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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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도주하던 일본인이 남긴 글 보니...

“너희들은 땅에 엎드려 다시 애걸하게 될 것이리라”
“74년 전 일본인이 남긴 독설, 어찌 잊겠소”
남해 김연호씨 1946년 8월의 기억

  • 기사입력 : 2019-08-13 20: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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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에 승리하여 기쁨에 춤추는 자여

    더불어 얻어먹는 자 그때뿐인 걸

    단지 ‘일장춘몽’일세.

    위대한 일본!

    한때 모든 것을 잃고 이 땅을 떠난다 하더라도

    보라! 다음 시대를.

    ‘권토중래’하여

    너희들이 땅에 엎드려 우리들에게

    애걸하게 될 것이니라.

    역사를 보라!

    동쪽으로 서쪽으로 좋다고 춤추는 독립이란

    모두 다 이런 뜻이니라.

    가련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보’이니라”

    1946년 8월께 경남신문의 전신인 남선신문에 보도됐던 기사 중 일부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한 일본인이 본국으로 가기 전 전라도 목포의 한 여인숙 벽에 써 놓은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김연호(87·남해군 창선면)씨는 경남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그는 한동안 이 기사를 잊고 살았는데 최근 일본의 경제적 보복 뉴스를 접하다 보니 문득 이 기사가 생각나 신문사에 연락을 하게 됐다고 했다. ★광복 74주년 특집 3면

    김연호씨가 13일 사천시 벌리동 한 카페에서 1946년 남선신문에 게재됐던 일본인의 글귀를 자필로 옮겨 적어 놓은 종이를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연호씨가 13일 사천시 벌리동 한 카페에서 1946년 남선신문에 게재됐던 일본인의 글귀를 자필로 옮겨 적어 놓은 종이를 보여주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는 1932년 일본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산 성호국민학교에서 일본인 선생과 한국인 선생에게서 일본어를 배워 일본어에 능통하다고 했다. 당시 그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일본어로 된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위 글은 애초 일본어로 쓰인 글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방이 되고 다음해 3월 1일 남선신문이 창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해 이 내용이 게재된 기사를 보았다. 1946년 8월로 추정되는데, 하도 충격적인 내용이라 머릿속으로 되뇌며 문장을 외울 정도였다. 신문을 오려 스크랩해서 오랫동안 보관했는데 이사하면서 잃어버려 지금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 내용이 남선신문에 보도된 것은 누군가의 제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선신문은 광복 1주년을 맞아 일본인의 선민의식을 되새겨 경각심을 가지자는 의미로 특집기사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경남신문 보관본을 찾아 보았으나, 신문사 보관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남선신문 1948년 2월 20일자였다. 안타깝게도 1946~1947년치는 통째로 유실되었다.

    그는 이 글에 대해 “보통 문장이 아니다. 딱 봐도 지식인이 쓴 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부분이 충격으로 와닿아 머릿속으로 외웠다. 광복절이 되면 그렇게 외운 문장을 늘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또 “생각보다 내용이 심각하고, 잘 만들어졌다. 우리 민족을 무시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이어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문장 중 ‘여보’라는 내용을 가려켜, 우리 국민을 지칭한 내용이라고 했다. 전라도에서는 사람을 가리켜 ‘여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뉴스를 볼 때 뭔가 이 문장과 뜻이 딱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언젠가는 권토중래한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지금의 경제적인 보복·전쟁 상황과 딱 맞아떨어져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며칠 동안 한번 이야기해봐야겠다고 고민한 끝에 연락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 글에 대해 “일본 사람의 근성이 그대로 나타난 글이다.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인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우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일본과의 문제에 대해 “일본인의 기질이나 본성을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쉽게 생각하지 말고 너무 감정적으로도 나서지 말고, 그들의 민족성을 이해하고 견제하고 교류를 하면서 잘 헤쳐나가면 된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문제인데, 전체적으로 풀어나가야지 대립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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