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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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27) 밀양 수산국수

바람에 춤추는 최고집 면발 … 3대째 이어온 고유의 그맛

  • 기사입력 : 2018-09-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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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윳빛의 하얀 면발이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춘다. 브람스의 자장가 선율처럼 선풍기 바람소리에 맞춰 흔들거리는 국수 면발은 마치 봄을 깨운 수양버들 가지처럼 하늘거린다. 꼬챙이에 걸려 일렬로 곱게 늘어선 모습은 하얀 실타래가 실패에 감긴 것처럼 단정하고 단아하다. 햇살이 좋은 초가을 날씨에는 4~5일 후면 맛좋은 수산국수로 새롭게 태어나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할 것이다.

    밀양시 하남읍 ‘수산국수’. 70년 가까이 전통 옛날 국수의 맛을 고집하는 최씨 일가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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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이 잘 통하는 하얀 플라스틱 투명 지붕.

    “옛날 전통 방식으로 국수를 제조하다 보니 만드는 게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사려는 사람은 많고 국수는 없어 찾는 사람들이 늘 붐비죠.”

    노란 간판에 ‘전통 옛날 국수의 맛’을 내건 수산국수는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삶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고향을 떠난 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음식이었던 국수는 이제는 한천국수, 연잎국수, 녹차국수 등 다양한 형태의 웰빙음식으로 재생산되어 우리들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햇볕에 의존해 면을 말리는 옛 전통 수제방식 대신 자동화 시스템을 갖춰 스팀(열)을 이용해 면을 건조하고 생산하면서 고유의 맛을 잃어가고 있다. 다행히 고집스럽게 옛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오로지 햇볕과 바람에 의존해 면을 말리는 밀양 수산국수는 이제 지역의 특산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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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국수를 3대째 이어가고 있는 최씨 가문 셋째 아들 최종일씨가 건조장에 있는 국수다발을 저장고로 옮기고 있다.

    햇살이 좋은 어느 가을날 찾은 밀양 수산국수는 수천, 수만 가닥의 면발 하얀 뱃살을 드러내고 촘촘히 햇볕을 쬐고 있다. 그저 평범한 상가처럼 보이는 수산국수는 안으로 들어서야 제대로 된 국수공장의 진면모를 만날 수 있다.

    좁다란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왼편 방 모양과 마당에 하얀 플라스틱 투명 지붕을 덮어 햇볕이 바로 내리쬘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지붕 곳곳의 천장에서는 대형 프로펠러가 ‘붕~붕~’소리를 내며 쉼 없이 돌아가고 햇살과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면발은 자연의 힘을 빌려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요란한 팬벨트에 의지해 돌아가는 대형 프로펠러는 면발을 말리는 것도 있지만 공기를 순환시켜서 면발이 골고루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올여름은 날이 더워서 무척 힘들었어요.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지요. 날이 더우니까 일의 속도가 붙어. 잘 마르고 맛있게 마르고, 적당한 습도가 있어 좋았지요.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죠.” 옛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최씨 가문의 셋째 아들인 최종일(63)씨가 수산국수만의 자부심을 늘어놓는다.

    “수산국수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5~7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아버지가 이 건물을 인수해 20년 정도 국수를 만들었고, 큰형님(최종문·70)이 이어받아 저와 40년가량 국수를 만들었죠. 지금은 수년 전 합류한 큰형님의 아들(용석·42)과 둘째 형님이 힘을 보태 가족 모두가 국수를 만들고 있는 셈이죠.”

    국수는 뭐니 뭐니 해도 입안에 넣었을 때 ‘식감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최씨의 지론이다. 그 비법은 따로 있지 않고 오로지 ‘하늘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전통 방식을 고수해 말려도 햇볕과 바람이 안 좋으면 헛일입니다. 그만큼 햇살과 바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죠. 바람이 안 좋으면 우리 집 국수도 맛이 없어요. 또 한 가지는 만드는 것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동화 기계에 의존해 그냥 지켜만 보면 안 되고, 밀가루 반죽을 롤러에 감은 뒤 방망이로 다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국수가 쫄깃쫄깃해져요. 큰 공장처럼 그렇게 해서는 쫄깃한 면발의 맛을 느낄 수 없어요.”

    이곳에서는 하루 밀가루 50~55포대(20㎏) 정도를 반죽해 국수 면발을 뽑아내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발은 꼬챙이(가늘고 긴 나무)에 끼워져 건조장으로 향한다. 한 가닥 한 가닥 오동통하게 살이 붙은 면발이 하늘거릴 때면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비록 세월의 흔적만큼 낡고 허름하지만 수산국수만의 자부심으로 최고의 면발을 뽑아내고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국수를 말리는 데 4~5일, 겨울은 10일, 여름은 2~3일이 소요된다. 건조공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하루 작업량이 50~55포대를 넘기지 않는다. 단지 여름은 건조시간이 짧아 일을 자주하고, 가을 겨울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마저도 비가 오는 날이면 쉬는 날이 많다. 이런 날은 작업을 하면 오히려 손해다. 이처럼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마르는 속도가 빨라 조금 더 빨리 마른다는 것이지 양을 늘릴 수는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밀양 수산국수를 위해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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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챙이에 가지런히 놓인 국수 면발들.

    올여름에도 수산국수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국수를 사갔다.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무조건 다시 찾는다고 한다.

    “국수 안 팝니까?” “4시 넘어야 될 거 같은데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국수를 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최씨는 “국수가 없어서 못 팔지, 파는 거는 걱정 안 해요. 근데 많이 만들어 낼 수가 없어 그게 문제지.”

    최신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면 보다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을 텐데도 최씨 일가는 이를 거부한다. 그는 “멀리서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데 자동 시스템으로 바꿔버리면 그 맛이 나겠어요. 시스템을 바꾸면 이 맛도 사라져요. 그러면 굳이 멀리 찾아올 필요가 뭐 있어요. 가까운 상점에 가서 사면 될 텐데….” 이것이 최씨 일가가 옛날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다.

    이런 전통의 맛을 보여주는 밀양 수산국수가 수년 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식약의약품안전처)가 2020년까지 ‘HACCP(해썹)’ 인증을 받도록 한 것이다. ‘HACCP’는 식품의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에서 위해요소가 해당 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 시스템이다. 정부는 밀양 수산국수의 노후화된 장비를 새로운 장비로 교체해 청결을 유지하고, 협소한 공간도 더 넓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 새롭게 짓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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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발을 뽑아내는 기계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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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를 포장하는 최씨 가족.

    최씨는 “정부가 서민들의 정서를 정말 너무 모릅니다. 이렇게 자동화시설을 도입하면 밀양 수산국수만의 맛을 느낄 수가 없어요. 햇볕과 바람이 아닌 스팀(열)으로 면발을 건조하면 다른 국수와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일본은 장인정신을 키우기 위해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을 장려하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라며 하소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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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시 하남읍 수산국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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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 30분. 면발의 마름 상태를 손으로 확인한 최씨 가족들의 손놀림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건조장에 있던 국수를 전부 저장고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된다. 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오가는데도 부딪힘이 없다. 저장고로 옮겨진 면발이 정리가 되자 본격적인 국수 절단작업이 시작되는데…, ‘철커덩~ 철커덩~’ 부자와 형제가 각각 마주앉은 2대의 절단기에서 4번의 울림이 퍼지고 나면 먹기 좋게 잘린 알맞은 크기의 국수가 쏟아져 나온다. 저울에 무게를 달아 포장된 국수는 따끈따끈한(?) 상태로 신문지에 싸여 줄을 선 사람들에게 곧바로 팔려나간다.

    오랜 세월 함께한 밀양 수산국수는 어쩌면 역경의 세월을 거쳐 온 우리의 삶과 그 궤를 같이한다. 같이 있어 행복했고, 함께해서 정겨웠던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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