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2일 (목)
전체메뉴

[주말 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1) ‘살인의 추억’ 진주 죽봉터널

‘살인의 추억’을 기억하고 ‘영화의 기억’을 추억하다

  • 기사입력 : 2023-12-07 21:13:08
  •   
  •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영화들이지만, 나와는 무관한 곳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넘기게 된다. 하지만 돋보기를 들고 잘 찾아보면 익히 내가 밟은 곳, 나와 인연 있는 곳에서 촬영한 영화들도 있다. 그것이 우리 지역이라면 애정은 더욱 각별하다.

    김춘수는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엔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지만,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 그 대상과는 또 하나 새로운 관계로 설정된다.

    좋은 영화는 한 번 본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늘 편집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 기억하고 싶은 장면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촬영지를 찾아가 미처 보지 못한 곳을 보거나 감독이 애써 숨겨둔 상징과 복선들을 발견한다면 예전의 영화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날 것이다. 이제 돋보기를 들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자.


    ‘화성연쇄살인’ 모티브로 만든 실화극
    봉준호 ‘살인-추억’ 상반된 이미지 연출

    어둡고 휘어진 터널 암울한 수사 결정판
    “밥은 먹고 다니냐” 명대사 아직도 회자

    1980년대부터 방치·1990년 폐선된 진삼선
    ‘죽봉터널’ 녹슨 레일 걸으며 그 시절 회상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지 진주 죽봉터널. 폐선이 된 철길엔 한해살이 풀들이 자라 있고 레일은 녹슬어 있다./이달균 시인/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지 진주 죽봉터널. 폐선이 된 철길엔 한해살이 풀들이 자라 있고 레일은 녹슬어 있다./이달균 시인/

    ◇진주 죽봉터널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만나다

    요절 가수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들으며 죽봉터널(진주시 정촌면 화개길 194번길 121)을 찾아간다. 지금 이 선로로 기차는 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선 이날 비가 뿌렸지만 찾아간 11월 18일엔 눈이 내렸다. 어떤 해엔 눈 구경 한 번 못하고 봄을 맞기도 하는 남도 땅에 11월에 첫눈이라니. 아침 잔설에 여기저기 접촉사고를 낸 차들이 서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를 부른 유재하도 11월에 세상 떴으니 괜히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가장 극적 매개물로 등장한다. 이곳으로 몇 번 지나간 적이 있었지만, 찻길보다 낮은 곳에 있어 운전 중 이 터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정작 중요한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 죽봉터널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찍은 곳이다. 이 영화는 이춘재(나중 밝혀졌지만)가 벌인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실화극이다. 감독은 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살인’과 ‘추억’이란 단어를 조합하여 영화 제목으로 삼았을까. 살인은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더러운 말이고, 추억은 지나온 세월 속에서 즐거움으로 편집된 아름다운 기억이 아닌가. 이 생경한 이름으로 조합된 영화는 어떻게 관객과 만날 수 있었나?

    죽봉터널./이달균 시인/
    죽봉터널./이달균 시인/

    음악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다 보니 영화를 못 본 이들은 혹시 ‘살인의 추억’이 음악영화인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음악영화가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음악을 잘 버무려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은 이준익, 곽경택, 곽재용 감독 등이 대표적인데 봉준호 역시 음악을 매개로 하여 아교풀처럼 장면과 장면을 완벽한 집합체로 만드는 탁월한 감독이다. 바로 이 노래 ‘우울한 편지’와 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을 등장시킨 것이 좋은 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이문세의 대표곡으로 유려한 멜로디와 짙은 서정성으로 사랑받는 노래이고, ‘우울한 편지’는 외로움에서 놓여나게 하는 치유와 위안의 노래로 사랑받고 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우산을 들고 딸 마중을 나왔다가 둑에서 살해당하는 극한 장면에 사용되었고, ‘우울한 편지’는 살인범의 살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로 사용했으니 제목인 ‘살인’과 ‘추억’이란 상반된 이미지를 한 문장으로 엮은, 그 절묘한 역설이 충분히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살인’과 ‘추억’이란 상반되는 두 이미지

    이렇듯 이 영화는 대비되는 두 이미지를 끝까지 끌고 간 수작이다. 앞서 얘기한 ‘살인’과 ‘추억’이 그렇고, 박두만(송강호)의 감(感)과 서태윤(김상경)이 믿는 과학이 그렇다. 시골 형사의 전형인 박두만은 ‘무당 눈깔’인 자신의 통찰력과 폭력으로, 서울 형사인 서태윤은 서류와 DNA감정 등 과학기법으로 범인에 다가가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팽팽한 긴장을 이어가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도 범인을 확정하지 못하자, 자신의 믿음을 배반하고 평행의 소실점에 이르러 서로를 닮아 가는 몸짓을 보여준다. 어둡고 휘어진 터널은 미궁에 빠진 그 암울한 수사의 결정판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용의자(박해일)와 두 형사, 그러나 최후의 보루로 믿었던 DNA감정 결과가 ‘동일인이 아님’으로 나오자 형사는 절망한다. 여기서 박두만은 할 말을 잃었고, 고작 한다는 말이 “밥은 먹고 다니냐?” 한마디를 툭 던진다. 이 말은 한국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명대사로 남았다.

    죽봉터널./이달균 시인/
    죽봉터널./이달균 시인/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세계적 거장이 된 봉준호의 대표작 한 편을 꼽으라면 나는 이 영화를 꼽고 싶다. 2003년 개봉관을 나오면서 한국영화사에 기념비적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2002년 8월, 처음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짤막한 소식을 신문 한 귀퉁이에서 보았을 땐 솔직히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우선,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진,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수 없는 연쇄살인을 소재로 하였고, 더구나 그의 첫 상업 영화 데뷔작인 ‘프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위안이었다면 평론가들의 평가가 그리 박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으레 평론가들은 실패한 영화의 참신성 혹은 실험성 등을 얘기하며 격려 수준의 평가를 하지 않던가. 이 영화 또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생각 때문에 잊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은 영화를 이런 감동으로 만나다니. 그날 극장을 나오면서 무릎을 친 기억이 새롭다. 당시로는 경이적인 520만 관객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가 차지하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만약 ‘프란다스의 개’에 이어 두 번째 영화도 흥행에 실패했다면 과연 오늘의 봉준호는 존재했을까. 잇따라 개봉한 영화가 관객몰이에 실패했다면 투자자를 구하는 일은 난망해진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의 성공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세계적 감독의 탄생을 위한 서막이라고 생각된다.

    분명한 것은 난 이 영화에 중독되어 있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 의미를 띠고 있어 한 번 보고 끝내기엔 그 의도와 복선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넘어간다. 그러므로 숨은그림 찾기에서 감춰둔 그림을 찾았을 때의 쾌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이 영화엔 봉준호의 페르소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송강호, 변희봉, 김뢰하가 그들이다. 송강호와는 괴물, 기생충, 설국열차를, 변희봉은 ‘프란다스의 개’, ‘괴물’, ‘옥자’, 김뢰하와는 ‘프란다스의 개’, ‘괴물’ 등을 같이했다. ‘마더’의 김혜자처럼 그들은 모두 감독이 오래 공들여 신뢰를 쌓은 배우들이다. 범행 현장 근처 논두렁에서 미끄러지던 구희봉(변희봉) 반장은 벌써 세상과 작별하였다. 그때 그렇게 영광과 수모를 겪던 구희봉 반장은 결국 직을 잃고 만다. 만약 그렇게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범인을 잡았을까.

    ◇ 녹슨 레일을 걸으며 진삼선(晉三線)을 추억하다

    다시 죽봉터널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폐선이 된 철길엔 한해살이 풀들이 자라 있고 레일은 녹이 슬었다. 죽봉마을 회관 쪽에서 진주 시내 쪽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영화에서 본대로 철길은 휘어져 있어 반대편 입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20미터쯤 걸었을까. 플래시를 켜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함께 간 수필가 김인선씨 내외는 나를 따라오면서 사진을 찍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들이기에 살짝 들떠 있다. 하긴, 영화촬영지가 아니라면 아무 볼 것 없는 이 철길과 터널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래서 오늘 저녁엔 이 영화를 다시 보기로 약속한다.

    영화 속에서 수갑을 찬 채 어둠의 터널로 사라진 박현규(박해일)는 진범이었을까. 얼굴이 갸름하고 손이 가늘고 여린, 범인과 많이 닮은 외모를 가진 피의자, 그러나 DNA 감정 결과는 동일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회신으로 넋이 나간 서태윤 형사. 그 긴 어둠의 터널 속으로 박현규는 사라지고, 세월도 함께 흘러갔다.

    죽봉터널./이달균 시인/
    죽봉터널./이달균 시인/

    이 진삼선은 1953년 5월 25일, 진주시 개양역과 삼천포시(현 사천시) 삼천포역을 잇는 총연장 29.1㎞의 단선철도로 개통되었다. 처음부터 사천공항으로 향하는 군수물자(주로 유류) 수송을 위한 군용철도였다. 1960년대엔 사천역과 삼천포역 간의 18.5㎞가 추가로 개통되면서 진주역과 삼천포역을 잇는 여객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개통 이듬해인 1966년부터 1970년까지는 삼천포역의 승하차 인원이 10만 명을 넘었으나 그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80년부터는 사실상 방치되었고, 1990년 1월 20일 공식적으로 폐선이 선포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삼천포 사람들이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관용구와 만나게 된다. 바로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굳이 이 말을 전하는 것에 대해 지역민께서는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당시 경전선과 진삼선을 운행하는 여객열차는 2개의 복합열차로 운행되었는데, 개양역에 도착하면 분리해서 앞차는 진주 방면으로, 뒷차는 삼천포 방면으로 운행했었다. 그런데 진주역으로 가야 할 승객들이 딴생각으로 미처 열차를 옮겨 타지 않고 있다가 그만 삼천포 방면 진삼선 열차를 타게 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런 어원을 가진 관용구는 나중 “처음 의도한 것에서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으니 삼천포 사람들은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이 철길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기차는 오지 않고, 추억만 남아 있다.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근처에 작은 저수지가 있다. 이 터널과 저수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왜 우리에겐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던 것일까. 진범인 이춘재는 이 영화를 보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하긴 사이코패스를 만족시킬 영화가 어디 있겠는가. 은퇴한 형사 박두만이 맨 마지막에 눈 부릅뜨고 바라본 곳은 어디일까? 돌아오는 길 한동안 세 사람은 말이 없었고, 영화 ‘살인의 추억’을 조용히 추억하였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이 영화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을 소재로 영화화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고, 대부분이 목이 졸려 살해되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범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1996년 연극 〈날 보러 와요〉가 공연되었고, 2003년 봉준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2019년 10월 1일 용의자 이춘재가 범행 전모를 자백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12월 17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던 이 사건의 명칭이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되었다.

    #죽봉터널, 그 출구 없는 암울함에 대하여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까지 살인범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담당 형사들은 논두렁에 허수아비를 세워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라고 써 놓았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 그대로 그려진다.

    살인이 일어난 곳은 화성으로 연상되는 들판과 갈대밭이었으나 나중 두 형사와 중요 피의자인 박현규(박해일)가 등장하는 극적 장면의 촬영지가 바로 진주 죽봉터널이다. 대부분 터널을 찍을 때는 출구의 빛을 통해 희망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범인을 잡지 못한 암울한 상황을 암시하듯 출구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 어둠이 은유하는 것이 바로 오리무중의 절망이 아니었을까. 우리 삶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주제를 의미하는 곳으로 죽봉터널이 선택되었다면 한 번쯤은 찾아가 볼 만하지 않겠는가?

    이달균(시인·경남문협 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