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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애정은 인류의 본량- 김수환(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3-10-12 19: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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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백정 사위 된 거를 후회한 적은 없다. 다만 내가 수모를 당하는 것은 견딜 만했지마는 내 계집 새끼들이 당할 적엔 피가 끓더마. 천대라는 것은 받으면 받을수록 받는 사람끼리 함께 뭉치는 게 상정이니께. 어쨌거나 이자 법으로는 백정을 묶어두진 않았으니께 앞으로 식자들이 많이 생길 기고 또 백정의 수만 해도 수만 명이 넘으니께 자긍책도 차츰 매련 안 하겄나.” 박경리 소설 토지의 일부분이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도 당시 가장 심한 학대를 받던 백정 신분이었다.

    도축업에 종사했던 백정(白丁)은 천민 중에서도 천민이었다. 호적이 없었고 남자는 패랭이를 써야 했고 상투에는 검은 띠를 둘러 자신이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으며, 여자는 검은 치마를 입어야 했다. 백정은 세 칸 이상의 집을 가질 수 없었으며 결혼은 백정끼리만 할 수 있었다. 글을 배워서도 안 되고 죽은 뒤에도 거적때기에 말아 매장해야 했다. 백정은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아이에게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지나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때, 진주에서 청년들이 백정에게 개를 잡으라고 강요했는데, 백정이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자 매질로 백정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백정들이 청년들을 살인죄로 고소하였는데 경찰은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갑오경장으로 백정의 호적이 있었으나, 호적에 백정임을 뜻하는 도한이라는 표적이 싫어서 호적이 없는 백정도 있었다. 당시 진주 부유한 양반 집안의 큰아들이었던 강상호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백정해방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이학찬, 장지필 등 백정 출신 지식인들과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 등 양반 출신 사회운동가들이 ‘형평사’라는 사회단체를 조직하면서 형평운동이 시작되었다. 형평사는 사칙 19조항과 세칙 6항을 마련하고 전국 각처에 지사 및 분사를 설치하였는데 설립 1년 사이에 12개의 지사와 67개의 분사를 갖추었다. 형평사는 빠른 속도로 전국적인 규모로 전개되었으나 내부분열과 일제 탄압으로 점차 위축되었고, 1935년 4월 24일 제13차 형평사 전국대회 때 단체의 이름을 대동사로 바꾸면서 인권운동의 본래 성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형평사는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단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오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 그러므로 아등은 계급을 타파하며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우리도 참사람 되기를 기함이 본사의 주지니라.” 형평사가 출범할 때 내건 형평사 주지의 앞부분이다. 형평운동의 사회적, 역사적 의의는 세계인권선언보다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운동,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일깨웠던 운동이라는 점 등 수없이 많고 크다. 그런데 자꾸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애정이 인류의 본량이라는 말이다. 대대로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해온 그들에게 절실했던 것은 그 무엇보다 애정이었다는 뜻이겠다. 차별로 인한 끝없는 좌절과 바닥이 안 보이는 외로움 속에서 그들에게 꼭 필요했던 것은 인권이니 자유니 권리니 하는 알 듯 모를 듯한 번듯한 말이 아니라 애정이었다는 것, 애정이야말로 그들의 서럽고 서러운 바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고백에 깊이 숙연해진다. 그렇게 아프게 살다가 외롭게 떠난 숱한 그들에게 사소하나마 뒤늦은 애정을 보낸다.

    김수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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