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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03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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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경세(經世)의 비전- 정성기(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22-05-09 07: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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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정권 출범을 코 앞에 두고, 영화와 한류를 떠 올리게 된다. 2000년 무렵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는 미국의 수출 품목 2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 시장을 겨냥한 영화가 미국적 정체성을 잃어서 미국 내에서는 외면당하기 시작했고, 슈퍼맨, 원더우먼 시리즈 같은 영웅 시리즈는 ‘미국 제국’을 상징하는 영화로서 한국에서도 곧 식상했다. ‘할리우드 제국의 종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빈 공백을 누가 메울까? 미국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고, 세계 어느 나라도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을 (사우스) 코리아가 메웠다.

    기존 영화를 넘어서, 드라마, 대중가요, 음식, 패션, 한글까지 찬탄의 대상이 되니, 한국은 ‘문화 선진국’을 넘어 ‘문화 제국’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니, ‘세계의 한국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19세기 유럽에 미술계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일본풍-자포니즘보다 월등하다.

    경제도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가 위세를 떨쳤으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미국 정치 경제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러브 스토리〉는 월가의 탐욕과 ‘금권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1997년 동아시아-한국의 외환위기 때 ‘아시아적 가치’가 문제라던 미국은, ‘미국적 가치’가 더 문제임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중국도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했으나 당·정의 외환시장 통제 등으로 충격이 크지 않았다. 덕분에 중국을 최대 수출시장으로 둔 한국도 미국 경제에 대해 ‘탈 동조화’하면서 잘 버텼다.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는 G20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국제적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그런 중국의 경제모델을 두고 국제적으로 ‘베이징 모델’이라 불렀다. 중국 스스로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장 경제’라 한다. 1970~80년대에 등소평이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박정희 개발 독재’를 배우면서, 국가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한 시스템이다. 그 유연성과 장기적 안목, 경제적 성취는 우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중국의 ‘중국적인 것’ 중에서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가? 없다. 중국 권력층 내부에서 조차 서구 선진국들은 물론, 아시아 주변국들 조차 중국을 이렇게도 싫어할 수가 있나 통탄할 지경이니, 경제·군사는 대국이지만, 문화는 소국일 뿐이다.

    뒤늦게 한국과 세계를 상대로 ‘공자학원’ 마케팅을 하고 있으나 ‘문화혁명’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다. ‘천안문 사태’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고 있고, 한국전쟁의 진실은 아직 ‘항미원조’라 왜곡하고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 ‘한국적 민주주의(시장경제)’는 부마항쟁으로 무너졌고, 그 후예들은 문재인 정권 내내 ‘친일독재’로 과잉 비판받았다. 비판하는 쪽은 ‘부패-위헌-독재’로 비판받았다. 대선은 양쪽 모두 추한 밑천을 다 보여 ‘혐오 선거’가 됐다. 그러니 한류처럼 한국적이며, 세계 보편적인, 새로운 민주주의·시장경제의 비전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서 보듯, 제국주의 피지배의 시련을 이렇게 이겨낸 것은 우리의 큰 도덕적 문화 자산이며, 그래서 당당할 수 있다. 독일과 달리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국제적으로 문화적 채무자요, 약자다.

    사실 제국주의와 식민지를 거친 근·현대 세계 전체의 보편적 진실이다. 그런데, 우리 내부는 어떤가? 강대국 지배와 인종차별의 한을 안고 있으면서,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겪어 온 사람들, 예컨대 경남에도 많은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지의 사람들과 그 문화는 존중하는가?

    일제 강점기, 탈 식민지 분단 이후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내부에서 주고받은 피 어린 상처에 대해서는 얼마나 정직하고 당당한가?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 ‘Naeronambul(내로남불)’이라는 한국적-보편적 악성 문화를 걷어내지 않고도, 지속 가능한 한류, 이 나라 경세(經世)와 경남 자치의 미래가 있을까?

    정성기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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