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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동주회- 김흥구(행복한 요양병원 부이사장)

  • 기사입력 : 2021-04-19 20: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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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이 핀다. 남쪽 지방은 꽃의 계절이다. 섬진강 너머 광양 매화 마을에는 겨울의 끝을 알리는 매화가 피었다 지고, 지리산 온천이 있는 구례군 산동에도 개나리만큼 화사한 노란 산수유가 자태를 뽐내며 상춘객의 눈길을 모았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겨우내 얼었든 대지가 잠에서 깨어나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의 순환이 신비롭다. ‘코로나 님’은 오신 지 1년이 넘어도 길을 나설 기색은 보이지 않고 4차 유행을 예고 중이다.

    ‘동주회’는 동네주민 모임의 약자다. 지금은 회원들이 성주동으로 가셨고, 중동의 새 아파트로 가시고, 반지동에도 계시고, 북면으로 이사 가면서 회합은 잠정 중단 상태다. 자식을 키우던 비슷한 시기에 토월 성원 아파트에 옹기종기 옆 동에 모여 살았다. 흰 옷을 즐겨 입고 음주와 가무를 즐기시던 조상님의 DNA와, 눈빛만 마주쳐도 단체를 결성하는 국민성에 발맞추어 모임은 만들어졌다.

    존경하는 검찰 이 계장은 고향이 고성이다. 누구처럼 개천면이 아니고 누구처럼 구만면이 아니라 고성읍임을 강조한다. 무엇이 다른지 명확히 알 길이 없으나 정작 본인에게는 중요한 일인 듯하다. 아버님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일찍이 마산으로 유학을 나오셨다. 보리쌀을 팔고 소꼴 먹여가며 애지중지 키우던 외양간 송아지도 팔아 학비에 충당했다.

    영민하신 이분은 고교 시절,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천하주유의 길에 나선다. 원양 어선에 몸을 싣고 북태평양 한복판에서 명태잡이를 하며 사람과 인생에 대한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 알래스카에 배가 조난되어 구조선이 올 때까지 빙판에서 축구를 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는 황당하나마 믿고 있다. 사법 고시에 통과했으면 큰 벼슬을 할 법한 그릇이다. 이 계장과 입사 동기인 허태팔(가명) 사무관은 진주 지수 사람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분은 고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삼성 이병철, 금성 구인회, 효성 조홍제 회장님들이 선배이시다. 경상좌도에 길지가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청송 닭실마을이 있다면 경상우도에는 지수가 있다.

    지난 600년간 천석꾼 부를 유지한 김해 허 씨 집안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는 학창 시절을 진주에서 지내면서 남강 주변을 종종 배회하곤 했다. 무슨 대단한 철학적 사유를 위함은 아니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동급생들 중에는 날렵한 몸 놀림에 가공할 펀치를 작열했던, ‘시라소니’에 버금가는 전설적 주먹인 허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소싯적 부모님 속깨나 끓였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시근’이 든 개과천선형 인물이다.

    몇 해 전 그는 승진 시험에서 1차, 2차 동시 합격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곡차를 즐기며 차일피일 시험 준비를 하던 중, 고향 아저씨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태팔아! 족보에 이름 올릴 때 직위는 사무관으로 하면 되는가?” 순간 식은땀이 나고 ‘숨질’은 가빠진다. 적선지가를 실천한 명문가 조상님의 음덕은 오래가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 이 계장의 심사가 편치 않다. 직장 동기이자 친구인 허 선생이 조직의 상사로 등극하는 것은 사촌이 땅을 사는 형국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간사한 인간의 심리가 축하는 하지만, 배는 아픈 것이다.

    수사를 하려는 자와 수사를 회피하려는 이들 간의 지루한 공박과 파열음으로 온 나라가 시끌하다. 30년간 봉직한 조직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정년의 완주를 응원한다. 아직은 아파트 대출도 좀 남아 있고 하니까. 꽃은 피고 새는 우짖는 호시절이다.

    내일은 그동안 격조 했든 회동을 위한 사발통문을 돌려보자. 이순신 장군 유적지가 남아 있는 당항포 해안길을 걸으려 가자고, 도다리 ‘세꼬시’(뼈째회)가 제대로 맛이 들었음을 알려야겠다.

    김흥구(행복한 요양병원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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