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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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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서예가의 사락(四樂)-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2-05-02 21: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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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예가는 인간관계가 다양하고 많기가 쉽다. 서예라는 것이 학문이기도 하고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에 비해 일상예술이기도 하고 그래서 대중예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자가 서예의 도구이기에 대중과 매우 밀접한 예술이다. 일상 중에서 서예가를 한번 찾지 않기가 쉽겠는가. 얼마 전에도 나는 혼서지를 써 주었다. 스물 때부터 시작된 서예 붓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온갖 관계와 별일들을 겪어내면서 나이를 먹었다. 30년이 지나 쉰에 가까워지니 점점 단순해지는 것이 복이라 생각하게 됐다. 쉬지 않고 붓을 잡았더니 세월은 삶의 업적만큼이나 규정 지을 수 있는 단어를 서예가에게 던져 준다. 원장이 됐다가 선생이 됐다가 강사가 됐다가 이제는 서예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한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맞는 호칭을 선명하게 각인받게 됐다. 자신 있게 서예가라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게 됐을 즈음, 신기하게도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할지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여기까지 딱 30년이다. 이때 선명하게 다가오는 네 개의 단어가 있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그것을 알게 된다더니 나이 쉰에 나의 지천명을 알게 됐다. 서예가의 네 가지 즐거움은 작업하고 여행하고 강의하고 놀이하는 것이다.

    매주 일정이 잡히거나 매월 빼곡하게 적어 놓은 많은 일의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일 년 동안 공부하고 작업하는 것으로 서예가의 전시를 준비하고 목표를 정하니 작업자로서 인생의 군더더기가 사라져 버렸다. 물론 살아가는데 군더더기가 어찌 없을 수 있겠느냐만 작업자에게는 작업에 미치지 못하는 나쁜 에너지를 군더더기라 생각하고 사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서예가의 일락(一樂)이다.

    작업하다가도 불현듯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밤새워 작업하던 서예가가 아침에 여행지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일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서예가의 일탈을 놀라워했다. 먹을 갈다가도 책을 뒤적거리다가도 숨을 깊게 쉬고 싶어졌다. 재빨리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거나 자동차에 짐 가방을 던진다. 낯선 곳은 어디든지 여행이다. 제주도 푸른 물결과 돌담길을 따라 자유롭게 걷는 것을 좋아한다. 쉬고 싶을 때 쉬고 생각하고 싶을 때 생각한다. 그것이 서예가의 이락(二樂)이다.

    20년 서예원 원장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서예를 기술적으로 습득시키는 일은 이제 멈추고 싶었다. 대신 서예를 접하지 못한 대중에게 강연장에서 보여주거나, 서예를 한껏 자랑하는 것이 지금 위치에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서예가가 붓을 들면 현란하거나 노련하거나 엄중한 붓놀림에 모두가 탄성을 지른다. 입에서 터진 탄성이 심장을 찔러 서예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붓으로 힐링하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음악으로 힐링은 쉽게 말하지만, 붓으로 힐링은 다소 국한됐다. 대다수가 전시 서예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서예가의 몸짓과 붓 터치로 그들이 글씨 예술을 보는 눈빛이 아름다워지리라 믿었다. 그렇게 강연은 새로운 대중을 만나고 서예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서예가의 삼락(三樂)이다.

    쉼을 누린다. 그래서 일상이 놀이다. 순간순간 지금의 때를 놓치지 않고 놀이를 한다.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현재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더니 수많은 현재가 모여 꽤 지루하지 않은 서예가가 됐다. 나의 현재를 바라보니 서예가치곤 제법 흥미로웠다. 심각하지 않게 어깨 힘 빼고 그저 흥이 넘치는 대로 놀이한다. 서예가의 사락(四樂)이다.

    “요즘 어찌 지내느냐?”는 안부에 “작업하고 여행하고 강연하고 놀이하지요”라 하니 서예가의 삶이 이 네 가지 즐거움이면 기막힌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윤영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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