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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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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가을에- 김미숙(마산문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19-09-16 20: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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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가을이다.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도 숨을 고르고 바람은 선선하다.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일부 낙과하거나 쓰러진 안타까움도 있지만, 익어가는 곡식과 부푼 자태를 자랑하는 과일들. 봄부터 여름까지 하늘과 땅과 농부가 삼위일체되어 노력한 결과를 추수할 때다. 원래 가을이라는 단어의 어원도 추수를 뜻한다.

    계절의 어원을 살펴보면 봄은 ‘볻’에서 볼, 볼옴, 보옴, 봄으로 변천한 말이라고 하는데 ‘볻’은 ‘볕(陽)’과 어원이 같다.

    여름의 옛 표기는 ‘녀름’이었는데 ‘너름’을 원형으로 본다. 너름의 어근은 ‘널’이고 날(日)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역시 태양을 의미하며 열매가 열다 는 뜻으로 ‘열음’에서 ‘여름’으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가을의 어근인 ‘갓’은 끊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열매를 갓(끊切)다. 갓+을(끊을)이 변하여 ‘가슬’이 되고 가살, 가슬, 가실, 가알, 가을로 변천한 것으로 본다고 한다. 가을은 태양도 한 숨 고르는 계절이지만 사람에게도 한 숨 고르는 계절이 아닐까 싶다.

    사계절은 인생의 과정과 닮아 있다. 봄이 되면 농부는 수확할 작물을 선택하고 특성에 맞게 땅을 고르며 최적의 생육환경을 만들어간다.

    인생에 있어 봄은 공부하는 계절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저마다의 적성과 특성에 따라서 공부하며 세상에 나아가면 무엇을 할 것인지 목표를 세우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에 농부는 익어가는 곡식들이 병충해 입지 않도록 관리하고 적절한 물과 태양이 유지돼 잘 자라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다. 그게 제대로 돼야 가을에 곡식창고가 풍요로워질 것이다. 인생의 여름은 본격적으로 일하는 계절이다. 직장에 취업하든 창업을 하든 자신의 땀과 노력을 최대한 쏟아 부어 인생을 관리하고 경작한다. 이 시기가 잘 돼야 창고를 제대로 채울 수가 있다. 잘못 되면 베짱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가을도 마찬가지다. 봄과 여름에 고생하며 일궜던 결과물을 거두어 창고에 재어놓고 풍요를 즐기는 시기다. 내 나이면 인생의 가을이다. 여유와 풍요를 즐겨야 인생의 계절적 순환에 맞는 시기다. 그러나 현실은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는 게 나의 가을이다.

    나만 그런가 싶어 돌아보면 많은 이들의 가을이 녹록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는데도 인생의 찬바람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겨울의 어원은 ‘겻(겨-, 겨시-)다’ 즉 집에 ‘겨시다(在)’가 ‘겨슬, 겨술, 겨울’로 변화해왔다고 한다. 그러니 겨울은 따뜻한 집안에서 쉬라는 의미다.

    문득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마지막 연이 떠오른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아마도 이 시에서 ‘집’이란 영혼의 집일 것이다. 마음에 따뜻한 오두막 한 채 제대로 짓지 못하고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지만 겨울로 가는 길목이기에 약간의 우울함도 동반한다.

    그래서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다. 확실히 가을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약간의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는 걸 보면. 그렇지만 아직 외로움을 느낄 만한 감성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김미숙(마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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