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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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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토박이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 (195)

- 재다, 꾸부러지다, 곧은금

  • 기사입력 : 2023-08-02 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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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움=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오늘은 4285해(1952년) 펴낸 ‘셈본 6-2’의 84쪽부터 85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84쪽 첫째 줄에 ‘거리를 재어 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요즘도 ‘측정하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거리를 측정해 보았다’라고 하지 않고 ‘거리를 재어 보았다’고 해서 반가웠습니다. ‘재다’라는 쉬운 토박이말을 두고 ‘측정하다’는 어려운 말을 아이들이 배울 때 쓰는 배움책에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거리(距離)’라는 한자말을 쓴 것이 아쉬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거리(距離)’는 ‘떨어질 거(距)’에 ‘떼놓을 리(離)’를 쓰는데 한자말 뜻풀이대로 하면 ‘떨어져 떼놓음’이 됩니다. 이런 풀이는 말집(사전)에서 ‘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 따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라는 풀이와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이’를 말집(사전)에서 찾아봤더니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라고 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거리’라고 하지 않고 그냥 ‘길이’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둘째 줄부터 셋째 줄에 걸쳐 있는 “길이 꾸부러졌음으로 실로 재어서 실의 길이로 그 거리를 알았다.”는 월(문장)은 ‘거리’를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 가운데 ‘꾸부러지다’는 토박이말이 나와 더 반가웠습니다. ‘꾸부러지다’는 ‘한쪽으로 구붓하게 휘어지다’는 뜻으로 ‘구부러지다’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입니다.

    앞서 ‘거리’를 ‘길이’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월(문장)에 나온 ‘실의 길이’를 보니 ‘거리’는 ‘길의 길이’라고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길이 꾸부러져 있기 때문에 실로 재어서 실의 길이로 그 길의 길이를 알았다.”와 같이 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게 아이들이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줄에 ‘바늘’이 나옵니다. 이 바늘로 실을 눌러 가며 길이를 재도록 한 것이 아주 슬기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다음 줄에 선생님께서 실이 늘어나는 일도 있다는 말씀과 함께 다른 연모를 쓸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 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75쪽 첫째 줄 맨 앞에 나오는 ‘곰파스’는 요즘 책에서는 ‘컴퍼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첫째 줄 끝에서부터 셋째 줄에 걸쳐 나오는 ‘작은 바퀴를 금 위에 굴려서 돈 횟수로 길이를 알게 된 기계’라는 풀이는 ‘횟수’와 ‘기계’를 빼면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은 앞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은 말로 ‘긋다’에서 온 말인데 ‘그음’이 줄어 ‘금’이 된 것입니다. 일곱째 줄에 나오는 ‘곧은금’이 ‘곧게 그은 금’이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으며 이와 맞서는 ‘굽은금’은 ‘굽어지게 그은 금’이라는 것도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곧은금’은 ‘직선(直線)’을 갈음해 쓸 수 있는 쉬운 토박이말이고 ‘굽은금’은 ‘곡선(曲線)’을 갈음해 쓸 수 있는 쉬운 토박이말입니다. 이처럼 옛날 배움책에 쓴 쉬운 토박이말을 잘 살려서 쓸 수 있도록 함께 힘과 슬기를 모았으면 합니다. 이런 저의 바람이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배움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사)토박이말바라기/경남실천교육교사모임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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