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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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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전국구 명리관상학자 방산 노상진 선생

“사주명리학은 내 운명… 체계적인 학문으로 키우고 싶어”

  • 기사입력 : 2023-06-07 20: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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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 태어난 날과 시간에 해당하는 사주로 한 사람의 운명,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동양철학의 한 학문.

    누구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자신이 돈을 많이 벌 것인지, 건강할 것인지, 승진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동양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태어난 때를 말하는 사주에 바탕을 두어 운명을 예측하는 사주명리학이 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체계가 없어 학문이라는 인식보다는 단순 ‘미신’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 사주명리학의 체계를 잡고, 후학을 양성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명리관상학자 방산(芳山) 노상진 선생이다.

    방산 노상진 선생이 사주명리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방산 노상진 선생이 사주명리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1983년 한학자인 스님 밑에서 명리학 시작
    10년 후 제산 박재현 선생 수제자로 공부
    수련 마치고 창원에 방산정사 열고 상담
    창원 한마음병원 신축부지 선정에도 참여


    ◇자연을 벗 삼아 성장, 대학 진학 포기 후 ‘운명’에 관심 가져= 함안 출신인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을 놀이터 삼아 온갖 호기심을 채우며 천진난만하게 성장했다. 이것이 동양학의 근원인 음양오행의 스승이 돼주었다고 한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은 꿈도 못 꿨다. 잠시 방황하며 지낸 그는 문득 사람은 왜 다르게 출발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주를 보러 가시면 어머니에게 그건 미신이니 차라리 그 돈을 나에게 달라고 했을 정도로 이쪽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친구들과 똑같이 살았는데 저 친구는 대학에 가고 나는 못 가고 왜 그런지 궁금했죠. 물어볼 데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사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겁니다.”

    ◇험난했던 사주 공부… 평생 스승과 만남= 21살 때인 1983년. 방산 선생은 명리학을 배우기 위해 지역 유명한 한학자인 한 스님 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돈이 없었기에 낮에는 절에서 일하며 밤에는 명리학과 풍수, 주역을 공부했다. 이러한 생활은 10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공부할수록 그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생년월일이 똑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의 사주와 운명은 같은 것인가. 그는 사람들과 상담하면서도 이 의문이 풀리지 않아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의문을 품고 그는 일명 ‘박 도사’로 불리는 제산(霽山) 박재현 선생을 찾아갔다. 제산 선생은 고 이병철 삼성 회장 시절 신입사원들의 사주와 관상을 봤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크게 얻은 인물이다. 그는 우선 사주를 보기 위해 제산 선생을 만났다. 제산 선생은 그의 사주를 본 뒤 그냥 “자고 가라” 한마디만 했다. 긴말 필요 없이 평생 사주명리학을 공부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그 뒤 그는 제산 선생 곁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제산 선생은 그를 신임한 덕인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며 일을 돕게 하고 사주명리학을 가르쳤다.

    그의 호인 ‘芳山(방산)’은 제산 선생이 지어줬다. 제산 선생은 제자의 호에 산에 꽃이 피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이라는 깊은 뜻을 담았다.

    “처음에는 4명이 공부를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저 빼고 다들 공부가 안될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죠. 진짜로 저 빼고는 다들 포기했습니다. 선생님을 모시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수제자가 된 게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후학 양성 위해 지난 2017년 진해에 정착
    인근 대학·기관서 관상·풍수 등 역학 특강
    매달 후배들에겐 사주명리학 전수 강의
    연말까지 관련 책 두 권 출판 계획도


    ◇전국구 명리관상학자= 방산 선생은 수년간 수련을 마치고 창원에 방산 정사를 열어 상담을 시작했다. 그가 사주와 관상, 풍수를 함께 본다는 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이가 찾았다.

    어느 날 한 대기업 회장 며느리가 직접 연락해 하루 수입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왔다. 그 뒤 그 며느리는 그 비용을 내주며 방산 선생을 서울로 초청했다. 그녀의 집에 가보니 대기업 일가들이 전부 방산 선생에게 상담받기 위해 모여 있었다. 그게 인연이 돼 방산 선생은 창원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게 된다.

    “아마 이름 들으면 다 알만한 분들이 저에게 찾아와 상담받았죠.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전부. 그때 한참 잘나가는 국회의원이 있었는데 제가 다음 선거에 나가지 말라고 했죠. 힘들 때는 사주를 믿지만, 잘나가면 안 믿게 되거든요. 결국 그 사람은 출마했고, 지금은 정치 인생이 끝나 버렸죠.”

    방산 선생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창원 한마음병원 부지 선정을 그가 했기 때문이다. 한마음병원 부지 선정 당시 대다수 관계자가 기존 병원이 있던 상남동에 신축을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충식 한마음병원 이사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방산 선생은 창원중앙역 근처에 새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방산 선생은 “하충식 이사장은 이병철 삼성 회장과 사주가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산 선생은 이곳이 “좌청룡으로 노적봉이 쌍으로 솟아 있고 앞에는 호수가 있어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감아주는 곳. 산·물·바람의 동거가 절묘하니 천하 길지이다. 하늘의 대문까지 땅으로 비추고 있어 병원 터로는 대명지”라고 평했다.

    하지만 자금난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이제는 한마음병원이 부도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 한마음병원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코로나19 확산 당시 대표적인 신속 항원 검사 병원으로 많은 이들이 찾았다. 만약 한마음병원이 상남동에 지어졌다면 그 많은 검사 대기 인원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이 크다.

    방산 노상진 선생
    방산 노상진 선생


    사람마다 해석 다른 게 사주명리학 문제
    가장 큰 목적은 사람을 안심시켜주는 것
    단순 미신으로 취급되는 게 가장 안타까워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


    ◇후학 양성을 위해 고향 경남 정착= 방산 선생은 사주명리학이 제대로 된 체계가 없다 보니 단순 미신으로 취급되는 것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그는 지난 2017년 창원시 진해구에 정착했다. 진해는 그의 고향은 아니지만 그와 사주명리학적으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저는 바다를 쳐다보면 지혜가 생기는 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을 보면 학문의 기운을 받죠. 물과 산이 필요한 저에게 진해 자은동은 최고 길지입니다. 자은동은 천자가 숨은 동네라고 하죠.”

    그는 현재도 인근 대학과 기관에서 특강을 진행하며 사주명리학이 제대로 된 학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책 출판도 준비하고 있다. 연말까지 사주명리학과 관련된 책 2권을 출판할 계획이다. 한 권은 일반 시민을 위해, 또 다른 책은 후학들을 위해서다.

    요즘 그는 많은 강연 일정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창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주명리와 관상, 풍수 등 역학에 관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매달 진해에서도 강의를 진행해 후배들에게 사주명리학을 전수 중이다.

    방산 선생은 남아 있는 삶을 사주명리학이 학문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돈을 벌기 위해서였더라면 서울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富(부)를 포기하고도 경남에 자리 잡은 것은 그만큼 의지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주명리학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체계를 잡아야 학문이 되니 앞으로 남은 삶 동안 고향에서 후학들을 키우고 책을 쓰며 강연하는 데 노력하고자 합니다. 사주명리학은 예언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을 안심시켜주는 게 가장 큰 목적이죠. 운명이 정해지지 않으면 운명을 볼 필요가 없죠. 정해져 있기에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미래를 알고자 하는 궁금증 때문이라도 이 학문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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