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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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배웅과 마중이 교차하는 곳에서 삶의 원동력을 얻다
“잘 가” “많이 보고 싶었어”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의 저마다 이야기가 묻어나온다

  • 기사입력 : 2018-05-0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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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에서 몰려와 전국으로 흩어지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오늘 여행은 이 터미널이다. 너의 여정이 무사하길 기원하는 마음과 네가 올 시간까지 기다려주겠단 확실한 마음가짐. 배웅과 마중이 쌓인다. 터미널은 어깨를 돌려세우는 안녕들로 점철된, 여행에 가려진 그늘이 아닐까. 텅 빈 벽면에 그림을 걸 듯, 시야를 통해 공간 면면을 발견해보는 일은 여행의 힘을 길러준다.

    버스 기사님들은 도시를 오가며 방방곡곡을 누빈다. 진정 팔도를 유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터미널 인근에서 잠시 머물다 떠난다. 말투나 행색에는 지역의 촉감이 묻어있다. 그들은 차에 타는 승객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펜 터치로 도시의 얼굴선을 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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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승차장에 버스가 드나들고 있다.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는 병들어 멀리 움직이지 못하는 누이를 위해 은하철도999의 원작 소설 ‘은하철도의 밤’을 썼다. 누이를 간병하느라 변변한 해외여행 한 번 나가 본 적 없던 그가 어떻게 은하수를 여행하는 소설을 썼을까. 그 해답은 아마 미야자와 겐지도 그들처럼 오며 가며 무수한 사람들을 탐독한 후, 작가적 상상력을 덧댔으리라.

    버스가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서서히 고개를 들이민다. 긴 플랫폼에는 열림과 닫힘이 삐걱거리며 순환한다. 무용수가 몸을 풀 듯 동동걸음으로 차편을 기다린 사람이 보인다. 도착했으니 짐 잘 챙겨 내리라는 기사님의 능변이 버스 안에 울린다. 어떤 기사님의 안내방송은 따끔거릴 만치 다정이 몸에 밴 분도 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서늘한 공기는 묘한 해방감을 준다. 터미널 안의 통일된 방향 하나 없는 발소리들이 아우성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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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 가게에서 묵묵히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


    버스가 도착하고 도로 위를 동행해온 사람들이 한 곳에 내린다. 각자 삶의 조건에 따라 바쁘게 갈라져 흐른다. 출발 혹은 도착을 알리는 기계음 전후로 소리가 반복된다.

    ‘어서 와’, ‘조심히 내려가’, ‘많이 보고 싶었어’. 마중 나온 사람들은 일상 속 벌어진 사태들을 근심하다가도 어느새 찌푸린 얼굴을 거두고 웃는다. 기꺼이 나를 보러 와준 사람에게 영웅적 노력을 치하하듯 말간 웃음을 준다. 터미널에서 만난 남녀는 자화상을 마주하듯 몇 초간 서로를 응시한다. 오래 그립던 사람을 비로소 마주하면 자신을 포위한 사람무리 따위 생략해버리는 몰입이 온다. 그리고 서로를 지탱해주는 먼 손을 꼭 잡고 나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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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2시에 문을 여는 터미널 꽃시장.


    배웅하는 사람들은 이별을 원망할지언정 아무도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얼굴에 역력한, 호소할 수 없음은 괜한 부채감을 준다. 언젠가 지인의 sns에서 본 상경하는 딸을 배웅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찍어 올린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매달려 있다. 유리창 안쪽 딸은 명랑하게 웃고 엄마는 뒷모습만 보여준다. 답례하듯 따라 웃는지,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리는지 알 수 없다. 한동안 못 볼 딸을 올려볼 도리뿐인 그 뒷모습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 더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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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널에는 1인용 의자밖에 없는 간이식당들과 고유명사가 돼버린 역전우동이 있다. 버스터미널임에도 역전우동으로 불린다. 후루룩 넘기고 일어나 다시 세상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야 한다는 의미이거나, 우동을 먹고 힘내서 삶에 역전을 가져오라는 의미. 그래서 아무도 곁을 두지 않고 묵묵히 음식만 씹는다. 사람을 보내고 남는 마음의 여진을 달래려 후루룩, 불덩이 같은 면발을 후후 불어 끼니 하나를 메운다. 우동은 어느 계절이고 몸을 뜨겁게 한다. 따뜻한 음식을 앞두고 막 보내준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를 복기하는 것도, 이제 여기 없음을 담아내는 한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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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유를 가지고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세상과 하나가 된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잘 모르는 사람들 모두 일단은 선량한 얼굴이라 구경하기 좋다.

    터미널에서 목표한 시간까지 어항처럼 담겨 빙빙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양팔은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온몸을 다해 포옹하는 사람. 눈이 펑펑 내리는 등짐을 이고 봄처럼 웃어 보이는 사람. 못 본 시간 동안의 처지를 낱낱이 한탄하는 상대를 보며, 이지러진 마음을 개어주는 사람. 권태가 들면 조용히 허물을 벗어 한 꺼풀 완전해지는 뱀처럼, 고고하게 앉아 책장을 넘기는 사람. 우리는 단 한 번의 갈등도 없었다는 듯 결국엔 웃는 사이. 이 모든 사람들은 어쩌다 사랑하게 되었음으로 모든 우연성을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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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사람만큼 음식도 다양하다.


    여러모로 부족한 구석들이 모여 퍼즐을 짜듯, 사람들은 물컹한 관계를 다지며 대합실을 메운다. 군중의 일원들은 저마다의 한철을 지나고 있다. 대합실 테두리의 무인발급기는 다시 안녕과 안녕 동안의 우주를 가늠해야 하는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터미널에는 밤이 내려도 제자리를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간이식당 다음으로 터미널마당 있는 것이 복권집이다. 일관성 없이 몰려드는 손님으로 번번이 미지근한 커피를 넘기는 복권집 아주머니. 천국을 짧게 설계하며 열망과 실망의 담금질에 이골이 난 손님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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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들.


    터미널은 비단 사람만 싣는 곳이 아니다. 가능한 한 모든 물자가 모였다, 퍼져 간다. 터미널 3층에는 꽃시장이 있다. 내가 간 시각에는 문을 닫았다. 그런데 팻말에 적힌 영업시작 시간이 밤 12시라니. 우리가 쉽게 받아 웃는 꽃들에는, 핀 꽃을 다시 피워내기 위해 역력한 손길이 있다. 겨울날에 좋아하는 사람의 집 앞에 자주 꽃을 사들고 가 나오는 순간 건네주곤 했다.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약제사처럼 한 송이, 한 송이 골라 담은 손짓이 바람에 꺾이게 하지 않으려 코트로 꼭 감싸서 갔다. 진심을 발설하는 대신, 꽃을 가다듬어 내밀던 순간은 두 사람의 기억 속에 불꽃놀이처럼 펑 하고 애장되었으리라 믿는다.

    돌아누운 사람의 등에서 까마득한 거리감이 느껴지는가 하면, 긴 거리에도 그리움 하나 없이 애틋할 수 있다. 몸의 거리를 좁히려면 장시간 버스에 올라야 한다.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몇 줄 다정한 언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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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시간 사람을 대신해주는 승차권 무인발급기.


    다양한 군상을 탐독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감정이 이름도 짓기 전 와르르 무너지곤 한다. 그러면 당장 거리를 좁히고 싶은 충동에 꺼둔 휴대폰을 켜 소중한 사람에게 근사한 말을 쏟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이토록 여행은 정말이지 무용한 일이지만 내 삶을 온전히 내가 살게 하는 구심력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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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백
    △ 마산 출생·경남대 재학
    △ 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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