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5월 2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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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봉열 대한민국 분재 명인

열정 33년… 분재에 미쳤더니 명인에 미치더라
평범한 회사원, 분재에 미치다
거래처 사장실 소나무 분재에 마음 뺏겨

  • 기사입력 : 2018-01-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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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백 년의 풍상을 겪은 노거목(老巨木)을 안방 작은 화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호사다.

    대자연의 아름다운 정취를 가까이에서 매일 보고 느끼고 싶다는 인간의 욕심이 분재(盆栽)로 이어졌지만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하는 과정은 분재만이 갖고 있는 인고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재예술 하나로 대한민국 명인의 반열에 오른 이가 있다. 창원 동읍에서 한국자연예술원을 운영하며 자연예술인으로 불리는 김봉열(59)씨다.


    ◆분재와의 인연= 그는 진주 수곡에서 태어나 진주 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78년 창원에 있는 당시 기아기공에 입사했다. 공고를 졸업했지만 우연치 않게 회사 내 법무담당 일을 하게 되면서 법지식을 새롭게 공부하게 되고, 소송 업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 중 하청업체 사장단과 회의가 있어 창원에 있는 거래처 사장실을 방문하게 됐는데 사장실에 있던 소나무 분재 가운데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함부로 탐할 수 없는 고고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후 그는 분재를 배우기 위해 회사 외의 시간은 분재원을 방문하거나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분재인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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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열 분재 명인이 창원시 동읍 한국자연예술원에서 수령이 200년 된 주목 분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수령 300년 된 모과 분재.



    ◆분재의 매력= 무엇이 그를 분재로 이끌었을까.

    그는 “꽃이나 식물을 보면 화를 내지 않는다. 분재나 야생화 키우면 평온해진다. 현대의학 못지않게 식물을 통한 원예 치료는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말한다. 그런 그이기에 분재 대중화에도 열심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자연이 입맛대로 주는 것은 없지만 식물의 성장에 대한 생리만 잘 알면 누구나 분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400여개의 작품을 혼자 관리하는 것도 물이나 거름을 주는 시기, 가지치기 등 시기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담은 홍보용 책자를 만들어 분재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가 말하는 매력적인 분재는 어떤 걸까. “머리는 숙여야 하고, 배를 내밀면 건방져 보이며, 공간 유미와 산과 숲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가 만든 300~400년 수령의 모과나무나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나무 작품에서 숲과 산이 나타났다.

    ◆분재에 미치다= 그의 하루는 분재로 시작해서 분재로 끝난다. 분재가 워낙 예민해 날씨와 온도를 맞춰줘야 하고 식물마다 물 주는 방식이나 시간도 달라 갓난아기처럼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거름이 든 영양분도 직접 만들어 준다. 그의 집은 창원시내에 있지만 분재를 키우는 창원 동읍의 한국자연예술원에서 숙식을 하는 것이 다반사다.

    취미로 시작한 분재는 어느 순간 그에게 인생의 전부가 돼버렸다. 평일에는 회사에, 주말이면 하나둘 키운 분재를 맡긴 분재원으로 출근해 살다시피 하면서, 자녀들과 목욕을 가거나 함께 놀러갈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집안 대소사나 친구들과의 만남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갖고 싶은 분재나 필요한 나무가 생겼을 땐 딸 돌반지를 팔아서 장만하기도 했고, 퇴직을 했을 때도 퇴직금의 10%를 뚝 떼어내 나무를 사는 데 투자를 하기도 했다. 급기야 퇴직 후 지난 2008년에는 땅을 구입해 지금의 한국자연예술원을 만들어 33년간 소중하게 가꿔온 400여점의 작품과 야생화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취미로 시작한 분재인생은 결국 그를 대한민국 분재명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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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분재 명인= 그는 분재를 하면서 우리나라 식물이면서도 일제 침략시기에 일본으로 가져가 ‘조선소로’, ‘암사수’라는 명칭으로 일본 분재 월간지에 기재하다가 지금은 아예 일본 수종으로 ‘이와시대’라는 수종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 수종으로 잘못 알려진 소사나무의 이름 찾기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 2004년에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인 소사나무 이름 찾기 일환으로 경남도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소사나무 분재작품전’을 열고 작품집을 발간해 경남도와 함께 홍보를 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소사나무작품 분재전’을, 2008년에는 람사르총회 유치 일환으로 ‘한국분재명품 100선전’을 유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9년 람사르총회 개최 당시에는 전 세계 참가국에 한국분재명품 100선집 작품집을 배포해 대한민국 분재 역사에 뜻깊은 이정표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33년 분재활동을 정리하는 첫 개인전시회 ‘예풍전(藝風展)’을 개최했다. 지난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마산대학교 청강전시장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에는 그가 열성을 다해 가꿔온 분재는 물론 소장하고 있는 야생화, 도자기, 그림, 서예, 서각은 물론 분재작품을 사진으로 담은 도록까지 만들어 분재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분재로 개인전을 연 것은 단 6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전시회에서 도록 판매대금 전액을 한국뇌졸중연구재단에 장학기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사)대한민국명인회에서는 분재에 대한 그의 열과 성을 인정해 대한민국 분재 70년 역사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한분재명인으로 추대했다.

    ◆야생화 사랑= 김봉열씨의 활동은 분재에서 시작됐지만 사회봉사까지 넓고 다양하다. 자연예술단체인 (사)한국자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를 창립하고, 현재는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사)한국야생화협회 창립 발기인 대표 후 현재 2대 회장으로 한국야생화예술문화를 전국에 홍보하는 데도 열심이다.

    특히 야생화는 분재나 수석을 돋보이기 위한 역할을 하는 초물분재(나무가 아닌 야생화 등 초본식물)로 지난 2010년 그를 중심으로 야생화협회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창립했다. 현재 그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전국 19개 시군지부에 정회원만 5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깨끗한 세상을 꿈꾸는 김씨는 지난 2016년에는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회로부터 부패방지 청렴인으로 선정됐고, 대한민국참봉사조직위원회에서는 ‘대한민국 참 봉사 대상’ 문화예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는 한국민족정신진흥회의 현대 한국인물사에 수록되는 영예를 안았다. 자격증도 다양하다. 힐링원예지도사와 한약재배관리사, 약초재배관리사, 약용식물해설사, 한방코디네이터까지 섭렵했다. 분재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식물에 대한 원리와 재배법 등을 모두 알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길= 4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분재는 판매를 생각하지 않고 취미로 키우다 보니 100% 순수 작품이다. 그런 그도 요즘 고민이 있다. 이 많은 분재를 영원히 관리할 수도 없고, 판매를 할 경우 33년간 공들여 키워온 분신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분재 인생이 사라질 것 같은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그는 분재와 야생화를 통한 테마공원을 만들어 지역에 관광수입을 창출하고 싶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경남지역의 일부 지자체를 포함해 서울시에까지 분재를 활용한 테마공원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전 작품을 기꺼이 기부채납하겠다는 의사도 밝히며 분재인생의 마지막 큰 작품을 다듬고 있다.

    글=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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