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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하이 눈>에서의 정의와 의무처럼- 백승진(경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9-09-23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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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진 경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1952년에 개봉된 프레드 진레만 감독의 〈하이 눈〉이라는 오래된 기사가 생각난다.

    게리 쿠퍼가 연기한 보안관 케인은 퀘이커 교도인 에이미와 결혼을 하고 보안관 직의 임무를 마치려든 참이었다. 그날 마을 사람들은 케인이 체포해서 사형선고를 받게 했던 밀러가 가석방되어 정오 기차로 마을에 도착해 일당과 함께 케인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소란을 피하기 위해 밀러가 오기 전에 케인이 빨리 마을을 떠나 주길 바란다. 에이미 역시 마을을 떠나길 원해 둘은 마을을 떠나지만 케인은 밀러 일당과의 대결을 위해 에이미를 홀로 보내고 마을로 되돌아온다. 케인은 자신과 함께 싸울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온 마을을 돌아다니지만 모두들 거절한다. 밀러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판사도 사무실을 정리하고 떠나려 한다. 결국 케인은 혼자 네 명의 악당을 상대해야 하지만 에이미의 도움으로 죽음을 피하면서 일당을 처치한다. 복수를 위해 되돌아온 밀러 일당을 제거한 후 케인은 보안관 배지를 땅에 던져 버리고 에이미와 마을을 떠난다.

    미국 대통령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케인이 마지막까지 악을 상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과 정의를 위해 홀로 싸우고자 하는 그의 용기가 자신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케인의 의무감과 용기가 영화 속의 하들리빌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되기도 한다. 케인이 밀러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기 전까지 하들리빌 마을 사람들은 밀러 일당의 폭력에 속수무책이었다. 케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대의명분을 위해 결투를 준비하는 케인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게 된다. 마을 술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밀러를 두둔하고, 교회에서는 밀러가 원하는 인물이 케인이기 때문에 차라리 케인이 마을을 떠나 주기를 바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도덕적 위선이 풍자되고 있다.

    요즘 조국 법무부 장관에 관한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혼란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정치인들의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하다. 최소한의 예의도, 의무감도 정의감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때다 싶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먹던 고기 뺏어가려 하고, 악에 받쳐서 탈탈 털면서 상대방 헐뜯고, 깨끗하지도 않은 자기는 깨끗하다고 상대방에 삿대질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10일 촛불 시민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다. 과거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고 국민들이 만들어준 정부다. 그 단단한 적폐를 어떻게 쉽게 허물겠는가. 그 적폐의 달콤함에 취해 있던 많은 권력들이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서로의 이권 창출을 위해 얽히고설켜 있었던 권력 카르텔을 해체하고 검찰개혁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깊은 고민 끝에 조국 법무부 장관이 그 일을 감당할 적임자라 판단했을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 설사 흠집이 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을 위해 좀 기다려 줄 수도 있어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집회 맨 앞줄에는 국정농단 부역자들이 있다. 정치적 복수를 위한 그들의 아우성은 보수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 기다려 보자.

    케인은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과 적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인 악의 제거를 위해 꿋꿋이 자신의 길을 선택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마친다.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하들리빌 마을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백승진(경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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