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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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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11) ‘언어의 실험’ 김한규 시인

세상에 없던 시어로 ‘존재의 이유’를 사유하다

  • 기사입력 : 2023-08-30 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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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현대문학의 심연에는 박상륭(1940~2017) 소설가가 있다. ‘죽음의 한 연구’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은 극도로 난해해 대중과는 가깝지 않았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인 사유로 무장한 작품들이 쌓아 올린 문학적 권위는 아득히 높다. 2018년 소설가 박상륭을 기리며 박상륭상이 제정됐다. 시·소설·희곡·평론·논문 중 단 한 편만 골라 10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매년 박상륭처럼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품들이 선정되면서 문학상의 권위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제5회 박상륭상’ 수상자로 하동 출신 김한규 시인(63)이 이름을 올렸다. 박상륭이 타계한 2017년, 57세 나이로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란 이력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수상자를 확인한 박상륭상 운영회의는 “문학의 나이는 문학 자체가 스스로 규정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시인의 시 세계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창원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김한규 시인이 최근 발간된 합동시집 ‘시골시인Q’를 들고 있다.
    김한규 시인이 최근 발간된 합동시집 ‘시골시인Q’를 들고 있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하며 분노·방랑

    생계 위한 비정규직 생활 공허함 느껴

    시 창작 병행하며 자존감 회복 나서

    2017년 57세에 늦깎이 시인 등단

    ◇존재 이유 되찾기 위한 여정= 김한규 시인에게 문학은 삶의 경계에 자리 잡은 꿈이었다. 소설가를 꿈꾸던 소년이었고, 노동·민중시를 쓴 청년이었다. 2013년 53세, 중년이 된 그는 보다 절실하게 문학을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게 된다.

    지난한 그의 삶은 분노에서 시작한 방랑이었다. 경상대 미술교육학과에 다니면서 참가한 학생운동에서 폭력 투쟁 혐의 등으로 수배돼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결국 붙잡힌 그는 1년 6개월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대학에서 제적된다. 김영삼 정권 때 사면복권이 이뤄져 재입학 허가가 났지만 그는 교사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1990년 출소한 직후 학생운동의 연장선으로 진보 성향의 노동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점점 깊어지는 내부 분열에 못 이겨 2008년 모든 자리를 놓고 홀연히 떠나고 만다. 비정규직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택시 기사, 대리운전 기사, 주유소 알바, 조선소 배관공 보조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비정규직은 규정되지 못한 자들의 이름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지불한 대가는 존재의 공허함, 즉 떨어진 자존감과 흐려진 정체성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을 가지려면 소속감, 또는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존감도 생긴다. 그 당시 6년간 워낙 많은 일들을 하다 보니 삶의 의욕도 낮고 좌절했다. 시를 쓰는 것을 넘어 시인이 되어야 자존감이 회복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다.”

    김한규 시인./김용락 기자/
    김한규 시인./김용락 기자/

    4년 후 첫 시집 ‘일어날 일…’ 펴내

    ‘새로운 언어’로 올 초 박상륭상 수상

    출품작 중 8편 골라 ‘시골시인Q’ 참여

    언어의 실험 담은 두 번째 시집 준비

    ◇아직 그러고 있고, 지나가는 중이다= 2013년 그는 비정규직 일과 시 창작을 병행한다. 이윽고 201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시인이 된다. 4년간 쓴 시가 300편에 달했다. 그중 신춘문예 당선작 ‘공복’은 쓸쓸하고 텅 빈 ‘허기’라는 감정을 낯설게 묘사한다.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중략)//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끝났습니다.//아니면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연락하겠습니다. -‘공복’ 中

    시인은 2021년 첫 번째 시집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를 발표한다. 그만의 시적 표현방식이 잘 드러나는 시인의 말은 ‘늦었지만 이어가겠다’는 다짐이다. “아직 그러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고 있겠다.”

    시집에는 ‘상철 씨(쓸모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동일 씨(좋은 아침입니다)’ 등 실존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모두 시인의 삶에서 관계가 깊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유명하거나 잘사는 이름 있는 사람은 아니다. 평범하지만 이름 없는, 그럼에도 자기 삶에 대한 자존감과 자긍심은 지키고 있는 소시민들이다. 시인은 이를 자신만의 ‘기질’이라고 표현했다. 쓰다 보니 작은 것들에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김한규 시인의 시를 정의하자면, ‘있음’과 ‘없음’으로 환영받지 못할 사물과 상황을 설명하면서 존재 이유를 묻는 사유의 작업물이다.

    그는 자신의 시 세계를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발표한 ‘시골시인Q 합동시집’의 8편의 시가 이를 증명한다. 8편의 시는 박상륭상에 출품했던 24편의 시에서 골랐다.

    시인은 “개인적인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화술로 된 첫 번째 시집이 못내 아쉽다”면서 “언어 자체에 대한 고민의 중간 결과물이 시골시인Q”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 표현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언어를 표현할 방법을 찾고 있다. 시인의 언어적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나갈 수 있고 지나가고 있고 지나갈 것이다 아직 지나가는 중이다 -‘지나왔습니까?’ 中

    김한규 시인./김용락 기자/
    김한규 시인./김용락 기자/

    ◇살면서 죽어있다, 완보동물= 제5회 박상륭상의 수상작은 김한규 시인의 시, ‘완보동물’ 외 23편이다. 수상작으로 앞장 세운 ‘완보동물’은 박상륭처럼 이 세상에 없던 언어와 표현으로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완보동물은 ‘느린 걸음’이란 뜻을 가진 몸길이 0.1~1㎜의 매우 작은 무척추동물이다. 영하 273℃, 영상 151℃, 6000기압의 고압, 진공상태의 저압 등에서 생존 가능해 불멸의 생물로도 불린다.

    밖은 밖이 아닌 곳으로 만들어 가두지 않고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고 버려두었다 그것을 낳으려고 낳지 않았다 죽는 기분을 갖지 않은 채로 죽음을 싸고 있다 살면서 죽어있다 -‘완보동물’ 中

    시인은 기존 시 창작 방식에서 지향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쓰게 된 첫 번째 시가 ‘완보동물’이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시는 2022년 쓰여졌다. “처음에는 특이한 동물이라 생각해 시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됐다. 계속 고찰하다 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은 듯 빛도 없이 잊혀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미지가 겹쳐 보였고 곧장 시가 완성됐다.”

    시인은 현재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시집은 ‘완보동물’을 비롯해 보다 진일보한 작품으로 채워질 계획이다. 지금의 그에게 시는 메시지나 주제 의식보다도 ‘언어의 실험’이란 의미가 크다. 시로써 새로운 언어를 만들겠다는 마음은 가히 박상륭에 가닿아 있다. 박상륭이 박상륭만 할 수 있었던 문학을 했던 것처럼, 시인이 된 김한규는 더 나아가 김한규만이 할 수 있는 시를 쓰길 꿈꾼다.

    글·사진= 김용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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