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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2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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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한 식구- 유영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3-08-31 19: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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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주 동화작가

    어린 시절, 내 꿈 중의 하나는 간호사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이팅게일 위인전에 꽤 감명을 받았던 게 틀림없다. 어쩌면 병원에 갔을 때 얼굴 보기 힘든 의사보다는 주사를 놓아주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어디가 아픈지 물어봐 주는 간호사가 더 위대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커가면서 꿈은 시시각각 달라졌고, 간호사란 열망도 흐지부지 사라졌다.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버티기 힘든 직업인 데다 가치 있는 일에 비해 걸맞은 대우와 존중을 못 받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병원에 가면 간호사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 누군가가 입원했다 하면 나도 모르게 남다른 열정이 솟아오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간호하는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아픈 사람 돌보는 일이 두렵기는커녕 기꺼이 즐긴다.

    약 복용을 돕고, 식사를 챙기고, 링거액이 다 되면 레버를 잠가놓는 일을 할 때 나는 잠시나마 간호사가 된 기분에 젖는다. 아픈 이가 뭘 원하는지 유심히 살피고 돌보는 사이, 병세가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넘어 희열을 느낀다. 실제로 가족들이 아플 때 나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위험한 고비도 여러 번 넘긴 경험이 있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다. 국민 4명당 1명은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이다. 우리 집에도 18년 된 노령견이 있다. 순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이 훌쩍 넘었다. 어느 집에나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어릴 땐 정말 말도 못 하게 예뻤다. 마음 씀씀이는 또 얼마나 살가운지 모른다. 추운 겨울, 따뜻한 순이 아랫배에 언 손을 집어넣으면 제집에 들어오라는 듯 몸을 비켜 자리를 내어줄 정도였다. 한편으론 악명높은 비글답게 사고뭉치에다 말괄량이였지만 함께 산 세월만큼 정이 깊고 애틋하다.

    순이는 이제 눈이 멀고, 귀도 들리지 않는다. 걷는 것도 힘들어 누워만 지낸다. 음식을 거부한 지 보름이 넘었다.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고 가슴이 아리다. 이것저것 만들어 먹여봐도 소용없다. 순이가 세상을 떠나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애걸복걸하듯 어르고 달래면 순이는 마지못해 몇 모금 먹어준다. 지금은 젖병으로 동물 분유를 먹이며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순이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사이 순이는 내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것 같다. 어쩌면 제 숨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나를 생각하는지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이다. 반려동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 몸에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호르몬 옥시토신이 나온다고 한다. 동물과의 교감은 스트레스 수치를 낮춰주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심장 건강에 도움을 주기에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동물은 길가에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도 쓰지 않는다. 음식쓰레기도 플라스틱도 만들지 않는다. 미사일을 쏘지도 않고, 총칼을 들지도 않는다. 거짓말도 하지 않고 욕하지도 않고, 남의 험담도 하지 않는다.

    이러니 나는 순이가 먼길을 떠날 때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한 식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내가 자신 있는 일을 원 없이 해줄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유영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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