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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냄비는 귀가 떨어지고도 오래도록 손잡이였다. 낡은 양은 냄비에 밥과 김치보시기를 담아 나르던 날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는데, 내 발등을 다 가릴 정도로 크고 못생긴 냄비보다 더 버거웠던 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를 원숭이처럼 구경하던 아이들이었다. 그게 너무 싫어서 하루 종일 엄마를 굶긴 적도 있었다. 사 먹는 밥은 늘 허기진다던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그때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이제 당신은 세상에 없고 그런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 같았다. 세상의 모든 당신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어린애처럼 살고 있다. 매일의 숙제를 챙기듯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행운이 내게도 왔다. 세상의 알곡 같은 시들과 시를 나누던 모든 분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둘러싼 매순간이 스승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시는 잘 모른다면서도 늘 이해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자신에게 덜 부끄럽도록 진정성을 가지고 오래 쓰는 시인이 되겠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듯 감사한 분이 너무 많다.
단단한 첫걸음을 떼게 해주신 전다형 선생님, 길동무처럼 늘 응원해주시던 많은 분들, 문정완 선생님,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시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북돋워 주신 신정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시 부문 당선자 장이소 씨 △1968년 △부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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