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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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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터키로 가는 서예가-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2-06-27 2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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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독하게 중독돼 고독한 길을 가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데서 기회들이 온다는 것을.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여겼다. 사람이 예감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어릴 적부터 이런 예감을 감지하며 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 그 무슨 날이 꿈을 꾸면 된다는 것이다. 서예가가 돼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서예를 꿈꿨다.

    새벽 시간에 터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주 터키 한국문화원에서의 초대전이다. 생각보다 빨리 일이 진행됐으며 좋은 조건으로 작업자의 손을 덜어 주었다. 이때부터 불꽃같은 시간을 보냈다. 불과 몇 주를 남겨 놓고 진행되는 일이라 터키라는 나라가 얼마나 먼 나라인지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낯선 두려움조차 느낄 새가 없었다.

    이때부터 고민은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관람객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 터키인이 될 것이다. 형제의 나라라며 우리와 애정이 각별한 것은 알지만 그 또한 옛 시절 선조의 인연이다. 나는 그저 K-POP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붓을 들었다. 뭐든 창작은 상상을 하며 진행된다. 아직 그 시간을 만나지 않았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은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잘 상상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래, 한글이다. 한글 서예로 자존감 하나는 끝내준다. 나는 다행히 한글 서예를 무척 사랑했고, 여기에 공을 많이 들여온 서예가다. 외국 땅에 한국의 서예가가 작품을 들고나간다면 한글, 이만한 소재는 없다.

    터키 초대전이 확정된 순간부터 머릿속은 온통 한글이다. 밑으로 내려진 족자에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담아내는 상상을 했다. 한글은 그들 눈에는 그림처럼 보이겠고 선으로 디자인된 문양 같을 것이다. 터키인들에게 붓 선의 맛과 글씨의 덩어리감, 묵과 물로 만들어지는 농담(濃淡) 그리고 화선지 위에서 발묵(潑墨)되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한글과 더불어 먹빛을 보여주기로 했다.

    한글을 터키 언어로 번역될 때 그들의 감정을 상상했다. 예쁜 우리말을 써볼까 하다 멈추게 된다. 용기 내어 작가가 사랑하는 언어를 찾기로 했다. 예쁜 글씨 시화전을 하는 게 아니니 한국에서 온 어느 작가의 색깔과 방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한글을 만나게 되겠고 한국에서 온 서예가의 감정선도 느끼게 될 것이다.

    마땅히 관대하다, 한결같이, ‘복이 있나니’를 쓰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보고 싶다, 문득’을 쓰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마음 내키는 대로 노닐다를 쓰면서 행복감에 젖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 사치스럽지 않다를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이루면서 산다, 지금이 가장 빛나는 시절을 쓰면서 순원이라는 사람이구나 입가가 올라갔다. 그러다가 ‘뭘, 상관 말고 그냥 니 갈길 가, 그러러니, 아님 말고’를 쓰면서 이게 진짜 나는구나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참, 이 글도 덧붙였다. 말 많은 사람 이 방에 들어오지 마시오를 써서 이 작품만큼은 꼭 다시 들고 와 내 공간에 붙여야겠다 다짐했다. 한글 서예는 이렇게 작업하는 서예가에게 참 많은 생각을 주는 예술이다.

    낯선 땅 어딘가에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한글을 작가의 색깔을 담아 어떻게 펼쳐 놓을까를 꿈꾸며 수 날을 보냈다. 한글만이 가득한 지중해 동북의 터키 앙카라 어딘가를 상상했다.

    이젠 떠날 채비를 한다. 며칠 전부터 펼쳐 놓은 서예가의 여행 가방 안에 쌓이는 것은 붓과 종이다. 허름한 골목 안 커피를 마시면서, 거리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만나도 인연이 닿는 대로 그의 이름을 한글 서예로 써줄 것이다. 어릴 적 상상해가며 읽은 세계명작동화 배경에서 쉰을 넘긴 서예가가 붓을 들고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이것을 글씨 버스킹이라 이른다.

    윤영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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