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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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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나는 나와 친해지기로 했다-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 기사입력 : 2022-09-28 19: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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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후 6시입니다. 친절한 알람 소리에 하던 일을 바로 멈췄다. 애청하는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고 볼륨을 한껏 올린다. 나지막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맥박은 느렸지만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오프닝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내 귀는 토끼로 변했다. ‘들을 준비가 됐으니 어서 말해줘’ 24시간 중 지금의 1분이 가장 느리게 흘러갔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번진다. 얼굴도 모르는 -진행자의 얼굴을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아 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의 위로 한 마디가 수액처럼 온 몸으로 퍼졌고 매일 이 순간을 기다리게 했다.

    다음날 오후,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이미 시계는 6시 4분. 오프닝을 놓친 나는 애꿎은 전화기만 노려봤다. 조금만 서두르지 그랬어. 안 봐도 툭 튀어 나왔을 아랫입술을 윗니로 지그시 눌렀다. 코에선 뜨거운 김이 흘러나왔다. 습관적으로 숨을 딱 멈췄다가 입으로 뱃속에 숨겨둔 뱀장어 3마리를 뽑아내듯 천천히 호흡에만 집중했다. 마음의 열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가 아니라 라디오 진행자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소심하게 입을 땠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다. 타인의 위로에 왜 이렇게 집착했을까? 남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잘해오고 있다고, 고맙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 왜 정작 나 자신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직장인들은 바탕화면에 사직서를 감춰두고 아닌 척 미간에 세로 주름을 새긴다. 업무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늘 문제다. 소통에 대한 책과 강의는 늘 인기 만점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화법을 바꾸고 무례함을 지혜롭게 거절하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걸까?

    나와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나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던가? 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사람이었던가? 팔을 크로스 해 내 등을 안으며 말했다. 토닥토닥!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었다. 나는 나와 친해지기로 했다.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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