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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0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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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경남체육회 산증인 박소둘 고문

선수·지도자·심판·행정… ‘경남체육’ 52년간 몸으로 다 겪었죠

  • 기사입력 : 2021-12-01 20: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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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52년간 체육인으로 경남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으로 경상남도문화상 체육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경남체육회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박소둘 경남체육회 고문.

    경남체육회에 32년간 근무, 전국체전을 경남에서 3번이나 개최하면서 낙후된 체육시설 확충과 우수선수 육성, 전국체전 상위권 입상 등 경남 체육인의 위상을 높였고 수영 선수부터 지도자 활동, 체육행정직까지 맡아 오면서 경남체육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

    박소둘 경남체육회 고문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소둘 경남체육회 고문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고문은 수영 선수 출신이다. 1969년 창신고에 입학하면서 수영 선수가 됐다. 그로부터 경남대와 해군을 거치면서 이어진 그의 수영 선수 생활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계영 400m와 800m에서 수차례나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우는 선수가 됐다. 전국체전 등 전국대회에서 5관왕만 5번, 4관왕 4번, 3관왕 1번, 2관왕만 9차례나 오르는 등 수많은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11년간의 선수 생활 중에서 한국신기록을 7회에 걸쳐 갈아치운 것을 비롯해 혼자 수확한 메달만도 300여개 달하는 경남 수영 선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후배들에게 타의 모범이 됐을 뿐만 아니라 경남체육 발전에 헌신했다. 하지만 수영 라이벌이자 동기인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에 밀려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고 상비군에 그쳤다. 선수생활 동안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하기도 했다.

    1980년 선수생활을 그만둔 박 고문은 진해웅동중학교 교사로 1년간 재직하다가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1981년 부산에 있던 경남도체육회가 경남으로 이전하면서 직원을 공모하자 접수해 1년 만에 교사를 접고 경남체육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그로부터 경남체육회에서 훈련과장, 운영과장, 사무차장,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일들을 해 왔고, 정년퇴임 후 현재까지 경남체육회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가 하면 대한체육회 이사를 거처 전국 시·도 정책자문위원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남체육회의 산증인으로 통하고 있다.

    1969년 창신고·경남대·해군 거치며 선수생활
    한국新 7번 갈아치워… 메달만 300여개
    34살에 국제심판자격 취득 ‘젊은 심판’ 주목

    32년간 경남체육회 근무하며 체육발전 기여
    2007년부터 6년간 경남대표팀 총감독 맡아
    2010년 전국체전서 2위·다음해 3위 ‘성과’

    후배들 성장 위해 좋은 환경 조성에 온힘
    체육발전 공로 대통령 표창 등 수상도
    “남은 여생 경남체육 발전 위해 뭐든 할 것”

    2010년 당시 경남도 성화인수단장이었던 박소둘씨가 인천시 강화군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한 성화를 전달받고 있다.
    2010년 당시 경남도 성화인수단장이었던 박소둘씨가 인천시 강화군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한 성화를 전달받고 있다.

    그는 32년간 경남체육회에 근무하면서 경남체육의 발전을 앞당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지도자로서 선수시절의 경험을 살려 수영 선수의 저변 확대와 체육 꿈나무 육성을 위해 체계적인 훈련지침인 체육훈련계획서를 만들어 선수를 지도했고, 경남의 많은 후배들이 상비군 및 국가대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닦아주고, 지도자가 부족한 경남의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와 지도자를 병행하면서 선수로서의 경험과 과학적인 지도력으로 경남 수영의 대를 이을 수 있도록 했다.

    경남체육회에 재직하고 있었던 오랜 기간 동안 낙후된 체육시설 확충과 우수선수 육성, 전국체전 상위권 입상으로 경남도민은 물론 체육인의 위상을 높이는 체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전국체전에서 종목을 나눠 일선 시·군에 골고루 배정해 시·군의 체육 붐을 조성한 것은 물론 부족한 체육시설을 확충에도 크게 기여하는 역할을 했다. 1997년 창원에서 전국체전을 열 당시에는 대통령 경호규정 때문에 못했던 야간 개회식을 처음 도입해 당시만 해도 참여가 많았던 학생들이 동원되는 수를 줄이며 교육청과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또 그는 선수 은퇴 후 1급 심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6년 세계수영연맹에서 주최하는 심판자격 시험에 응시해 34살에 국제심판자격을 취득해 86아시안게임 수영 심판으로 참여해 젊은 심판으로 주목을 받았고, 88서울올림픽 수영경기 운영임원으로 참여해 한번의 실수도 없이 경기 준비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2년 14회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북경올림픽, 2010년 중국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에 운영위원으로 참가해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2010년 제91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박씨가 직원들과 진주종합경기장 내 임시본부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2010년 제91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박씨가 직원들과 진주종합경기장 내 임시본부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특히 1997년 IMF 구제금융신청으로 금융 및 실업팀 운동부 해체로 선수들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도청, 시·군청에서 운동부를 육성할 수 있도록 기획해 1998~2000년 3년 동안 도내 30여개 팀을 만들어 도청·시·군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선수 연계 육성에 큰 기틀을 마련해 전국체전에서 경남이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또 도민체전의 활성화를 위해 소도시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권역별로 공동 개최토록 해 일선 자치단체에 체육시설 확충과 도민 전체가 체전에 참여하는 분위기 조성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직원으로서 성실함과 체육인의 구심점 역할을 인정받아 2007년 사무처장으로 임명돼 퇴임까지 6년여 동안 전국체전에서 경남대표팀 총감독을 맡아 우수한 성과를 올렸다. 2010년 진주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경기도에 이어 서울특별시를 제치고 2위를 하며 도민과 체육인을 기쁘게 했고, 이듬해 2011년 경기 고양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에서 경기, 서울에 이어 종합 3위를 획득하면서 경남 탄생 처음으로 2년 연속 연거푸 시상대에 오르는 영광을 안으며 340만 도민들은 물론 체육인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줌은 물론 경남체육의 발전과 상위권 확보의 기틀을 확립했다. 이 6년여 기간 동안 경남이 전국체전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둠으로서 명실상부한 체육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1년 열린 제9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3위를 달성, 시상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경남신문DB/
    2011년 열린 제9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3위를 달성, 시상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경남신문DB/

    이 밖에도 그는 경남체육회에 입사 당시만 해도 소년체전, 전국체전 등에서 경남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화살이 직원들에게 쏟아져 일부 직원들이 나가는 등 직원들이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점이 없도록 개선하는 등 경남체육회의 안정에도 기여했다.

    그는 52년간 경남체육인으로 생활해 오면서 많은 상도 수상했다. 체육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경남체육회장 및 대한체육회장 우수선수 표창을 비롯해 대통령 표창, 체육부장관 표창, 대한체육회장 공로상, 경남도지사 및 체육회장 공로상, 경남도교육감 공로상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30여개 종목의 회장, 부회장, 전무, 감독 등을 역임한 사람들의 모임인 경남체육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이들 종목에 대한 각각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논의하면서 개선할 점은 개선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대회 땐 이들을 격려하며 경남체육의 발전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박소둘 경남체육회 고문은 “코로나19로 후배들이 각종 대회가 제대로 개최되지 못하는 등 체육이 침체되는 것이 아쉽다”며 “빨리 코로나가 끝이 나고 체육이 활성화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많이 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경남체육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후배 사랑도 잊지 않았다.

    글·사진= 김병희 기자 kimb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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