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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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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팔만대장경이 갖는 의미

  • 기사입력 : 2011-11-0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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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인사에 봉안돼 있는 목판대장경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국간판(國刊板), 고려대장도감판(高麗大藏都監板), 해인사대장경(海印寺大藏經)으로 알려져 있다.

    ‘팔만대장경’은 대장경의 판수가 팔만여 장에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표현할 때 팔만사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며, 또한 가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 법문이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됐다.

    ‘고려대장경’이라는 명칭은 경판의 조성 시기가 고려시대에 기인한다. ‘재조대장경’은 현종 2년(1011)부터 선종 4년(1087)까지 조성된 초조고려대장경(初雕高麗大藏經)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해 오다가 고종 19년(1232)에 몽고 2차 침입 때 의천의 ‘고려교장’과 함께 불에 타 버린 후 다시 조성해 ‘재조대장경’이라고 한다. ‘국간판’이라는 의미는 국가에서 조성한 경판을 뜻하며, 사간판이란 글자 그대로 사찰에서 간행한(제작한) 경판을 말한다. ‘고려대장도감판’은 고려시대 대장도감을 설치해 조성된 경판이라는 뜻이다. ‘해인사대장경’이라는 것은 대장경판이 해인사에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팔만대장경’이라고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6월 13~15일,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해인사 고려대장경판과 제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해인사 장경판전이 1995년 12월 9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불국사, 석굴암, 종묘와 같이 등록됐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에서 처음에는 팔만대장경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고 했으나, 세계문화유산은 움직일 수 있는 동산은 될 수가 없어서 부득이 경판을 봉안하고 있는 장경판전을 지정하게 됐다.

    장경판전에 대한 우수성은 ‘고려대장경판 보존을 위한 기초 학술 조사 연구’가 1994년 6월에 시작해 1995년 1월에 일차 보고서가 완료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경판의 보전 관리를 위해 경판의 상세한 상태 파악을 목적으로 ‘경판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장경판전에 관해 각 건물 도면 작성, 건물기둥의 손상 부위와 벽면 상세도, 판전 내부의 온·습도와 분진 성분 조사를 했다. 이번 조사는 경판의 안전한 종합적 보존 대책을 예방 보존 과학적 측면에서 검토해 경판, 판가, 건물을 포함한 장경판전의 환경 개선책을 위함이었다.

    세상에는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이 많이 있으며, 해마다 새로이 지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유네스코 전문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해인사만이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을 한 장소에 지정받았으며, 앞으로도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한다.

    성안스님(해인사 대장경 보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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