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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0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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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정자리 11- 손영희

  • 기사입력 : 2022-03-10 07: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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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먹어야 하는 알약처럼 아침이 오고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나면

    빈집이 또 하나 늘어 적막이 또 한 채

    마당이 갈라지는데 소쿠리 걱정한다고

    오늘은 쓸데없이 집 뒤란이나 둘러보는데

    우물 속 낯선 얼굴이 그믐처럼 섧다.


    ☞ 우리나라 농경사회의 마지막 모습을 노래한 이 작품이, 두고 온 고향처럼 눈에 선하다. 마을마다 몇 안 되는 노인까지 하나둘 떠나고 점점 늘어나는 빈집의 적막한 풍경만이 꽃샘추위를 견디고 있는 듯하다. 부스럭부스럭, 머리맡에 약봉지를 먼저 챙기는 것으로 살아 있다는 안부를 서로 묻는 아침. 밤사이 감나무 집 할머니가 덜컥 병원에 실려 갔다며 마을 이장이 구부정히 그 집 대문을 걸어 잠근다. 돌아올 희망이라곤 아예 갖지 말라는 단호한 경고다. 아니나 다를까! 끝내 서역 만 리 머나먼 길을 떠났다는 부고만이 바람을 타고 돌아온다.

    코로나 사태로 마을 회관마저 문을 닫아 오갈 데 없으니 텔레비전과 밤낮을 동무하던 그 기척마저 사라지고 “적막이 또 한 채” 늘어났다. 이처럼 아득한 현실이 정자리뿐일까. 슬레이트 지붕, 흙담에 굳게 닫힌 녹슬고 낡은 대문의 빈집이 시골 동네마다 계속 늘어나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이 나라의 정부와 지자체에서 아무리 가꾸고 살핀다 한들, 이웃들이 떠나 자꾸만 폐허로 변해가는 쓸쓸한 동네는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큰 그늘이다. 오고 가던 온정이 그리워 우울증을 앓는가 하면 고독사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한다. 바쁜 자식들은 고향을 등진 채 돌아올 기미도 없고 아이 울음소리마저 뚝 끊어진 저 늙은 빈집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걸까.

    오늘은 손영희 시인의 ‘정자리 11’을 읽으며 그믐처럼 기우는 우리의 낯선 얼굴을 섧게 들여다본다.

    이남순(시조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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