사용되던 재료를 재사용해 시간의 멋을 더했다. 특색 있는 전시를 관람하고 카페에서 차 한잔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창원 주남환경학교 실내교육공간.
    창원 주남환경학교 실내교육공간.

    ◇창원 주남환경학교= 주남환경학교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죽동길 72번길에 소재하며, 용산초등학교가 폐교되어 1995년 매각된 곳이다. 2008년 주남환경스쿨로 개관해 2008년 제10차 람사르협약기념작품 전시, 2021년 주남환경학교로 재개관해 현재는 생태환경체험 교육장 및 생태환경 전문가 양성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도서관, 교육실, 자연물놀이실, 영상전시실 등의 내부공간과 습지체험장, 재활용교육장, 텃밭체험장 등 외부체험공간이 있으며, 전면에 주남저수지 조형물 전시장이 문화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리모델링 계획시 지역예술가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건축사는 내·외부 공간을 만들고 예술가는 그 공간을 채우게 하였다. 건축사는 기존 학교의 시간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마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내부공간을 재구성하고, 옥상전망대와 연결계단을 만들고, 외부에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요소인 철제 프레임으로 공간과 길을 제공, 그 공간 속에서 예술가들이 향기로운 작품을 설치, 공간과 예술이 어느 지점에선가 조우해 방문자에게 친근함과 낯설음을 느끼게 하는 건축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볼거리로는 내부교육공간과 복도에 설치한 벽화와 빛의 벽이 있다.

    정진경 작가는 교육실에 기존의 학교 이미지를 간직하되 새로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고, 창문에 CNC로 주남의 새와 자연풍경 이미지를 조각해 빛을 통해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자료전시실에는 심은영 작가의 아카이브 작품이 있는데 기존 복도 아래 학생들이 만든 공예작품은 갈 곳 잃은 철새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면서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것들은 한데 모아 빛으로 밝히고 온기로 새 생명을 불어넣어 활동을 기록하는 역할로서의 장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울 것이다. 개체와 공동체의 관계들을 작품으로써 연결하며 남겨진 작품들과 함께 예술적 오브제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이야기한다. 만일 다음에 누군가 어릴 때 자기가 여기서 만든 토기를 본다면 시간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외부 조형물전시장에는 철제 프레임의 공간과 길이 있고, 공간과 예술품이 어우러진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길의 초입에는 최수환 작가의 학교공간이라는 작품으로 주남환경스쿨 내부를 약 10대 1의 축소모형으로 만들고, 사각형의 어두운 공간에 설치한다. 관람자들은 공간 안에서 모형의 내부를 볼 수 있고 자연광에 의해 변화하는 내부의 모습은 공간 고유의 감각을 보여준다. 실제의 건물 내부와 모형의 내부는 자연광에 의해 동시에 밝아지고 다시 어두워진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건축물과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모형의 내부, 즉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빛에 의해 연결되어 동시에 존재한다.

    남측으로 김근재 작가의 바람의 갈대의 노래가 있는데, 주남저수지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갈대를 형상화하여 바람이 지나갈 때 춤추는 갈대의 파도를 스테인리스봉과 쇠로 표현하였으며, 서로 부딪치면서 내는 청량한 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지며 이 작품은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길을 걷다 보면 김근재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물방울이 있는데, 수공간에 지름 2m 높이 80㎝의 스테인리스 스틸의 구로 수공간은 하늘에 나는 새를 담고, 물방울은 주남저수지를 담는다.

    조형물 전시공간 곳곳에는 심주영 작가가 제작한 나무와 철제로 만든 기울어진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데, 공간과 작품들로 구성된 공간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오브제이다.

    낡고 오래된 것을 소중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러나 건축과 공간은 규모가 크고 쉽게 바꾸기가 어려운 사회적 자산이다 보니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스페이스 미조는 냉동창고에 건축사가 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공간의 성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례로 내부와 외부공간의 적극적 관계를 만든 작품이며, 문화공간 돌창고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공간의 용도를 변화시킨 멋진 계획이고, 주남환경스쿨은 재미없을 수 있는 교육시설에 공간과 예술품 간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건축사와 예술가가 상호협업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휴일 주남 저수지의 삐딱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폐용도라는 수명이 다한 공공건축의 변경방식과 공간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을지 다른 시각으로 고민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리라.

    배종열 건축사
    배종열 건축사

    시 건축사사무소 배종열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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